김슬아 마켓컬리 대표. /컬리

미국 증시 상장을 준비하던 마켓컬리가 국내 상장으로 방향을 틀면서 창업자인 김슬아 컬리 대표의 경영권 방어 전략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9일 투자은행(IB) 업계 따르면 마켓컬리 운영사 컬리는 다수의 기관 투자자들로부터 2254억 원 규모의 시리즈 F 투자 유치를 완료하고 국내 상장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컬리 관계자는 “국내외 상황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한국증시 상장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며 “고객과 생산자, 상품 공급자 등 컬리 생태계 참여자와 함께 성장의 과실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번에 확보한 투자금으로 기술 개발에 적극 투자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컬리는 이번 투자 유치 과정에서 2조5000억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지난해 5월 2000억 원을 유치했을 때 9000억 원으로 평가된 것을 고려하면, 1년 만에 기업가치가 2.6배 넘게 뛰었다. 하지만 컬리 측이 희망했던 기업가치 3조 원 수준엔 못 미쳤다. 향후 성장성과 수익성 개선에 대한 투자자들과의 온도 차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2의 쿠팡' 꿈꿨지만, 결국 한국으로

김슬아 대표가 설립한 마켓컬리는 신선식품을 새벽에 배송해 주는 서비스가 인기를 끌며 급성장했다. 2015년 29억 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9523억 원으로 5년 사이 300배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적자 폭도 커져 같은 기간 영업손실액은 54억 원에서 1162억 원으로 늘었다. 현재까지 누적된 적자는 2700억 원에 달한다. 컬리로선 재무 건전성보다 성장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는 미국 증시에 도전하는 게 유리했을 거라는 게 유통업계의 분석이다.

그래픽=조선비즈DB

국내와 달리 차등의결권(복수의결권)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도 컬리가 미국행을 택한 이유로 추정된다. 차등의결권이란 창업주에게 다른 주주가 보유한 보통주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쿠팡이 지난 3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한 이유도 대규모 투자 유치와 함께 창업자인 김범석 전 이사회 의장의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의견이 많았다. 당시 쿠팡Inc(쿠팡 모회사) 지분율 10.2%를 가졌던 김 전 의장은 76.7%의 의결권으로 경영권을 보장받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김 대표가 보유한 컬리의 지분율은 6.67%에 불과하다. 이번 투자 유치로 김 대표의 지분율은 더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요 주주인 DST글로벌과 세콰이어캐피탈, 힐하우스캐피탈 등 외국계 벤처캐피털(VC)의 지분이 50%가 넘는 걸 고려하면, 상장 후 투자자들의 경영 간섭이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분 쪼그라든 김슬아 대표, 경영권 방어 가능할까

그런데도 컬리가 한국 증시 상장을 택한 이유는 미국에서 기대만큼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거란 판단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컬리는 국내에서 신선식품 새벽 배송 시장을 열었지만, 서비스가 일부 지역에서만 되고 상품이 식품에 한정돼 성장성에 한계가 있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최근 사업 및 배달 영역을 확대하고 있지만, SSG닷컴, 롯데온, 현대백화점 등이 유사한 서비스를 잇달아 내놓으면서 경쟁력이 둔화됐다는 지적이다.

한국거래소가 성장성이 높은 스타트업의 해외 증시 이탈을 막기 위해 상장 문턱을 낮춘 것이 영향을 미쳤을 거란 해석도 나온다. 거래소는 지난 3월 코스피 상장 규정을 완화해 시가총액이 1조 원(유니콘 기업)이 넘으면 적자를 내더라도 상장할 수 있게 했다. 또 상장 후엔 최대주주와 우호주주 간의 의결권 공동행사 약정 체결을 통해 창업자의 경영권을 보호하기로 했다.

여기에 정부와 국회가 비상장사의 차등의결권을 허용하는 법안을 추진 중인 것도 컬리의 한국행을 뒷받침했다는 분석이다.

IB 업계 한 관계자는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해 투자를 지속해야 하는 이커머스 사업의 특성상 컬리의 적자는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상장에 앞서 경영권 방어를 위한 대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컬리가 국내 상장을 결정하면서 주권사 선정을 둘러싼 증권사들의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현재 NH투자증권(005940)과 한국투자증권이 경쟁사인 오아시스마켓의 상장을, 미래에셋증권(006800)이 티몬의 상장을 추진 중인 만큼 KB증권과 기존 주관사인 삼성증권(016360) 등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