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들이 경기 이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 진압을 하고 있다. /윤희훈 기자

경기 이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가 이틀째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쿠팡의 ‘물류센터 안전불감증’이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2018년 물류센터 내부에서 화재가 의심되는 연기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을 대피시키기 보다는 근무지에서 이탈하지 말라고 현장 관리자가 지시한 적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고, 이번 화재 현장에선 스프링클러 오작동을 막으려 스프링클러를 인위적으로 잠궜을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또 쿠팡이 물류센터 내 현장 근로자들의 휴대폰 소지를 금지하고 있어 최초 화재 발견자가 화재 신고를 하지 못해 소방서 신고가 지연됐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는 18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덕평 물류센터 화재 사고 책임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사측에 요구했다. 노조는 기자회견에서 “물류센터에는 수많은 전기 장치가 설치된 데다 먼지까지 쌓여 화재 위험이 높은데도 쿠팡의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거나 실행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오작동이 많다는 이유로 꺼 둔 스프링클러 작동이 늦어지고, 최초 신고자보다 10분 정도 일찍 화재를 발견한 노동자가 있었지만 쿠팡이 휴대전화 반입을 금지한 탓에 신고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며 “화재와 노동자 안전에 대한 쿠팡의 안일한 태도가 여실히 드러났다”고 했다.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가 발생한 가운데 경기소방본부 소속 소방관들이 화재 진압 활동을 하고 있다. /윤희훈 기자

노조와 현장 근로자들에 따르면 전날 화재 발생시 물류센터 근로자가 현장 관리자에게 ‘탄 냄새가 난다’고 하자 ‘컨베이어에서 나는 냄새일 것’이라며 대응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스프링클러도 작동이 되자 오작동인줄 알고 끈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도 나왔다. 스프링클러에 장착된 화재감지기가 순간적으로 내부 온도가 상승하면 경보음을 울리는 경우가 있는데, 경보음으로 인한 센터 내 소란을 막기 위해 경보 장치 자체를 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박수종 이천소방서 재난예방과장은 “물류센터로부터 스프링클러 수신기 오작동 신고가 여러번 있었는데, 물류센터에서 오작동 신고를 피하기 위해 평소에 잠가놨을 개연성도 있다”면서도 “다만 아직까진 확인된 게 없다. 향후 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류센터 내부 구조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돼있는지 파악이 안되는 것도 화재 진압의 장애 요인으로 거론된다. 현장에서 화재진압을 하던 한 소방관은 “건축물 대장 등으로 건물 내부구조를 어느정도 알 순 있지만 선반 위치와 각종 가연성 물질이 어떻게 배치돼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물류센터 안에 기자재와 상품이 얼만큼 있는지에 대해서도 쿠팡은 아직 확인을 못하고 있다. 한 소방대원은 “휘발성 물질 보관 위치 등을 알았다면 초기 화재 진압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면서 “해당 내용에 대해 쿠팡 측으로부터 정보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고 했다.

화재 진압 소방관의 실종 상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식 입장 발표 없이 입을 닫고 있던 쿠팡의 대응도 논란이 되고 있다.

쿠팡은 이날 오후 3시 9분이 되어서야 강한승 대표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덕평 물류센터 화재로 인해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돼 몹시 송구하다”면서 “진화에 나섰던 소방관 한 분께서 아직까지 구조되지 못하고 계신 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며, 쿠팡의 모든 구성원들의 마음을 모아 조속한 구조를 간절히 기원한다”고 했다. 쿠팡의 공식 입장문이 나온 건 화재 발생 후 38시간 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