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지난 해 시범 도입한 후불결제 서비스 ‘나중결제’ 한도를 월 30만원에서 최대 50만원까지 늘리며 정식 서비스 개시를 서두르고 있다. 쿠팡이 1년 가까이 시험 운영을 하며 세부 서비스를 다듬는 동안 네이버, 카카오는 이제야 금융당국 승인을 받아 도입을 했거나 준비 중이다. 쿠팡의 후불결제는 금융업이 아니지만, 네이버와 카카오는 금융업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1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쿠팡은 지난 달부터 일부 나중결제 이용 고객들에게 기존에 제공하던 월 한도 30만원을 최대 50만원으로 확대했다. 나중결제는 쿠팡이 이용실적, 내부기준에 따라 일부 고객을 선정해 제공하는 서비스다. 고객마다 이용한도가 다르게 부여된다. 쿠팡은 고객의 신용정보를 조회한 후 나중결제 서비스 한도를 확정한다. 고객은 당장 계좌에 돈이 없어도 이용한도 내에서 쇼핑하고, 다음날 15일까지 계좌에 돈을 넣어두면 된다.
쿠팡은 신용도가 낮아 신용카드 발급이 어려운 대학생이나 프리랜서 등에게는 소액의 한도를 제공해 신규 고객층을 확대하고, 월말 자금 사정에 일시적으로 여유가 없어지는 직장인이나 자영업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높은 한도를 줘 평생 고객으로 만들고 거래액을 확대하기 위해 나중결제를 도입했다. 연체하는 고객에게는 일 0.03%, 연 12%의 수수료를 부과한다. 카드사 연체 수수료율(최대 연 23.90%)에 비하면 낮지만 신용도가 낮은 고객에겐 부담될 수 있는 수준이다.
나중결제를 포함해 쿠팡의 결제사업을 전담하는 자회사 쿠팡페이는 작년 4월 분사된 뒤 처음 공개된 연간 매출액이 1896억원, 당기순이익은 15억1100만원을 기록했다. 모회사인 쿠팡이 작년 한해 6144억원, 올해 1분기 333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내고 쿠팡풀필먼트서비스,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 등 주요 주회사가 순손실을 내고 있는 가운데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 중이다. 쿠팡의 거래액은 작년 기준 21조원에 달하는데 상당수 고객이 쿠팡페이를 통해 제품을 결제하면서 수수료 수익이 늘었다.
쿠팡이 후불결제 서비스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는 반면 네이버와 카카오는 올해 들어서야 금융위원회로부터 서비스 개시 허가를 받았다. 네이버는 지난 4월부터 만 19세 이상, 네이버페이 가입기간 1년 이상 사용자 일부를 대상으로 후불결제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시범 도입했다. 신청자 중 네이버의 심사를 통과한 사람에게 월 20만~30만원의 한도가 부여된다. 카카오페이는 모바일 후불결제 교통카드에 선불충전금이 부족한 경우 최대 월 15만원 한도에서 후불결제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하반기 중 시작할 예정이다.
금융당국은 후불결제가 보유한 자금 여력을 뛰어넘는 과도한 소비를 부추긴다는 이유로 고객의 금융정보를 보유한 금융기관에 대해서만 서비스를 허용하고 있다. 다만 네이버와 카카오처럼 고객이 미리 돈을 충전해두고 쓸 수 있게 하는 선불전자지급수단 발행 및 관리업자(선불업자)의 경우 기본적인 개인정보나 구매 이력 등 비금융정보를 신용평가가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해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 신용카드업 허가를 받지 않고도 후불결제를 허용하는 특례를 주기로 했다.
같은 후불결제 서비스인데도 쿠팡이 금융당국 승인을 받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네이버, 카카오와 달리 상품대금을 받아야 하는 주체가 100% 쿠팡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고객들에게 돈을 받아야 하는 기한을 약간 늦춰주는 외상 개념이다. 나중결제 서비스가 적용되는 상품은 쿠팡이 직매입하는 로켓배송 상품 뿐이다. 반면 네이버, 카카오는 플랫폼 내에서는 물론 편의점, 대중교통 등 밖에서도 자신들의 간편결제 시스템을 쓸 수 있게 한다. 카드사의 신용 서비스에 가깝다.
쿠팡이 지금은 자사 플랫폼 내에서의 간편결제 서비스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방대한 고객 데이터와 간편결제 운영 노하우를 토대로 향후 금융 서비스로 사업을 확장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쿠팡페이는 최근 금융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한 경력직원을 모집하면서 신용카드와 핀테크사에서 신용카드·여신 관련 실무를 경험한 사람을 우대한다고 밝혔다. 쿠팡이 벤치마킹한 미국 아마존은 2002년부터 은행과 협업, 신용카드를 발급하고 있다. 카드 고객이 유료 멤버십에 가입하면 캐시백, 무료배송, 할인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고객을 늘리고 수익기반을 확대하고 있다.
금융업계에선 쿠팡이 나중결제를 통해 연체율이 낮은 우량 고객 데이터를 확보해 아마존처럼 시중은행과 협력해 신용카드를 발급하거나 납품업체를 대상으로 대출을 하는 등 금융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서 네트워크 효과(고객이 다른 고객을 부르는 효과)를 얻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쿠팡이 아마존 모델을 벤치마킹 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동기는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