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무풍지대로 불리는 화장품 업계가 서울 강남, 홍대, 종로 등 주요 상권에 보유한 점포를 배송거점으로 하는 퀵커머스 (Quick commerce)기업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퀵커머스란 소량 품종을 오토바이, 도보로 1~2시간 내 배송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CJ올리브영이 2018년 선보인 화장품 즉시 배송 서비스 '오늘드림'의 작년 일평균 주문건수가 전년 대비 13배 늘었다. / CJ올리브영 제공

1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국내 헬스앤뷰티(H&B) 1위 CJ올리브영은 지난 6일 서울 서초·송파·노원·관악구에서 ‘도보배달’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다. 고객이 온라인으로 제품을 주문하면, 도보배달 기사가 집 근처 올리브영 매장에서 제품을 배송해 주는 서비스다. 올리브영은 시범 서비스를 거쳐 전국 배송 확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이 회사는 지난 2018년 업계 최초로 주문 3시간 내 즉시배송하는 ‘오늘드림’ 서비스를 선보였다. 그동안 이륜차 배송 전문업체인 메쉬코리아(부릉), 바로고와 협약을 맺고 주로 오토바이로 배달하고 일부 도보배달을 했다. 앞으로는 수도권 주요 상권에 위치한 점포를 폭넓게 활용할 수 있도록 도보배달 및 고객들이 직접 픽업할 수 있는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오늘드림을 처음 선보였을 때만 해도 CJ올리브영의 주력 품목인 화장품은 빠른 배송 수요가 많은 상품이 아니라는 시각이 많았다. 소비자들이 매일 쓰는 기초 화장품은 떨어지지 않게 미리 사두고 색조나 메이크업 제품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직접 체험해보고 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화장품은 쿠팡, G마켓, 옥션 등 빠른 배송을 무기로 삼는 전자상거래 기업들이 맥을 못추는 분야이기도 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온라인 유통업체의 매출에서 가전·전자 비중이 2017년 1월 10.6%에서 작년 1월 21%로 증가하는 동안 화장품은 6%에서 4.8%로 오히려 감소했다. 작년 매출 증가율도 패션·의류(2.2%), 스포츠(8.9%) 다음으로 화장품(16%)이 낮았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소비가 급증하면서 작년 오늘드림 일평균 주문건수는 전년 대비 13배 증가했다. 쿠팡,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등 유력 이커머스에 입점하지 않고 자사 온·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제품을 판매해 이뤄낸 성과다. CJ올리브영 관계자는 “빠른 배송이 목적이 아니라 온·오프라인 간 시너지 확대를 위한 전략의 일환이었는데 소비자들의 수요가 기대보다 많았다”고 설명했다.

CJ올리브영은 경쟁사인 GS리테일(007070)의 랄라블라와 롯데쇼핑(023530)의 롭스가 매장을 줄이는 동안 나홀로 점포수를 늘린 것이 퀵커머스 서비스엔 도움이 됐다. 올리브영 매장 수는 작년 말 기준 1259개로 전년도(1246개) 대비 소폭 늘었다. 같은 기간 랄라블라와 롭스는 각각 124개, 101개로 매장 수가 16개, 28개 줄었다. 대규모 물류센터만 보유하고 소규모 오프라인 매장이 없는 쿠팡이 따라할 수 없는 서비스이기도 하다.

지난 4월 29일 아모레퍼시픽의 오프라인 화장품 전문매장 아리따움이 모바일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요기요에 입점했다. /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퀵커머스로의 전환은 화장품 업계 전체의 화두다. 랄라블라는 작년 3월 모바일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요기요를 통해 홍대, 신림, 건대 등 수도권 50여개 점포 제품을 1시간 내 배송하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아모레퍼시픽(090430)도 오프라인 전문 매장인 아리따움을 지난달 29일 요기요에 입점시켰다. 현재 강남, 노원, 시흥 등 수도권 35개 점포에서 시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에이블씨엔씨도 지난해 심부름앱 ‘김집사’와 손잡고 미샤와 화장품 편집숍 ‘눙크’ 화장품을 주문하면 당일에 제품을 배송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에뛰드하우스·토니모리 등 주요 로드숍 브랜드도 모바일 배달 앱 배달의민족의 B마트(생필품·식품 30분 배달 서비스 제공)에 입점했다.

화장품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은 화장품의 온라인 침투율이 낮은 편이지만 코로나19를 계기로 온라인 소비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늘고 배민, 요기요 등 배달 앱들이 배송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며 “다만 고객들의 수요가 얼마나 될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배달 대행 업체 등과 협약을 맺고 시범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확대 가능성을 검토하는 단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