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 질이 나쁜 게 아니라면 저렴한 게 제일 중요하죠. 스피커를 사고 싶었는데 여기서 팔았으면 바로 샀을 것 같아요.”
지난 19일 오후 12시 신세계 파주 프리미엄아울렛의 중고 전문판매 매장인 리씽크. 이곳에선 전자제품과 명품가방, 화장품 등 중고·리퍼(환불)·재고 상품을 주로 판매하고 있었다.
20분째 매장을 두리번거리던 박용진(34)씨는 “스피커를 구매하기 위해 아내와 아웃렛을 방문했다가 지나가는 길에 이 매장을 들렀다”면서 “모든 제품이 새 것처럼 멀쩡한데 중고라고 30% 이상 할인을 하니까 나중에 TV를 바꿀 일이 있으면 한번 와볼까 싶다”고 말했다.
중고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중고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개선되고 고물가 부담이 커지면서 알뜰족이 등장한 데 따른 것이다.
거래형태도 온라인에서 오프라인 매장으로 확대되고 있다. 백화점, 아웃렛 등에 중고 물품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매장이 속속 입점하고 있다.
◇ “주말엔 발디딜 틈없이 북적, 명품백도 인기“
지난 8월 신세계 파주프리미엄아울렛에 개장한 리씽크는 주말이 되면 소비자들이 북적일 정도로 빠른 시간에 자리를 잡았다. 리씽크에 따르면 주말 방문객은 최대 1000명 수준이다. 매장 직원 A씨는 “주말에는 매장이 발 디딜 틈 없이 꽉 찬다”며 “아르바이트생도 주말에는 3명 정도 두고 있다”고 말했다.
매장 출입구에는 ‘리퍼폰 80% 할인’이라는 현수막이 크게 걸려있었다. 일종의 미끼상품이다. 매장에 들어오면 작게는 10%대에서 많게는 90%대까지 할인된 상품을 찾을 수 있다. 건강기능식품이나 화장품은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일수록 할인율이 높았다. 정가 48만6000원의 녹십자 앰플 세트는 유통기한이 내년 3월까지로 94% 할인해 3만8000원에 판매 중이었다.
롯데백화점 마산점에는 지난 5월 국내 최대 중고명품숍 ‘구구스’가 입점했다. 구구스는 전국에 29개 직영매장을 두고 있다. 이달 21일에는 청담 명품거리에 110평 규모로 새로운 매장을 열기도 했다.
신세계 여주 프리미엄아울렛에도 지난달 리빙 리세일 플랫폼인 ‘풀티’가 단독 입점했다. 풀티는 중고 가구를 매입한 뒤 검수와 세탁을 거쳐 재판매하는 업체다. 지난 5월 더현대서울에서 풀티 팝업스토어(임시 매장)도 열었다.
현대시티아울렛 가산점에는 지난해 2월 중고명품 자판기 파라바라의 ‘엑스클로젯’이 생겼다. 구매와 판매를 자판기를 통해 무인으로 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중고 명품을 판매하는 자판기가 아웃렛·쇼핑몰 등에 들어오게 됐는데 자판기를 찾는 사람들의 수요가 꽤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또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신촌 유플렉스 한 개층 전체에 중고제품 전문관인 ‘세컨드 부티크’를 입점시키기도 했다. 세컨드 부티크는 작년 9월 문을 연 이후 평일 300여명, 주말 700여명의 일 평균 방문객을 기록하고 있다. 그 중 20·30대가 85% 이상을 차지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중고거래를 활발히 하는 MZ세대(1980~2006년 사이 출생자) 소비자를 겨냥하기 위해서 백화점 업계에서 중고매장을 도입하는 것”이라면서 “주 소비계층의 연령대가 많이 내려온 만큼 MZ의 트렌드를 반영한 매장들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만 계속 쓰면 질려…싸게 사고 쉽게 되팔아 다양한 제품 쓴다”
중고·재고 시장이 급성장한 것은 MZ세대의 중고에 대한 달라진 인식 때문이다. 돈을 아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중고를 구매하는 수요도 있지만 싸게 사고 쉽게 되팔면서 다양한 상품을 경험해보려는 소비자가 늘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따르면 MZ세대가 중고 패션소비에 적극적인 이유는 ‘정가로 구매하기 부담되는 제품이나 유행인 제품을 비교적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어서’인 것으로 나타났다.
구매한 제품을 일정 기간 사용하고 나서 다시 중고로 되파는 것도 유행이 됐다. MZ 사이에서는 중고패션을 ‘N차 신상’이라고 칭하는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도 값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 명품의 특성을 이용해 중고로 구매해 사용한 뒤 다시 파는 식으로 비싼 명품을 사용해보는 것이다.
번개장터가 발간한 ‘미래 중고 패션 트렌드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번개장터에서 이뤄진 중고 패션 거래 중 MZ세대의 참여 비율은 78%인 것으로 나타났다.
◇ 유통업계 “중고시장 확장 전망, 빈티지 팝업 적극 검토할 것”
유통업계에서는 중고시장 확장 추세가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오프라인 중고매장이 온라인 중고매장보다 선호될 가능성이 높다고도 보고 있다. 중고거래 특성상 상품 상태를 직접 보고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고시장 확대가 세계적인 추세라는 점도 앞으로 중고 물품을 취급하는 매장이 속속 입점될 것이라고 보는 이유다. 프랑스 전문경제분석연구기관(Xerfi)에 따르면 지난해 프랑스 중고거래 시장규모는 90억 유로로 전년 대비 21% 커졌다.
2021년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갈르리 라파예트 백화점은 중고 패션 전문매장, 프랭탕 백화점은 지난해 9월 중고명품 매장을 입점시켰다. 2020년 독일 베를린의 카르슈타트 백화점에는 주방용품, 가구, 패션 등을 포함한 중고패션과 생활용품 제품을 파는 매장이 들어섰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서 먼저 중고 매장을 백화점에 입점시키기 시작했는데, 백화점엔 비싸고 좋은 물건만 들어와야 한다는 생각을 깬 사례”라면서 “빈티지 의류, 빈티지 물품에 대한 소비자 반응이 좋은 만큼 앞으로도 팝업 매장 입점부터 차곡차곡 실험해볼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