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와니예의 이준 셰프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스와니예에서 인터뷰를 갖고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박상훈 기자

‘한식’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떤 것이 가장 먼저 생각날까. 김치, 비빔밥, 불고기 등 여러 음식이 머릿속에 떠오를 수 있다. 그러나 그저 메뉴로만 한식을 바라보지 않는 셰프가 있다. 바로 미슐랭 2스타 스와니예의 이준 셰프다.

이준 셰프는 한식을 단순히 음식으로만 정의하지 않는다. 그보다 한 단계 더 넓게 생각한다. 그는 한식을 ‘행위’로서 바라본다.

가령 비빔밥을 예로 들어보자. 비빔밥을 비빔밥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나물, 고추장, 참기름, 밥 등 모두 다 필요해 보인다. 그렇지만 비빔밥을 가장 비빔밥답게 만드는 것은 재료가 아닌 바로 ‘비비는 행위’다. 좀 뜻밖인 재료인 버터, 마가린 등이 들어가도 상관없다. 아무리 서양적인 재료여도 한데 ‘비벼지는’ 과정을 통해 비빔밥이라는 한식으로 재탄생한다.

김치 역시 마찬가지다. 가끔 파스타와 같은 양식을 먹다 보면 느끼하거나 물리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이때 간절히 생각나는 것은 김치 한 조각이다. 그 순간 김치를 곁들면 ‘마법’과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아무리 주재료가 양식이어도 김치가 가미되면 순식간에 ‘한식스럽게’ 바뀐다.

행위로서 한식을 바라보다 보니 이준 셰프가 추구하는 한식은 보다 자유롭고 독창적이다. 한식이라면 특정 재료가 들어가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서 벗어 나서다. 따라서 스와니예는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매 시즌 코스를 바꿔왔다.

그중 바꾸지 않은 메뉴가 하나 있다. 바로 ‘서래 달팽이’다. 한국인이라면 익숙한 을지로 골목에서 먹는 골뱅이무침과 계란찜의 감성을 고급스럽게 풀이한 메뉴다. 언뜻 보기에는 한식과 동떨어져 보이나 함께 먹었을 땐 또 ‘우리’만의 감성이 느껴진다.

스와니예의 대표 메뉴 중 하나인 '서래 달팽이'. 서래 달팽이는 달걀찜 위에 국내산 달팽이, 대파 오일, 시금치, 파마산 치즈 등이 올라간 메뉴다. /박상훈 기자

이 메뉴는 폭신한 계란찜 위로 트러플과 국산 달팽이, 시금치, 파마산 치즈가 듬뿍 올라가 있다. 첫 맛은 트러플 특유의 향이 탁 치며 시금치의 향긋함이 이를 감싼다. 이어 폭신하게 쪄낸 계란이 입안에서 풀리며 쫄깃한 달팽이와 파마산 치즈가 고소하게 어우러진다. 이어 대파에서 추출한 오일의 향긋한 풀 향이 코를 타고 올라온다. 식감에서 골뱅이를, 입안에 남은 여운에서 파절이 무침이 느껴지는 신기한 메뉴다.

또한 메인 코스 중 하나인 한우 스테이크에서도 한식 문화를 엿볼 수 있다. 한국에서만 두드러지는 특징인 반찬이 함께 준비돼 있기 때문이다. 잘 구워낸 한우 주위로 호두 멸치볶음, 골뱅이 쪽파 페스토, 오이지 등을 취향에 맞게 곁들여 먹으면 된다.

고기만 먼저 맛보면 한우 특유의 진한 육즙이 소금과 만나며 감칠맛을 폭발시킨다. 이어 골뱅이 페스토를 곁들면 고기와 어리굴젓을 함께 올려먹는 듯한 느낌도 든다. 나머지 반찬들 역시 입맛에 맞게 배합해 먹으면 된다. 스스로 반찬을 배합해 먹는 것, 한식의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다.

스와니예라는 이름은 프랑스어로 ‘멋지다’라는 의미다. 이준 셰프의 별명이기도 하다. 해외 주방에서는 맛, 모양, 담음새 모두 멋질 때 ‘스와니예’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이 셰프의 목표도 거기에 있다. 도전적인 음식을 하되, 누구나 맛봤을 때 자신의 별명을 감탄사로 외쳐주는 것 말이다.

스와니예의 한우 스테이크. 잘 익은 고기를 중심으로 한우 소꼬리 멸치 호두 볶음, 골뱅이 깻잎 페스토 등 여러 반찬이 놓여 있다. /박상훈 기자

―간단한 약력 소개 부탁드린다.

“스와니예의 이준이다. 한국과 미국 등에서 요리를 공부했다. 어릴 적부터 만드는 것을 좋아해 요리사의 꿈을 갖게 됐다.”

―스와니예라는 이름은 다소 독특하다. 스와니예는 어떤 곳인가.

“스와니예는 현대 서울 음식을 표방하는 곳이다. 한국인이 갖고 있는 식습관과 문화를 현대적으로 풀이하려고 한다. 이름은 프랑스 말인 스와니예(Soigne)에서 착안했다. 외국 주방에서는 잘 만든 음식을 두고 스와니예라고 한다. ‘완벽하다(Perfect)’라는 감탄사도 쓰나 이는 조금 조금 차가운 느낌도 있다. 반면 스와니예는 따스한 느낌이 맴도는 감탄사다. 이러한 음식을 고객들을 선보이고 싶다.”

―스와니예가 바라보는 한식은 무엇인가.

“한식은 독특하다. 단순히 한국 재료를 한국 조리법으로 풀이한 음식만이 한식이 아니다.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도 한식으로 볼 수 있다. 여러 메뉴를 시켜서 다 같이 나눠 먹는 것도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한식 역사를 보면 단순히 특정한 규칙에 따라 만들어지기 보다 그 규칙이 깨지면서 문화가 만들어지는 특징을 볼 수 있다. 물론 반상에 몇 개의 반찬이 올라가야 한다는 그런 최소한의 규범은 있었지만 가장 중요시한 것은 ‘정성’이다. 제사에서도 무엇을 꼭 올려야 하기보단 간소하더라도 정성이 담기길 바라지 않았는가.”

―한식을 규정하기 어렵다고 했는데, 구체적인 내용을 더 듣고 싶다.

“사실 한식을 대표하는 음식을 물어봤을 때 모두가 다른 대답을 내놓을 것이다. 일본은 초밥, 베트남은 쌀국수가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우리는 ‘한국 사람’처럼 음식을 먹을 때 한국 사람답다고 말한다. 외국인이 소주를 잘 마신다 해서 한국 음식을 잘 먹는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맥’을 잘 마시면 한국 사람 같다고 한다. 맥주가 한국 고유의 술은 아니지만 우리만의 즐기는 방식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식을 맛 외에도 행위에서 정의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준 스와니예 셰프가 요리하는 모습. /박상훈 기자

―스와니예는 어떤 식으로 한식을 발전시켜 왔는가.

“한식을 관통하는 여러 키워드를 잡아놓고 메뉴를 개발하고 있다. 하나는 지질학적인 요소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 ‘재료’다. 한국 땅에서 자라야 맛있는 재료들이 있다. 또한 식문화와 같은 인문학적인 특징도 고려한다. 한국은 보양을 중요시한다. 또한 절기에 맞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한다. 발효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보통 메뉴를 만들 때 이러한 특징들이 반드시 하나 이상 들어가도록 하고 있다.”

―'서울스러움’이란 무엇인가.

“사실 딱 하나의 메뉴를 골라서 서울의 음식이라고 할 수 없다. 서울은 독특한 곳이다. 도심을 보면 고궁도 볼 수 있으나 바로 맞은편에 고층 건물도 있다. 산도 있는데 강도 있다. 각 동네마다의 특징도 다르다. 가까이서 봤을 땐 다 달라 보이나 멀리서 보면 ‘서울’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인다. 이 오묘한 경계를 음식으로 풀어보고 싶었다. 각 재료만 봤을 땐 개성이 강해 보이나 한데 묶이면 조화롭게 한식으로 느껴지는 것 말이다.”

―그런 메뉴가 스와니예엔 있나.

“업장에서 가장 오래된 메뉴인 ‘서래 달팽이’가 그러하다. 대부분의 서울 사람이라면 을지로 골뱅이 골목이 익숙할 것이다. 그 서울 사람들의 감성을 살리고 싶었다. 골뱅이와 파절이가 들어가지 않았지만 설명을 듣게 되면 그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먼저 폭신한 계란 푸딩과 달팽이로 골뱅이와 계란찜의 느낌을 주려 했다. 이어 파에서 추출한 오일을 통해 파절이의 느낌도 날 수 있도록 했다. 하나하나 먹었을 땐 골뱅이무침을 떠오르기 힘드나 한 입에 다같이 먹었을 때 느낌이 나도록 한 것은 우리 스와니예만의 장치다.”

―스와니예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무엇인가.

“요리는 하나의 영화와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배우만 중요한 것이 아닌 그 뒤에 있는 스태프들도 중요하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고생한 모두의 이름이 나오듯이, 모든 직원들이 보람찼으면 좋겠다. 또한 요리를 끊임없이 ‘창작’하는 곳으로 남고 싶다. 사실 스와니예는 ‘처음’ 시도하는 것들이 많다. 투명한 요리를 통해 밖에서도 주방 전체를 볼 수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투명한 업장으로 남아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곳으로 기억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