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과해 볼 수 있는 TV 뒤에 TV를 배치한 입체적인 미디어 아트, 한가지 색이 아닌 다양하고 화려한 색을 지닌 편견을 깬 자동차, 컬러로 세상을 꾸민다는 페인트.

지난 5일 찾은 글로벌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 2024′는 세계 유명 미술 작품 전시는 물론 LG전자, BMW 등 글로벌 기업들이 예술가와 협력해 만든 작품을 선보이는 아트페어로 진화해 있었다.

이날 프리즈 서울은 ‘기업, 아트 컬래버’의 결정판이었다. 아트 컬래버는 기업이 자사 브랜드 가치 또는 핵심 메시지를 고객에게 전달하고자 예술가와 협업하는 다양한 활동을 말한다. 예술가가 기업 제품 디자인에 참여해 실제로 제품을 만드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날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에선 기업 브랜드 가치를 담은 예술가의 작품들이 전시됐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프리즈 서울에 입장 QR코드를 찍고 들어섰다.

5일 서울 코엑스 ‘프리즈 서울’에 전시된 일본 아티스트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PUMPKIN)’. /박용선 기자

아트바젤과 함께 세계 양대 아트페어로 꼽히는 프리즈답게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었다. 가나 출신으로 최근 미술계에서 가장 핫한 아모아코 보아포의 ‘딥 레드 베고니아 드레스(Deep Red Begonia Dress)’, 비디오 미술의 선구자 백남준의 ‘구/일렉트로닉 포인트’, 일본 아티스트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PUMPKIN)’ 등 작품들이 넘쳐 났다.

하지만 이번 프리즈 서울에선 기업 아트 컬래버가 새롭게 주목받았다. 유명 작품들이 전시된 갤러리 부스를 지나자, 이번 프리즈 서울 파트너 기업들이 전시한 아트 컬래버 작품들이 하나둘 자리 잡고 있었다.

서도호 미술가와 서을호 건축가 형제는 수묵 추상의 창시자로 불리는 부친 고(故) 서세옥 화백의 작품을 ‘LG 투명 올레드 TV’를 통해 재해석했다. /박용선 기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곳은 LG전자 전시장이었다. LG전자는 이날 수묵 추상화 미디어 아트를 선보였다. 서도호 미술가와 서을호 건축가 형제가 수묵 추상의 창시자로 불리는 부친 고(故) 서세옥 화백의 작품을 ‘LG 투명 올레드 TV’를 통해 재해석했다.

투과해 볼 수 있는 투명 올레드 TV 바로 뒤에 올레드 에보(evo)를 배치해 ‘사람’ ‘행인’ 등 서세옥 화백의 작품이 앞뒤 두 개의 TV 화면으로 겹쳐 보여 입체감과 공간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LG 투명 올레드 TV가 국내에서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장에서 만난 글로벌 갤러리 리만머핀의 손엠마 서울 수석디렉터는 “기업이 예술가와 협업하는 것은 기업의 고객 소통 채널을 보다 고급화, 다양화할 수 있는 방안인 동시에 예술가도 고객과 만날 수 있는 새로운 통로”라며 “기업 아트 컬래버는 기업 브랜드 가치 제고, 미술 시장 대중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BMW가 추상화의 거장인 줄리 머레투와 협업해 제작한 20번째 BMW 아트카. /박용선 기자

BMW는 미국 추상화의 거장 줄리 머레투와 협업해 제작한 20번째 BMW 아트카를 아시아 최초로 공개했다.

기존에 운전하던 한가지 색의 자동차가 아니었다. 머레투는 BMW M 하이브리드 V8 차량을 캔버스로 사용해 복잡한 레이어와 다양한 색을 활용해 BMW 아트카를 디자인했다.

머레투는 이 작업을 통해 자동차가 단순히 이동 수단이 아니라, 예술적 표현의 도구로 변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동시에 BMW가 추구하는 드라이브의 즐거움을 표현했다.

BMW는 지난 1975년부터 전 세계 예술가들과 협업해 BMW 차량이나 레이스 카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 BMW 아트카를 제작해왔다. 앤디 워홀, 제프 쿤스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현재까지 BMW 아트카 컬렉션에 참여했다.

노루페인트의 컬러 기술력을 담은 미디어 아트. /노루페인트 제공

노루페인트는 자사 컬러 기술력을 경험할 수 있는 미디어월을 설치했다. 방송인 노홍철, 비주얼 아티스트 오쿠다 산 미구엘이 다양한 색으로 개성을 표현한 공간 아트 ‘홍철원더랜드’ 영상을 미디어월을 통해 상영했다. 핵심 메시지는 ‘당신이 어디에 있든, 노루페인트는 항상 함께할 것이다(Wherever you are, NoROO will always be with life)’였다.

노루페인트 관계자는 “노루페인트가 단순 도료 제작 업체가 아니라, 주변 곳곳에 있는 색을 찾아내 만들고 그 색이 전 세계를 구성한다는 회사의 역할과 메시지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조 말론 런던과 이광호 작가가 협업한 설치 작품. /박용선 기자

향수 브랜드 조 말론 런던은 이광호 작가와 협업한 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브랜드 전시장 전체를 향, 촉감, 기억을 아우르는 감각적인 공간으로 꾸몄다.

조 말론 런던은 여러 향을 겹쳐 쓰는(layering) 것으로 유명하다. 이날 조 말론 런던은 이광호 작가와 브랜드 시그니처 향인 블랙베리 앤 베이, 잉글리쉬 오크 앤 헤이즐넛을 조합한 향을 시각화했다. 현장 관계자는 “작가가 농부였던 조부모님과의 유년 시절 추억을 바탕으로 시골 풍경을 시각화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커피 브랜드 일리카페는 한국 현대 미술계의 거장 이우환 작가와 협업해 출시한 ‘일리 아트컬렉션 이우환 에디션’을 테마로 한 공간을 연출했다. 방문객과 전시 참가자들 대상으로 커피도 판매했다. 일리 아트컬렉션은 일상적인 커피잔을 캔버스로 변모시킨 작품으로, 30년 넘게 130명이 넘는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참여했다.

김대환 비자인 대표는 “예술은 기업 철학, 핵심 가치를 비주얼화기에 가장 적정한, 언어의 장벽을 벗어날 수 있는 도구”라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기업이 유명 예술가와 협업하는 아트 컬래버가 보다 활발해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