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무현 무오키 오너셰프 . 무오키는 미슐랭 1스타 컨템퍼러리 레스토랑이다./ 전기병 기자

옛말에 ‘이름 따라간다’는 표현이 있다. 우연의 일치로 치부할 수 있지만 많은 경험을 토대로 생겨난 말일 것이다. 한국 파인 다이닝계에도 그런 곳이 있다. 바로 ‘무오키’다.

무오키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방언으로 ‘참나무’를 뜻한다. 이곳을 이끌고 있는 박무현 셰프는 나무에 매료된 셰프다. 늘 한곳에 우직하게 서 있으며 더운 여름에는 선선한 그늘을 선사하는 안식처 같은 나무. 그는 무오키가 그런 곳이 되길 꿈꾼다.

참나무는 또한 강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레스토랑 무오키도 마찬가지다. 무오키가 처음 개업했을 당시만 해도 박무현 셰프는 극심한 재정난에 시달렸다고 한다. 업장을 열기 위해서 무리하게 돈을 빌린 것이 화근이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업장이 ‘시든 것’ 같이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가지가 잘려나간 나무가 다시 새로운 가지를 틔우듯 무오키는 생명력을 되찾았다. 바로 가장 힘든 시기에 미슐랭 1스타에 선정된 것이다. 개업 1년 만에 받은 미슐랭 별이라 그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박무현 셰프는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었던 것을 자신의 ‘나무다움’을 꼽았다. 힘들지만 우직하게 버텨냈기에 지금의 성과도 있었다는 설명이다.

지금 박무현 셰프가 제공하는 무오키의 코스도 이런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는 한 재료에 꽂히면 우직하게 그 메뉴를 ‘파헤친다’. 7가지 방법으로 조리한 토마토, 5가지 방식으로 만든 당근 디저트 등 그 만의 고집이 느껴지는 메뉴가 무오키엔 넘쳐난다.

비트를 활용한 무오키의 애피타이저. 새콤하게 절여진 비트에 졸인 위스키 소스를 올려 염소 젖 치즈 등과 함께 곁들여 먹는 메뉴. /무오키

지난봄 시즌에 무오키를 대표할 수 있는 메뉴는 아마 ‘비트’를 활용한 애피타이저일 것이다. 이 메뉴는 새콤하게 절여진 비트에 졸인 위스키 소스를 올려 염소젖 치즈 등과 함께 곁들였다. 봄이 주는 싱그러움을 그대로 접시에 담아내고자 했다. 첫 맛은 새콤하게 식욕을 이끌어 내면서 위스키의 향이 입안을 머금는다. 다소 새콤하다 느껴질 때 치즈의 꾸덕꾸덕함이 이를 눌러주며 고소한 뒤 마무리를 이끌어 낸다.

참치를 이용한 ‘다타키(겉면을 살짝 구워내는 요리 기법)’도 대표 메뉴 중 하나다. 먼저 참치를 살짝 그을려 맛을 한껏 끌어올린다. 이어 레몬 향을 한껏 머금은 상큼한 해선장 소스와 섞이면서 그 감칠맛이 고조된다. 곱게 갈린 애호박 퓨레를 곁들이면 고소함과 호박 향이 입안에 퍼진다. 또한 베이스에 깔린 참기름이 우리에게도 친숙한 반가운 맛을 더해준다. 살짝 익힌 부드러운 참치, 녹진한 퓨레, 단단히 씹히는 콩이 대비를 주면서 재미있는 한입을 완성한다. 중간중간 혀끝에 걸리는 피 슛(Pea shoot·콩과의 어린잎)이 허브와 비슷한 향을 더해주며 입안을 환기 시켜준다.

무오키의 참치를 이용한 다타키 메뉴. 애호박을 이용해 만든 퓨레와 콩과 곁들여 먹는 음식. /무오키

지중해산 농어(브란지노)를 이용한 요리도 이곳의 별미다. 농어만 먹었을 땐 껍질의 바삭함이 육즙과 만나며 그대로도 훌륭한 맛을 낸다. 씹을수록 퍼져 나오는 육즙은 농어와 같이 두툼한 살을 갖고 있는 생선의 강점이다. 초당 옥수수를 사용한 세 가지 소스는 여러 ‘미(味)’의 채도도 느끼게 해준다. 여름의 햇빛을 한껏 품은 달콤한 콘 퓨레는 농어와 환상의 궁합이다. 이보다 살짝 농도가 묽은 에스푸마 소스는 포크로 푹 떠서 먹기에도 간이 알맞다. 위 소스를 옥수수의 알갱이와 같이 먹으면 여러 버전의 스프를 먹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메인이 끝나고 나면 참외를 이용한 달콤한 디저트가 준비돼 있다. 무려 4가지 종류의 디저트인데, 각각의 디저트는 참외가 갖는 아삭함, 달콤함, 싱그러움 등을 모두 품고 있다. 특히 참외 소르베는 그대로 참외를 얼려 갈아온 듯한 맛이 난다. 곱게 갈린 참외 알갱이들이 달콤하게 입안에 시원하게 퍼져 나가는게 특징이다. 마지막으로 수박 과즙이 담긴 봉봉(Bonbon·액체류를 초콜릿으로 코팅해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디저트 종류), 피스타치오와 패션프루츠를 섞어 만들어 낸 타르트로 커피와 함께 그동안의 미식 여정의 마침표를 찍는다.

지중해산 농어(브란지노)를 이용한 요리. 옆에는 초당 옥수수를 이용한 세가지 소스가 주어진다. /무오키

가을 역시 제철 요리를 활용한 여러 메뉴가 준비돼 있다. 박 셰프는 가을이야말로 추수를 앞둔 풍요로운 계절이기에 그 느낌을 고스란히 살리려 한다. 한곳에 우직하게 서 있는 나무처럼, 그는 고객들이 편하게 머물고 갈 수 있는 ‘쉼터’를 앞으로도 만드는 것이 꿈이다.

―무오키에 대해 설명해 달라.

“무오키는 오픈한 지 7년이 돼가는 레스토랑이다. 20석 정도로 작은 규모긴 하나, 보는 즐거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오픈 키친을 고수하고 있다. 무오키에 오면 셰프들과 스텝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치 하나의 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주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했더라면 좋은 구경이 될 수 있다.”

―이름을 ‘무오키’로 지은 이유가 있는가.

“개인적으로 나무를 좋아한다. 참나무는 숯으로도 자주 사용되며 우리에게 익숙한 나무다. 또한 이전에 남아공에서 5년간 살았던 적이 있다. 케이프타운에 살며 힘들 때마다 근처 숲 공원을 찾았는데, 그 곳엔 눈에 띄는 아주 커다란 나무가 있다. 내겐 안식처와도 같았던 나무다. 추후 레스토랑을 준비할 때 나무에 관한 용어를 찾아보니 ‘무오키’란 단어가 있더라. 내 이름에도 무가 들어간다. 큰 고민 없이 ‘무오키’로 정한 이유다.”

무오키의 메인 메뉴 중 하나인 돼지 요리. /무오키

―무오키가 추구하는 ‘맛’은 무엇인가.

“직관적인 맛을 추구한다. 단순 맛있는 것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기에 따라 맛이 극대화되는 제철 식재료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유행을 따라가지 않으려고 한다. 다이닝계를 지켜보면 특정 시기마다 유행하는 식재료, 기법 등이 있다. 그러나 무오키는 거기에 큰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한다. 맛이 있으면 시기와 유행에 상관없이 주목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요리에서 중요시 여기는 부분이 있다면?

“소스를 매우 중요시 여긴다. 알면 알수록 소스는 활용법도 많고 요리 맛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좋은 식재료를 알맞게 구워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셰프라면 이보다 한 단계 더 보여줘야 한다.”

참외를 이용해 만든 4가지 디저트. /무오키

―무오키가 사용하는 소스의 가짓수는 어떻게 되나.

“족히 20~30가지는 된다. 한 요리에 평균 2가지 이상의 소스를 활용한다. 난 가끔 소스를 예술 작품에 비유하곤 한다. 물론 단순한 구조, 단순한 색의 배합으로도 아름다운 작품이 탄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추구하는 예술은 여러 색채가 하나에 어우러져 더욱 아름다운 색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튼튼한 건물이 여러 골재가 합쳐 더욱 단단해지듯이, 설계사가 된 듯 최고의 맛을 구축하고 싶다.”

―좌우명이 있다면?

“우공이산(愚公移山), 우직한 사람이 산을 옮긴다. 힘들지만 계속 노력하다 보면 큰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반대로 싫어하는 말로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 있다.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지만 그 반대 사례가 되고 싶다. 인생의 70%가 운에 좌지우지된다면 얼마나 허망한가.”

―이번 가을 시즌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가을의 풍요로움을 한껏 느낄 수 있게 준비 중이다. 가을은 특히 버섯이 맛이 좋다. 다양한 야생의 버섯으로 그 향긋함을 느낄 수 있도록 메뉴를 구성 중이다. 여러 가지 방식의 조리법을 활용해 버섯의 풍성한 맛을 내려 한다. 귀띔을 주자면 노루 궁둥이 버섯과 송고 버섯을 메인 코스에 이용할 계획이다. 이 외에도 가을 흑임자로 곡식이 익어가는 계절감을 표현할 생각이다. 또한 방아잎의 향긋함을 이용한 디저트로 가을의 청명한 공기를 선사하고 싶다.”

수박 본본, 패션프룻츠와 피스타치오를 이용해 만든 타르트. 여름을 표현하는 무오키의 디저트 중 하나. /무오키

―무오키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우화로 설명하면 ‘토끼와 거북이’의 거북이 같은 셰프가 되고 싶다. 뿌리가 단단할수록 나무는 쉽게 꺾이지 않는다. 예쁜 꽃을 피우고 화려한 나무도 좋지만 무엇보다 깊은 뿌리를 내린 나무가 되고 싶다. 여기서 뿌리는 맛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행복에 관한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들어온 구절이 있다. ‘삶에 가장 큰 행복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다. 돈과 명예 등 타인과의 비교, 시선에 의해 정해지는 피상적인 행복이 아닌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이 구절을 읽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누군가에게 가장 큰 행복을 선사할 수 있음에 뿌듯함이 느껴졌다. 이 직업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무현 무오키 오너 셰프는

▲무오키 現 오너 셰프 ▲밀리우 & 푸드랩 (제주) 前 총괄 셰프 ▲더 테스트 키친 前 총괄 부주방장 ▲퀘이(Quay) 前 근무 ▲더 팻 덕(The Fat Duck) 前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