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없는 자본주의 리부트./에코리브르

‘자본 없는 자본주의’라는 책에서 기계·건물·컴퓨터와 같은 유형 자산 위주의 경제는 가고 지식·관계 중심의 무형 경제가 도래했다고 주장한 두 명의 경제학자들은 이제 새로운 경제에 맞는 새로운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영국 경제 정책 수립에 목소리를 내고 있는 저자들은 책에서 경험에 근거한 사례와 함께 무형 경제 시대의 제도적 해법을 제시한다. 각국이 경기 부양 시도를 되풀이하고 과학 기술은 발전하는데도 우리는 경제가 외부 충격에 취약하고 기업가 정신은 쇠퇴했다는 불만을 느낀다.

책에 따르면 이탈리아 시에나의 공회당에는 암부로조 로렌체티가 그린 벽화 ‘좋은 제도가 시에나 일대에 미친 영향’이 있다. 로렌체티가 이 그림을 그릴 때 시에나 경제는 눈부시게 번영하고 있었지만 그 빛은 프레스코화 물감이 채 마르기도 전에 바래기 시작한다. 그 이유는 제도가 경제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벽화만이 남아 시에나의 흘러간 황금기를 증언하고 있다.

유형자산 중심에서 무형자산 중심으로 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뀌었지만, 각 정부가 옛 방식을 고수해 패착에 이른 경우가 다반사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때도 마찬가지다. 경제는 무형 자산화하는데 제도가 뒷받침하지 못해 무형 자산 투자가 둔화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들은 진단한다. 이들은 “무형 경제를 향한 변화는 나무통 속의 포도즙이 와인이 되는 과정과 같다”면서 “포도즙의 당분을 효모균이 에탄올과 이산화탄소로 다 분해하고 나면 더 이상 포도즙이 아니듯, 무형 자산 증가로 변화한 경제는 예전의 경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저자들은 세계 경제는 이미 상당히 무형화됐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에 따르면 무형 경제는 소프트웨어·데이터·연구개발(R&D)·디자인·브랜딩·교육·훈련·사업 공정·경영 관행, 즉 만질 수 없는 표현적·관계적 자산의 비중이 큰 경제다. 이런 경제의 대표적 특성은 확장 가능성, 스필오버(파급 효과), 매몰성, 시너지다. 저자들은 이런 특성 때문에 경제적 대실망이 나타난다고 본다.

예를 들어 구글·아마존과 같이 신기술을 활용하는 기업은 전 세계 이용자에 대한 정보를 담은 데이터베이스나 고유한 서비스 방식과 같은 무형 자산을 이미 많이 보유하고 있다. 이런 자산은 쉽게 확장하고 시너지를 일으켜 기업에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 반면 이러한 변화에 대응이 한 발 늦은 후발 기업은 무형 자산 개발을 주저하게 되고, 무형 자산의 매몰성 때문에 이들이 감수해야 하는 위험은 더 커진다. 그 결과는 선도 기업과 후발 기업 사이의 좁히기 힘든 격차가 발생한다.

저자들은 무형 경제에 맞는 제도 개혁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일환으로 정부는 일단 무형 자산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한편, 무형 자산을 보유한 사람이나 기업의 권리를 강화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지식 재산권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저자들은 무형 경제 발전에 맞춰 특허·지식 재산권을 신중하게 부여하고, 무형 자산 투자의 범위를 확대하는 한편 연구개발 자금을 대는 공공 기관에 도전을 지원할 재량권을 줘야 한다고 말한다. 이때 투자를 받으려는 쪽이 로비 및 지대 추구 활동을 하거나 국민이 정부 재량권 확대에 반대할 우려가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우선 로비에 흔들리지 않도록 정부 역량을 키워야 할 필요가 있다.

저자들은 “무형 경제에 맞는 제도를 갖추지 못한다면 부분적 오류가 쌓여 전체 시스템을 마비시키듯 제도적 부채가 경제를 멈춰 세울 것”이라고 경고한다.

조너선 해스컬·스티언 웨스틀레이크 지음 | 에코리브르 | 368쪽 | 1만9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