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는 없다./위즈덤하우스 제공

‘참사의 나라’라는 불명예를 가진 한국에서는 요즘도 많은 사람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혹은 일하거나 이동을 하다가 죽는다. ‘사고’는 막을 수 없는 것이며, 개인의 운에 달린 것일까. 왜 예전보다 많은 사람이 사고로 죽을까. 이런 질문들에 “사고는 막을 수 있다”고 말하는 책이 나왔다.

신간 ‘사고는 없다’는 교통사고부터 산업재해, 재난 참사까지 지난 한 세기 동안 벌어진 각종 사고의 역사를 추적함으로써 ‘사고’라는 말이 어떤 죽음과 손상을 감추고 그것이 반복되게 만드는지를 알리는 책이다.

저널리스트인 제시 싱어는 2006년 미국에서 화제가 된 자전거 교통사고로 친구를 잃은 일을 계기로 사고에 대해 본격적인 고민을 시작했다. 그는 사고 및 위험에 관한 문헌과 20세기 초부터 오늘날까지의 방대한 데이터를 검토하고, 고속도로에서 원자력발전소까지 다양한 현장 사례를 취재해 책을 완성했다.

이 책은 사고에 관해 과실·조건·위험·규모·낙인·인종주의·돈·비난·예방·책무성 등 10가지 키워드를 연결해 확장하며 논의를 펼쳐간다.

책이 사고의 속성을 설명할 때 주로 사용하는 관계는 ‘인적 과실’(실수)과 ‘위험한 조건’(환경)이다. 책에 따르면 제한속도를 위반하는 것은 인간의 과실이지만 과속을 하기 좋게 설계된 도로는 위험한 조건이다. 유조선을 몰다 암초에 부딪히는 것은 인간의 과실일 수 있지만 유조선을 모는 사람에게 하루 12시간을 근무하게 한 것은 위험한 조건이다. 저자는 “과실을 예상하고 그것이 생사를 가르는 문제로 이어지지는 않게 할 조건을 만들 수 있다”면서 “권력자들은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환경을 고치기보다 인적 과실을 탓하는 서사를 유포하는 방법을 택해왔다”고 주장한다.

책에 따르면 사고 방지의 핵심은 사고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예방에 집중하는 것이다. 예컨대, 책에서는 미국 정부가 낙상 사고사 증가를 막고자 병원에서 낙상 사고가 발생할 시 병원을 처벌하는 조취를 취하자, 의료진이 환자의 거동 자체를 제한하면서 퇴원 후 낙상이 더 빈발하는 역효과를 낳은 사례를 제시한다. 이와 함께 사고를 막을 수 있었지만 막지 않은 사람들 혹은 기업이나 규제 기관이 사고의 비용을 물도록 책무성의 제도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한다.

저자는 ‘사고란 없다’고 말한다. 불의의 ‘사고’라고 불리는 일의 대부분이 무작위로 닥치는 게 아니라 충분한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이 이 책의 논리다. 그는 이 책 외부에서는 사고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이는 사고로 인한 죽음이나 손상이 우발적으로 일어나며 예견되거나 예방될 수 없다는 잘못된 암시를 줄 수 있어서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사고라는 용어가 어떻게 재난에 대한 조사를 방해하는지, 어떻게 피해자를 비난하고, 사회적인 분노를 희석시키며, 가해자에 대한 공감까지 유도하는지를 밝혀낸다.

제시 싱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456쪽 | 2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