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세기 민주주의./틔움출판

"민주주의란 데이터의 변환이다."

데이터 알고리즘을 이용해 공공 정책을 구상해온 일본 데이터 사이언스 분야 전문가 나리타 유스케는 "무수한 민의(民意) 데이터를 수집, 가공해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에 적용하자"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전 세계가 최선의 제도로 선택한 민주주의가 현재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며, 인공지능(AI) 알고리즘과 블록체인을 비롯한 첨단 정보통신 기술을 통한 22세기식의 민주주의 혁명을 제안한다.

21세기 들어 민주주의는 쇠락의 길을 걷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개선의 움직임은 없다. 22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총선이 9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신기술을 활용한 '데이터 민주주의' 시스템을 활용하자는 주장을 담은 책이 나와 주목된다.

저자는 신간 '22세기 민주주의'를 통해 민주 국가들은 21세기 들어 경제적 번영을 이루고 있지만, 각종 위기 대응에 취약하다고 진단한다. 이를 위해 데이터 알고리즘을 이용하는 등의 대안을 내놓는다.

이 책의 가치는 현재의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 제기에서 나온다. 책은 웹 3.0, AI, 블록체인 기술 등 IT 기술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현대 민주주의 시스템은 바뀐 게 없다고 진단한다.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한 대안이 충분한데도 정치인은 이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에 주목하며 다양한 센서가 민의를 대변하는 무의식 데이터 민주주의, 증거에 기반한 정책 입안, 소수자를 대변하는 유동적 민주주의, 투표권에 가중치 부여, 미래 세대를 위한 정치인 인센티브 도입 등 다양한 대안을 제시한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제휴는 기묘하다. 자본주의는 강자가 기회의 문을 닫아버리는 구조, 민주주의는 약자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주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난 20여 년간의 경제를 보면 민주주의적인 나라일수록 경제성장이 부진했다는 점도 꼬집는다. 민주주의의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할 만한 이런 현상은 중국과 미국 혹은 G7 국가를 제외해도 성립하며 어느 대륙과 지역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 글로벌한 현상이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2인3각'의 '조증과 울증의 균형'이 깨지면서 지금은 자본주의가 조증에 빠져들고 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자본주의가 가속화되면서 민주주의는 중병을 앓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제22대 국회의원선거를 30일 앞둔 11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관계자들이 투표함 등 물품을 점검하고 있다./연합뉴스

책에서 저자는 이를 위해 '무의식 데이터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을 적용해 새로운 방식의 민주주의를 제안한다. 또 알고리즘으로 민주주의를 자동화해보는 구상도 한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선출해 정책을 결정하지 말고, 고도로 발달한 IT를 활용해 민의를 파악하고 그에 따라 기계가 의사결정을 하도록 알고리즘을 설계하자는 다소 파격적인 주장이다. 이것이 작가가 정의하는 무의식 데이터 민주주의다. 인터넷이나 폐쇄회로TV(CCTV) 등에는 각종 글, 대화 등 사안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파악할 수 있는 수많은 단서가 포진해 있고, 이를 수집·분석의 토대로 삼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무의식 데이터 민주주의가 민의에 의한 의사결정(선거 민주주의), 소수의 엘리트나 선민에 의한 의사결정(지식인 전제주의), 정보·데이터에 의한 의사결정(객관적 최적화)을 융합한 것과 같다고 본다. 이러한 의사 결정 알고리즘은 잠을 자거나 쉴 필요 없이 24시간 돌아갈 수 있으며 다수의 사안을 동시다발적으로 처리한다는 장점도 있다는 다소 획기적 생각이다.

저자가 이러한 주장을 하는 데에는 현대의 민주주의가 심각한 붕괴에 직면했다는 전제가 깔린다. 지금의 시민, 유권자가 정보를 얻은 후 이를 학습하고 가치판단해 하는 투표와 각종 데이터를 기반으로 AI가 내리는 판단 중 후자가 더 객관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후보자의 감정적 호소와 분위기에 쉽게 마음을 내준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그런 경향을 증폭하는 역할도 한다. 이것이 대의 민주주의가 망가질대로 망가진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민의를 데이터화하기 위해서는 선거라는 전통적인 행사에서 벗어나 다른 목소리도 들어야 한다. 저자는 무의식 민주주의 알고리의 학습·추정 및 자동 실행 과정은 모두 공개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의 결말 부분에서는 정치인 무용론도 거론한다. 세부 목차에는 '정치인은 고양이와 바퀴벌레가 될 것'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제목도 넣었다. 데이터 알고리즘을 활용하면 기존의 '정치인'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고양이 같은 존재가 이를 대체하는 미래가 올 것이라는 구상을 내놓는다. 이는 다소 공상과학 소설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저자는 남미 대표국 브라질 한 지방의회에서 AI가 만든 조례가 가결되고, 인간의 뇌에 컴퓨터 칩을 이식하는데 성공했다는 소식을 보면서, 그가 그리는 미래상이 단지 상상력으로만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리타 유스케 지음ㅣ서유진·이상현 옮김ㅣ틔움출판ㅣ216쪽ㅣ1만6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