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래를 가져다 쓰고 있다ㅣ윌리엄 맥어스킬ㅣ480쪽ㅣ2만2000원

윌리엄 맥어스킬 영국 옥스퍼드대 철학과 교수는 ‘냉정한 이타주의’라는 표현을 만들어낸 세계적인 학자다. 열정에만 기대는 이타적 행위가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어 아무리 착한 행동이라고 해도 효율성을 따져보고 이성적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다.

맥어스킬 교수가 쓴 ‘우리는 미래를 가져다 쓰고 있다’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이 책에서 ‘장기주의(longtermism)’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미래 세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선택을 지금 시대의 우리가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누구인지도 모를 먼 미래의 후손을 위해 지금 손해를 감내하는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다. 맥어스킬 교수도 그런 점을 잘 알고 있다. 지금의 인류를 ‘경솔한 10대’에 비유하고, 지금의 사회를 아직 뜨거워서 어떤 모양으로든 변할 수 있는 ‘녹은 유리’에 비유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맥어스킬 교수는 낙관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지만, 그가 경고한 재난은 실제로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 생태계 파괴와 핵전쟁의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책을 읽고 있는 지금에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 전술핵을 배치한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장기주의’라는 조금은 낯선 철학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이 책은 전형적인 생태주의 관점으로 접근한다. 사람을 생태계의 일부로 보고 자연과의 공존을 강조하고 있다. 장기주의를 달성하려면 인류가 생태계와 공존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국내에서 생태주의를 대표하는 전문가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이 책의 추천사를 썼다.

여기까지만 보면 재임 시절 환경을 강조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독서노트에 충분히 들어갈 만한 책처럼 보인다. 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운영하는 평산책방 매대에도 충분히 올라갈 자격이 있어 보인다.

만약 이 책을 평산책방에서 볼 수 없다면 그 이유 중 하나는 480쪽에 이르는 전체 책 가운데 단 한 쪽 때문이 아닐까. 이 책의 48쪽에는 ‘전기 1테라와트시(TWh) 생산할 때 사망자 수’라는 그래픽 하나가 나온다.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고나 공기 오염으로 숨진 사망자를 전력원별로 추정한 자료다. 화석연료로 구분되는 갈탄이 32.72명으로 가장 많고 석탄이 24.62명, 석유가 18.43명에 이른다. 가스는 2.82명이다. 반면 맥어스킬 교수가 청정에너지로 분류하는 태양광, 풍력, 원자력, 대체연료는 1명 이내의 사망자만 발생하는 걸로 나온다.

영화 ‘판도라’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문 전 대통령은 과연 원자력을 청정에너지로 분류하는 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맥어스킬 교수는 책의 말미에 다시 한 번 쐐기를 박았다. 그는 독일의 환경운동에 대한 평가를 내리면서 “녹색당은 태양광발전에 대한 지원을 늘렸지만, 원자력발전의 단계적인 완전 중단을 옹호했다”며 “이는 결과적으로 기후에 심각한 피해를 주었다”고 지적했다. 맥어스킬 교수는 원자력발전을 중단하는 정책의 결과로 추가적인 대기오염이 발생해 매년 1100여명이 더 숨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환경과 지구를 위해 원자력발전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지,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다. 심지어 생태주의를 외치는 이들마저도 원자력발전이 인류와 지구의 공존을 위해 필요한 기술이라고 이야기하는 시대가 됐다.

얼마 전 문재인 정부 기간 추진된 탈원전 정책이 야기한 사회적 비용이 47조원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정책은 성공하기도, 또 실패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패가 미친 파급력을 냉정하게 따져보는 일은 다음 번 성공을 위해 중요하다. 그래서 행여 섣부른 판단으로 먼 미래의 후손들, 미래 인류에게 결과적으로 해를 끼치는 선택을 했던 건 아닌지 한 번쯤이라도 되돌아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