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모(40)씨의 아버지는 지난달 급성폐렴으로 갑자기 사망했다. 외아들인 최씨는 장례를 치르고 유품을 정리하다가 아버지가 지역 농협과 지인에게 6억원을 빌린 사실을 알게 됐다. 아버지가 생전 동업자와 농업법인을 설립했다 폐업하면서 큰 빚을 지게 됐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자산은 대부분 팔았거나 담보로 잡혀 있었다. 최씨는 외벌이로 자녀 2명을 키우고 있고 상호금융권에 주택담보대출 4억원이 있었다. 아버지 재산을 상속하면 빚이 10억원까지 늘어날 것을 우려해 실의에 빠졌다. 최씨가 빚더미에 앉지 않을 방법은 없을까.
재산뿐 아니라 빚도 상속된다. 최씨 사례처럼 사망한 부모에게 빚이 있어 재산 상속을 받은 가족이 곤경에 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현행법상 피상속인이 사망했을 때 부동산이나 현금 자산과 같은 적극재산은 물론, 채무 등 소극재산도 상속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노인 빈곤층 증가에 따른 노후파산은 이미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발표한 ‘2023년 연금보고서’를 보면 한국 노인빈곤율은 40.4%로 OECD 회원국 1위다.
피상속인의 빚을 배우자와 자녀들이 반드시 상속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상속인은 상속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노후파산 증가로 상속을 포기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법원에 상속을 전부 혹은 일부 포기하는 신청을 낸 건수는 2019년 4만3799건에서 지난해 5만7567건으로 늘었다.
상속 포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상속인의 지위를 아예 포기하는 ‘상속 포기’와 상속을 받되 상속 재산 한도 내에서 채무를 갚는 ‘한정승인’이 있다. 상속을 포기하면 다른 상속인에게 상속 권한이 넘어간다.
상속 포기나 한정승인에는 주의할 점이 있다. 원칙적으로 피상속인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내 한정승인이나 상속 포기를 가정법원에 신청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피상속인의 사망 사실은 사망 당일 알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사망 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신청하는 것이 좋다.
3개월 이내 신청을 하지 못하면 상속인이 재산 상속을 받은 것으로 간주한다. 피상속인의 사망 사실을 몰랐을 경우 예외를 인정해 특별한정승인을 신청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 특별한정승인은 피상속인 사망 사실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채무 상속을 뒤늦게 알았거나, 상속 재산보다 채무가 많다는 점을 늦게 안 경우 신청할 수 있다. 채무 상속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신청해야 한다. 상속인은 채무 상속 사실을 안 날을 특정하고 이에 대한 소명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법원은 상속인에게 과실이 없다고 판단될 때만 특별한정승인을 인정한다. 요건이 까다롭고 복잡하기 때문에 변호사를 고용해 대응하는 경우도 많다.
3개월이 지나지 않더라도 상속인이 피상속인 재산을 일부 처분했거나 가족 간에 재산 분할을 했다면 상속 포기나 한정 승인을 신청할 수 없다. 따라서 피상속인에게 채무가 있는지 자세히 살피고 가족 간 상속을 결정하는 것이 좋다.
일부 상속인이 상속을 포기할 경우 다른 상속인도 대비를 해야 한다. 상속 순위는 1순위 직계비속(자녀)과 배우자, 2순위 직계존속(손자녀), 3순위 형제·자매 등이다. 1, 2순위 상속자가 상속을 포기하면 3순위인 형제·자매가 피상속인의 채무를 부담해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한 제도가 한정승인이다. 1순위 상속자가 여러 명일 경우 보통 상속인 한 명이 한정승인을 통해 피상속인의 채무를 상속 재산 내에서 상환하고, 나머지 1순위 상속인들은 상속 포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하면 2, 3순위 상속인에게 채무가 넘어가지 않는다.
피상속인이 빚을 남기고 사망해 자녀들이 상속을 포기했다면, 배우자와 함께 손자녀에게도 채무가 상속될까. 과거엔 손자녀에게 상속 채무가 넘어갔지만, 202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배우자가 단독으로 채무를 상속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자녀가 상속을 포기했다는 이유로 배우자와 손자녀가 공동상속인이 된다고 보는 것은 당사자들의 의사는 물론 사회적인 법 감정에도 반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