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박모씨는 내년 초 결혼을 앞둔 막내 아들에게 경기도 소재 시가 6억원 아파트를 증여할 계획을 세웠다. 문제는 아들이 증여세를 낼 돈이 없다는 것이다. 아들은 올해 취업해 모은 돈이 많지 않다. 아들을 대신해 증여세를 내려고 했으나, 알아보니 부모가 대납하면 증여세가 가산된다고 한다. 피할 수 없는 증여세, 현명하게 내는 방법은 없을까.
증여세는 증여를 받는 사람이 내는 것이 원칙이다. 증여자가 이를 대신 내면 증여세만큼을 추가 증여한 것으로 간주해 증여세를 더 물어야 한다. 만약 박씨의 사례처럼 증여받는 자녀가 증여세로 낼 돈이 없는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세무 당국은 증여세를 조금씩 나눠 낼 수 있도록 연부연납(年賦延納) 제도를 운영 중이다.
연부연납 제도란 세금을 수년간 나누어 매년 1회 내는 것으로, 증여세의 경우 최대 5년까지 나눠 낼 수 있다. 연부연납 신청 후 신고 기한 내 증여세의 6분의 1을 우선 내고, 나머지는 최대 5년간 할부로 내는 것이다. 연부연납을 신청하려면 두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증여세가 총 2000만원이 넘어야 하며, 동시에 매년 나눠 내야 하는 증여세가 최소 1000만원을 초과해야 한다. 증여세가 2000만원만 넘으면 무조건 나눠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점을 유의해야 한다.
박씨의 사례를 예로 들어 보자. 박씨의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시가 6억원의 아파트를 증여받을 경우 증여세 과세표준(세금을 매기는 기준)은 4억5000만원이다. 10년 단위로 적용되는 직계비속 증여 재산 공제 5000만원(미성년자는 2000만원)에, 올해 1월 신설된 ‘혼인·출산 증여 재산 공제’ 1억원이 더해져 1억5000만원이 공제된다. 증여 자진 신고 시 적용되는 세액 3% 공제까지 추가하면 박씨의 아들이 내야 할 증여세는 7760만원이다.
박씨의 아들이 연부연납을 신청하면 증여세 7760만원의 6분의 1인 1293만원을 신고 기한 내 먼저 내고, 잔금 6467만원을 5년에 나눠 낼 수 있다. 또 하나 유의할 점은 증여받는 사람은 이자 성격의 연부연납 가산금을 매년 내야 한다는 점이다. 연부연납 가산금 이자율은 현재 3.5%다. 지난 5일 기준 5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5년 주기형) 금리가 연 3.69~6.09%인 점을 고려하면, 대출을 받아 증여세로 낼 돈을 마련하는 것보다 연부연납을 활용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박씨의 아들이 내야 할 가산금은 약 679만원이다.
증여세를 낼 여력이 있음에도 일부러 연부연납을 신청하는 경우도 있다. 수중에 있는 돈을 세금을 내는 데 한꺼번에 쓰기보다 수익률이 높은 곳에 투자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호지영 우리은행 자산관리컨설팅센터 세무 전문가는 “가산금 이자율이 높지 않아 연부연납을 통해 세금을 나눠 내는 것이 유리하다고 보는 고객이 많다”며 “은행에 방문해 내야 할 가산금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 상품을 추천해 달라고 문의하는 고객도 있다”고 했다.
연부연납은 증여세 신고 기한 내 신고서와 함께 연부연납신청서를 관할 세무서장에게 제출하면 된다. 신청 시 담보 제공은 필수다. 부동산을 담보로 한다면 등기필증 등의 관련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부동산 외에 금전, 국채 또는 지방채, 유가증권, 납세 보증보험증권, 은행 발행 납세보증서도 담보로 인정된다. 만약 연부연납 중 가산금 이자율이 낮아졌다면 이자율 변경 신청도 가능하다. 연부연납 분할 납부기한이 속하는 달의 두 달 전까지, ‘상속·증여세 연부연납 가산금의 가산율 변경 신청서’를 작성해 세무서에 제출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