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주시에서 스마트폰 부품 공장을 30년간 운영한 김모(73) 대표. 처음 직원 3명으로 시작한 공장은 현재 200명이 근무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김 대표는 첫째 아들에게 가업 승계 작업을 하면서 변호사와 세무사 등을 만났는데, 현재 김 대표 지분 가치의 50% 가량을 증여세로 내야 할 수도 있다는 청천벽력같은 얘길 들었다. 김 대표는 장남이 증여세를 마련하려면 증여한 지분 절반 이상을 팔아야 하는 수준이라 차라리 회사를 매각하는 방안까지 고민하고 있다.
사업을 하는 자산가들의 큰 고민 중 하나가 가업승계다. 사업 종류와 규모에 따라 막대한 상속·증여세를 내야 할 수도 있어 승계를 포기하고 사업 매각으로 현금화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국내 상속세는 30억원을 초과하는 상속·증여분에 대해 50%의 최고세율을 적용한다. 사업을 자녀에게 물려주려면 기업 가치의 절반을 나라에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해 12월 중소기업인 79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2.2%는 상속·증여세 등의 문제로 가업승계 대신 매각 또는 폐업을 고려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한국의 상속·증여세는 사실상 징벌에 가깝다.
기업 상황마다 활용 여부는 다르겠지만 상속세를 아끼려면 가업상속공제, 가업승계 증여세 과세특례, 창업자금 증여세 과세특례, 중소기업 최대 주주 등 주식 할증 평가 배제, 상속세 연부연납 등을 활용할 수 있다. 세금 혜택을 받는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에 자신이 이에 해당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 비상장 기업, 기업가치 낮을 때 승계해야
기업인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회사의 실적이 좋을 때 가업승계를 준비한다는 것이다. 정상 궤도에 오른 기업을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만큼 상속·증여세는 오르기 마련이다.
중소기업 대부분이 비상장 기업이어서 대주주 지분 가치를 상속·증여세법에 따라 보충적 평가방법으로 산출한다. 주식 거래가 없다 보니 시가 평가가 어렵기 때문이다. 비상장주식의 1주당 평가액은 주당 순손익가치와 순자산가치를 3과 2의 비율로 가중평균한 금액으로 정한다. 순손익가치는 최근 3년간 1주당 순손익액의 가중평균액을 순손익가치환원율인 10%로 나눈 금액으로 하며, 순자산가치는 법인의 순자산가액을 발행 주식총수로 나눈 금액으로 정한다.
평가 방식이 다소 어렵지만 쉽게 말해 법인이 대규모 흑자를 내면 순손익가치가 커져 주식 평가액이 오르고 낮은 이익을 기록하면 반대로 주식 평가액이 낮아진다고 이해하면 된다. 이런 점을 이용해 시점을 조절한다면 증여세를 절세할 수 있다. 기업의 순이익이 전년 대비 떨어지면 회사 입장에선 손해지만, 가업승계의 적기라고 볼 수 있다는 의미다. 기업 실적이 좋을 때 승계 계획을 세우면 안 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700억 기업, 기업상속공제 적용했더니 상속세 291억↓
조건이 맞을 경우 가업상속공제를 통해 상속세를 대폭 아낄 수 있다. 가업상속공제는 피상속인이 10년 이상 계획해 경영한 중소기업 등을 상속인이 승계하면 가업상속재산가액의 100%(최대 600억원)를 상속공제하는 제도다. 중소기업 등의 원활한 가업승계를 지원하는 취지다.
앞서 김 대표의 회사 지분 100% 가치를 700억원으로 산출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를 장남에게 그대로 증여하면 50%의 상속·증여세율을 적용받아 공제금액 등을 제외하고 332억6000만원의 상속세를 내야 한다. 가업상속공제를 적용하면 41억6000만원으로 무려 291억원을 절세할 수 있다.
가업상속공제를 받으려면 상속인이 모든 가업을 승계받고, 상속세 과세표준 신고 기한까지 임원으로 취임해야 한다. 또 상속세 신고 기한부터 2년 이내에 대표로 취임해야 한다. 만일 ▲상속재산을 일정 비율 또는 일정 기한 중 처분할 경우 ▲상속인이 대표이사로 재직하지 않을 경우 ▲업종을 변경하거나 1년 이상 휴업할 경우 ▲폐업하거나 상속인의 지분이 감소할 경우 ▲정규직 근로자 인원수를 유지하지 못할 경우 가업상속공제로 공제받은 혜택을 토해내야 한다. 여기에 추가로 세금이 추징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부모가 10년 이상 운영한 중소기업을 성인 자녀에게 증여할 경우 가업승계 증여세 과세특례도 활용할 수 있다. 이 제도는 중소·중견기업을 10년 이상 경영한 60세 이상 부모가 18세 이상 자녀에게 회사를 증여할 때 10%(120억원 이상 20%)의 낮은 세율로 증여세를 적용하는 제도다. 또 상속인은 증여세를 15년까지 연부연납할 수 있다. 김 대표의 사례에서 과세특례를 이용하면 증여세는 334억원에서 126억원으로 208억원이 내려간다.
근본적인 가업승계 절세 방법은 재무관리를 통해 기업 가치를 낮추는 것이다. 이익 축소를 위해 비용을 늘리고, 보유 자산을 줄이는 장기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다만 이런 방안은 중소기업→중견기업→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기업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많다. 무엇보다 중소기업의 원활한 가업승계를 위해 징벌적인 상속·증여세 세율을 대폭 낮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심충진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상속·증여세 최고세율은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일본(55%)에 이어 2위다”라며 “기업가치를 높이려는 동기를 감소시키고 이는 가업승계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