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이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선거 관리 업무에 지방공무원을 동원하는 현행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향후 선거 사무를 거부할 수 있다는 입장도 밝혔다.
전공노는 10일 오전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앙에서 권한만 쥐고 선거 현장의 핵심 업무와 사고 책임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에게 떠넘겨온 기형적 구조가 참사의 핵심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전공노는 2002년 출범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가맹 공무원 노동조합이다. 공무원의 노동조건과 처우 개선, 악성 민원 대응, 하위직 공무원 처우 개선 등을 주요 의제로 다뤄왔다. 현재 21개 본부와 250여개 지부로 구성돼 있다.
이해준 전공노 위원장은 이날 "잘못된 선거 시스템 속에서 우리 공무원 노동자들은 더 이상 선거 업무에 함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전공노가 수년간 선거 제도 개선을 요구했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인력과 예산 문제를 이유로 이를 외면해 왔다고 주장했다.
전공노는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단순한 현장 실수가 아니라 선거 관리 구조의 문제라고 봤다. 선관위가 선거 관리 권한을 갖고 있으면서도 투표소 설치·공보물 작업·장비 점검·현장 인력 확보 등 상당수 실무를 지방 공무원에게 맡겨 왔고, 사고가 발생하면 현장 공무원이 책임을 떠안는 구조라는 것이다.
김병철 전공노 서울지역본부 송파구지부장은 "투표소 설치해 주고, 사람 구해 주고, 공보물 밤샘 작업해 주고, 장비 점검해 주고, 모의 시험해 주고 선거 때만 되면 선거라는 전쟁터에 총알받이, 욕받이 사명감 하나로 다 해 줬다"며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책임을 지방 공무원들에게 뒤집어씌우고 공무원들이 손가락질받는 동안 선관위는 뒤에 숨어 있었다"고 했다.
전공노는 선관위가 부정선거 의혹 제기에 대응한다는 이유로 투·개표소 폐쇄회로(CC)TV 설치 등 외형적 조치에 집중하면서, 투표구별 선거인 수 산정과 같은 기본 업무에는 소홀했다고 비판했다. 보여주기식 대응에 몰두하다 정작 선거 현장에서 반드시 챙겨야 할 기본 책무를 방기했다는 주장이다.
노조는 현행 대행 사무 제도의 즉각 중단도 요구했다. 대행 사무는 선관위가 맡아야 할 선거 현장 업무 일부를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 대신 수행하는 구조를 말한다. 전공노는 선거 업무는 원칙적으로 선관위가 책임지고 수행해야 하며, 불가피하게 외부 인력이나 기관이 맡아야 하는 업무는 법률로 범위와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공노는 선관위 조직 개편도 요구했다. 노조는 "이번 사고는 선관위라는 조직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며 관행에 안주해 온 결과"라며 조직 해체·재창설 수준의 전면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박복환 전공노 서울지역본부 부본부장은 "현재 선관위는 지방자치단체, 특히 동 주민센터 직원들에게 역할을 위임하고 업무를 대행시키고 있다"며 "이제는 선관위가 직접 선거를 주관하고 관리하고 운영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음 선거에 또 지방공무원이 동원된다면 그때는 선거 업무를 거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