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결혼한 이모(35)씨는 예식 직전까지 노트북을 붙들고 있었다. 하객들이 찍은 사진을 한곳에 올릴 수 있는 웹 갤러리를 직접 만들기 위해서였다. 시중에도 비슷한 서비스는 있었지만, 그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도움을 받아 직접 사이트 제작에 나섰다.
주말과 퇴근 후 시간을 쪼갰다. AI에게 코드를 작성하게 하는 이른바 '바이브 코딩' 방식으로 작업 속도를 높였다. 결혼식 당일엔 남편과 함께 인터넷 주소(URL)가 담긴 QR코드 스티커를 식장 곳곳에 붙였고, 하객에게 사진 147장을 받아볼 수 있었다.
웨딩플래너나 전문 업체 대신 AI를 활용해 결혼 준비를 직접 해결하는 예비부부가 늘고 있다. 고물가 속 결혼 비용이 치솟자, 청첩장 제작부터 웨딩 촬영·사진 보정·홈페이지 제작까지 스스로 준비하는 '셀프 웨딩'이 확산하는 모습이다.
◇청첩장도 직접 만들고… "비용은 6분의 1"
오는 8월 결혼을 앞둔 서모(29)씨는 최근 남편과 함께 청첩장 150여 장을 제작하고 있다. 업체에 맡기면 최대 30만원가량 들지만, 직접 만들 경우 비용은 5만원 수준으로 줄어든다고 했다.
원하는 형식과 내용을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다는 점도 셀프 제작의 장점으로 꼽힌다. 서씨는 친구용과 직장 동료용 등 청첩장을 두 종류로 나눠 만들고 있다. 그는 "회사 분들께 드릴 청첩장은 사진 대신 일러스트를 넣고 문구도 간략하게 구성할 예정"이라며 "포토샵 AI 기능으로 배치와 디자인 시안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2027년 하반기 결혼 예정인 A씨는 스튜디오 촬영을 생략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통상 웨딩 촬영은 스튜디오 대관과 드레스 대여, 메이크업 등을 포함해 최소 수백만원이 드는 경우가 많다. 원본 사진 보정이나 촬영 헬퍼, 액자 제작 등을 추가하면 비용 부담은 더 커진다.
반면 셀프 촬영은 비용을 줄일 선택지가 많다. 비교적 저렴한 의상을 직접 구매하고, 촬영 소품은 중고 거래 플랫폼을 통해 마련하는 식이다. 사용 후 다시 판매하면 부담을 더 낮출 수 있다. A씨는 "생각보다 결혼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셀프 촬영도 고려하고 있다"며 "촬영 콘셉트 추천이나 사진 보정 같은 작업은 AI 도움을 받을 계획"이라고 했다.
◇예식장·스드메 가격 상승… '웨딩플레이션' 부담
예비부부들이 셀프 웨딩에 나서는 배경으로는 이른바 '웨딩플레이션(결혼+인플레이션)' 현상이 꼽힌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결혼식 평균 비용은 2136만원으로 집계됐다.
예식장 가격 중간값은 전국 기준 350만원, 서울은 650만원으로 조사됐다.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비용 중간값 역시 최대 300만원대에 달했다. 업계에선 인기 예식장과 특정 시즌 예약 경쟁까지 겹치며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업체들이 서비스와 품목별 가격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는 '결혼 서비스 가격 표시제'를 지난 12일부터 본격 시행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세부 가격 확인이 어렵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이른바 '스드메 정찰제'로 불리는 해당 제도는 계도 기간 6개월을 거쳐 시행에 들어갔지만, 실제 이행률은 아직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AI가 제작 문턱 낮춰"… MZ세대 '체험형 결혼 준비'
생성형 AI 확산도 셀프 웨딩 유행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엔 전문가 영역으로 여겨졌던 디자인·사진 편집·웹페이지 제작 등을 비전문가도 손쉽게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실제 앱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에 따르면 지난 4월 국내 챗GPT 앱 월간 활성 이용자(MAU)는 2345만명으로, 1년 전보다 약 34% 증가했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 싱크탱크 AI 이코노미 인스티튜트(AIEI)가 발표한 보고서에선 한국의 생성형 AI 사용률이 37.1%로 집계됐다. 전 분기보다 6.4%포인트 증가한 수치로, 주요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상승 폭이었다.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산업학과 교수는 "MZ세대는 불필요한 관행은 줄이고, 결혼 준비 과정 자체를 하나의 경험으로 소비하려는 성향이 강하다"며 "생성형 AI 기술이 확산하면서 비용 부담을 낮추면서도 원하는 방식대로 결혼을 준비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