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후 수인분당선 전동차 안. 경기 성남시 야탑역을 지나던 열차에서 갑작스러운 고성이 터져 나왔다.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있던 중년 부부에게 한 승객이 "다른 빈자리를 이용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다툼이 시작됐다.

남편은 격앙된 상태에서 욕설을 하다 결국 자리를 옮겨달라고 요구한 승객의 머리를 폭행했다. 실랑이는 두 정거장이 지난 뒤 경찰이 도착한 뒤에야 멈췄다.

15일 경기 성남시 야탑역을 지나가는 수인분당선에서 승객 간에 몸싸움이 발생했다./독자 제공.

◇지하철 '빌런' 논란 확산

지하철 등 대중교통 안에서 타인에게 불쾌감이나 위협을 주는 이른바 '빌런(villain·악당)'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지하철 경찰대 순찰 강화 등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18일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열차 내 질서 저해 관련 민원은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28만1089건으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154건 수준이다. 이동 상인부터 소란, 폭행 등 지하철 이용을 방해하는 행위를 모두 포함한 수치다.

철도안전법은 여객(승객)에게 위해를 끼치는 행위에 대해 최대 5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신고가 접수되면 지하철 보안관이나 역무원이 현장에 출동해 제지하고, 상황에 따라 경찰이 개입한다"고 설명했다.

17일 유튜브에서 '지하철 빌런'을 검색하면 관련 영상이 다수 확인됐다. /유튜브 캡처

엄정 대응에도 불구하고 질서 저해 행위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특히 고성이나 다른 승객에게 불쾌감을 주는 수준을 넘어 소란·폭행 등으로 양상이 거칠어지고 있다고 한다.

지난 2일엔 서울 지하철 1호선에서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있는 임산부에게 중년 남성이 욕설을 퍼붓는 일이 있었다. 지난 4일에는 부산 동해선 열차 안에서 옆자리에 놓은 가방을 치워달라고 하자 중년 여성이 소리를 지르는 등 소란을 피웠다.

또 지난 10일에는 한 여성이 지하철 출입구를 막고 통행을 방해하는 영상이 소셜미디어(SNS)에 올라왔다. 뒤따르던 승객들이 "지나가겠다"고 요청했지만, 해당 여성은 이를 무시한 채 열차가 출발할 때까지 길을 비켜주지 않았다.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에서 한 여성이 사람들이 지나갈 수 없도록 양팔을 벌리고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고 있다./X 캡쳐.

◇온라인 확산과 2차 문제.. "무관용 원칙 적용"

지하철 빌런의 행동이 온라인을 통해 확산하면서 또 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지하철 내 민폐 행동이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재미있는 콘텐츠'로 소비되면서 오히려 유사한 행동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튜브 등에는 지하철 내 난동 장면을 모아 '지하철 빌런' 순위 영상으로 재가공한 콘텐츠도 적지 않다. 단소를 들고 시민을 위협하는 영상은 '단소 살인마'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조회 수 1800만회를 기록했다. 여러 사례를 모아 순위를 매긴 영상도 600만회 이상 조회됐다.

전문가들은 개인적 심리 요인과 지하철이라는 공간 특성이 이러한 행동의 배경이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불특정 다수가 밀집한 공간이지만 서로 익명인 만큼 타인의 시선을 덜 의식하게 된다는 취지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어린아이들이 타인을 괴롭히고 반응을 즐기는 행동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며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만, 처벌 수위가 낮은 경우가 많아 통제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더 큰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지하철 내 질서 유지를 위한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대중교통이라는 특성을 고려해 지하철 내 범죄에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며 "민폐 행위에 대해서도 지하철 경찰대 순찰을 늘려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