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인테리어 대리점에 PVC 소재로 제작된 매트가 진열돼 있다./뉴스1

"본드(접착제)가 없어서 인테리어 공사를 못 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지난 27일 서울 강남구 한 인테리어 매장. 상담을 마친 고객이 돌아서자 사장은 견적서를 덮었다. "필요한 접착제가 45개인데 5개밖에 못 준답니다." 가격도 50% 가까이 올랐다. 그는 결국 계약을 포기했다. 현장에선 이미 시작된 공사도 멈춰 서고 있다. 중동 사태 여파로 촉발된 '나프타 쇼크'가 인테리어 업계를 덮쳤다.

◇"가격에 공급까지"… 공사 줄줄이 멈춰

30일 인테리어 업계에 따르면, 현장에서 가장 공사를 막고 있는 것은 접착제(본드)다. 타일·목재·바닥재 등 거의 모든 공정에 쓰이는 필수 자재다. 강남에서 업체를 운영하는 A씨는 "본드가 안 들어가는 공정은 없다"며 "가격이 오른 수준이 아니라 아예 구할 수 없는 '공백' 상태"라고 했다. 실제 확보한 물량은 평소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모 업체가 거래처에 발송한 납품가 인상 공문./독자 제공

원인은 나프타(납사)다. 합성수지 생산의 기초 원료로, 중동 사태 이후 수급이 꼬였다. 정부도 지난 27일부터 5개월간 나프타 수출을 제한했다. 본드 제조사 B기업 관계자는 "판매하는 500종 중 10~20% 제품은 이미 품절 처리했다"며 "판매 중단 품목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본드 제조사 C기업 관계자도 "생산 차질을 겪고 있다"며 "원료 가격이 오르는 일은 많았지만, 아예 수급 자체가 안 되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다.

여파는 빠르게 번지고 있다. 나프타 기반 제품인 폴리염화비닐(PVC), 페인트 등도 줄줄이 가격을 올렸다. 노루페인트(090350)·삼화페인트(000390)공업은 지난 23일부터 제품 가격을 20~55%까지 인상했고, KCC(002380)도 공급가를 최대 40% 올렸다.

국내 한 타일 업체도 최근 거래처에 단가 인상을 공지했다. 이 업체는 공문에 '최근 원자재 가격의 가파른 상승과 환율 급등 등 원가 상승 요인으로 공급가를 조정하게 됐다'며 '기존 단가를 유지하면서 안정적 품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어려운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선 "이제는 견적 자체가 의미 없다"는 말이 나온다. 인테리어 공사는 통상 착공 2~3개월 전에 계약을 맺는데, 그사이 자재 가격이 얼마나 오를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기 지역에서 업체를 운영하는 강모(45)씨는 "공사비가 오를 수 있다고 설명하면 고객이 계약을 포기한다"며 "아예 가을까지 영업을 쉴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일부 업체는 신규 계약을 받지 않고 있다. 자재 가격 상승분을 반영하지 못하면 손실을 떠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분기마다 자재 단가가 조정되는데 지금은 변동 폭이 너무 커 계약 자체가 리스크가 됐다"고 했다.

인테리어 공사 현장 /조선DB

◇소비자도 직격탄… 장기화 우려

소비자들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다음 달 입주를 앞둔 예비신부 권모(32)씨는 "지금 계약해도 가격 인상분을 적용한다고 해 결정을 미루고 있다"고 했다. 구축 아파트 매입을 검토 중인 김모(36)씨도 "부동산 비용도 부담인데 인테리어 비용까지 오르면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미 계약을 체결한 현장에서는 추가 비용을 둘러싼 갈등도 나타나고 있다. 업계에선 "자재 가격은 한 번 오르면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며 "추가금 문제로 분쟁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사태가 단기간에 해소되긴 어렵다는 전망이 많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충돌이 이어지면서 원자재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국제 나프타 가격은 지난 27일 기준 배럴당 133.74달러로, 한 달 전(68.87달러)보다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현재 비상 경영에 돌입했지만, 공장 가동률도 겨우 유지하는 수준"이라며 "그만큼 제품 생산량도 줄고 있어 수급 공백이 갈수록 커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