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PC·노트북 기업 레노버 스토어. 평일임에도 매장 안은 직장인들로 붐볐다. 레노버는 지난해 팝업스토어에 이어 상설 매장을 마련했다. 성수를 택한 것은 늘어나는 MZ세대 직장인을 겨냥한 전략이다.
최근 성수는 공장 지대에서 첨단 산업이 몰린 서울의 신흥 업무지로 부상하고 있다. 서울시의 준공업지역 규제 완화가 출발점이 됐다. 서울숲이라는 입지와 산업 유치를 전제로 한 도시계획이 맞물리며 기업이 들어설 공간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핫플'의 성수가 '일하는 동네'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 규제 완화… 개발 물꼬 텄다
과거 공장과 창고가 밀집했던 성수동은 입지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용도 규제에 묶여 대규모 업무시설 공급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2008년 준공업지역 규제 완화가 전환점이 됐다. 오세훈 시장 재임 당시 서울시는 성수동 등 서울 시내 '준공업지역'에 적용되던 '준공업지역 공동주택 관련 조례'를 개정해 규제를 완화했다.
이듬해인 2009년 서울시는 한강변을 전략정비구역으로 지정했다. 사업부지 4분의 1을 공공에 기부채납하는 조건이었다. 이후 성수 일대에는 2011년 갤러리아포레를 시작으로 2017년 트리마제, 2020년 아크로서울포레스트 등이 잇따라 들어섰다. 한강변 고급 주상복합 공급이 본격화 된 것이다.
서울시는 같은 해 성수동을 산업뉴타운으로 지정했다. 이듬해인 2010년에는 'IT 산업·유통개발진흥지구'로 지정하고 핵심 산업지구로 육성하기 위해 각종 지원책을 펼쳤다.
그러나 2011년 박원순 전 시장 취임 이후 정책 기조가 도시재생 중심으로 옮겨가면서 성수동은 '수제화·제조업 거점'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로인해 산업지구 고도화는 속도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후 오 시장이 복귀하면서 개발은 다시 추진력을 얻었다. 2021년엔 지구단위계획이 결정·고시됐다. 2010년 'IT 산업·유통개발진흥지구' 지정 이후 11년 만이었다. 장기간 지연된 제도 정비가 마침내 마무리됐다는 의미다.
지구단위계획이 본격화되면서 IT·R&D 등 첨단산업 권장업종에는 용적률 최대 560%, 건축물 높이 84~120m까지 인센티브가 부여됐다.
이러한 용적률 완화 혜택은 기업들이 입주할 공간을 충분히 공급하는 효과로 이어졌다. 실제로 무신사, SM엔터테인먼트, 현대글로비스 등이 잇따라 성수동에 둥지를 틀었다. 크래프톤도 일대 7개 건물을 확보해 '크래프톤 타운'을 조성 중이다.
◇기업 279곳→720곳… 8년 새 3배
정책 효과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성수 일대 IT 관련 기업은 2015년 279곳에서 2023년 720곳으로 늘었다. 종사자는 5520명에서 9661명으로 증가했다. 8년 새 기업 수가 3배 가까이 늘었다.
지식산업센터 확대도 일자리 증가를 견인했다. 과거 '아파트형 공장'으로 불리던 시설이 대거 들어서며 젊은 전문직 인력이 상주하게 됐다. '서울숲 더스페이스', '성수 SK V1', '성수에이팩센터' 등이 대표적이다.
성동구 내 지식산업센터는 2013년 32개(입주 기업 약 1916곳)에서 2023년 초 67개(약 5915곳)로 늘었다. 10년 사이 2배 이상 증가했다. 청년 일자리 기반이 형성되며 일자리가 몰린 동네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규제 완화와 공간 전략이 성수의 체질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며 "도시계획을 통해 산업과 일자리를 유치한 사례"라고 분석했다.
◇상권도 '주말형'에서 '평일형'으로
기업과 직장인이 늘면서 상권 성격도 달라졌다. 평일 점심·퇴근 시간대 유동인구가 증가했고, 카페·식당 등 생활밀착 업종을 중심으로 소비 기반이 형성됐다. 성수동 상권의 성격이 '주말 방문형'에서 '평일 상시형'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성수동에서 8년째 식당을 운영 중인 한 자영업자는 "예전엔 주말 중심 상권이었지만 최근엔 직장인 점심 수요가 뚜렷하다"며 "신사옥 공사로 건설 인력 유입도 늘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지역 산업 생태계 확장을 추진한다. 시는 지난 1월 열린 제1차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성수 문화콘텐츠 개발진흥지구' 안건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성수 IT·문화콘텐츠 산업·유통개발진흥지구는 준공업지역 전역으로 확대됐다. 아울러 권장업종에 '문화콘텐츠 산업'을 새로 포함시키며 관련 기업 유치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현재 뚝섬∼성수역 일대에 디자인·미디어·패션 기업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산업 지형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기존 IT 산업에 더해 문화콘텐츠 기업들까지 잇따라 자리를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재계 관계자는 "강남·판교·구로에 이어 기업 거점 후보지로 성수가 거론되는데, 서울 도시 지형이 바뀌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