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폭군의셰프' 4화에는 효(孝)를 담은 요리로 '재첩 시금치 된장국'이 등장한다. 어릴 적 집을 떠나 궁으로 들어온 '인주대왕대비'(서이숙)는 어머니가 만든 국물을 그리워하지만 무슨 국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인주대왕대비가 섬진강 유역 출신이란 걸 파악한 미슐랭 스타 셰프 연지영(배우 임윤아)은 그 재료가 재첩이었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재첩 된장국을 맛본 인주대왕대비는 어릴 적 어머니가 끓여준 국물 맛을 떠올리며 "효가 담겼다"면서 눈물을 흘린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서 봄을 기다리는 작은 조개가 있다. 바로 재첩이다. 꽃이 피기 시작하는 3월, 재첩은 제철을 맞는다.
재첩은 '강조개', '갱조개'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크기는 작지만 특유의 시원한 맛으로 예부터 사랑받아 왔다. 주요 산지는 섬진강 하구를 공유하는 하동, 광양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매년 봄부터 초여름까지 강으로 들어가 직접 '거랭이'(갈고리)로 바닥을 긁어 재첩을 채취한다.
재첩이 서식하려면 모래와 민물, 염도가 필요하다. 모래가 없으면 유생이 자리를 잡지 못한다고 한다. 민물이지만 소금기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갯물 수역에서 자란다. 국내에선 섬진강 하류에서만 채취가 가능하다.
경남 하동군과 전남 광양시에서 이뤄지는 '재첩잡이 손틀어업'은 국가중요어업유산 제7호로 지정돼 있다. 지난 2023년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주관하는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에 국내 어업 분야 최초로 지정되기도 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섬진강 재첩잡이 어업은 자연과의 상생과 조화의 정신을 담고 있어 보존·계승 가치가 크다"면서 "관광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재첩은 손질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무엇보다 해감 과정이 중요하다. 바닷물과 비슷한 농도의 소금물에 하루 정도 담가 흙과 불순물을 빼야 한다. 중간중간 물을 갈아주고, 해감 후에는 흐르는 물에 여러 차례 씻어야 한다.
삶은 뒤에도 살을 발라 다시 헹궈야 비로소 밥상에 올릴 수 있다. 먹을 이를 생각하며 공을 들여야 하는 식재료인 셈이다. 드라마에서 재첩을 '효의 상징'으로 택한 배경도 이 같은 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영양 면에서도 재첩은 봄철 보양식으로 손꼽힌다. '입추 전 재첩은 간장약'이라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숙취 해소와 간 기능 개선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타우린과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해 혈액순환을 돕고, 철분과 비타민B12는 빈혈 예방에 도움을 준다.
하동군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나가는 하동 섬진강 재첩'을 내걸고 재첩을 지역 정체성을 담은 핵심 관광 자원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생태 체험 프로그램, 재첩 스토리텔링 콘텐츠, 재첩길 조성, 재첩 축제 등 차별화된 상품을 선보일 방침이다.
하승철 하동군수는 "섬진강 재첩은 하동의 자부심이자 소중한 자산"이라며 "전통을 지키는 데서 나아가 현대적 산업화로 세계인이 즐기는 K-푸드 대표 식재료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재첩국 레시피
① 재첩은 소금물에 하룻밤 해감한다. 검은 봉지나 천으로 덮어 어둡게 두면 효과적이며, 더운 날씨에는 냉장 해감을 권한다.
② 해감 후에는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여러 차례 씻는다.
③ 냄비에 물을 끓인 뒤 재첩을 넣고 거품을 걷으며 5~6분간 끓인다.
④ 재첩이 입을 벌리면 건져 살을 발라내고, 국물은 가라앉힌 뒤 면포나 체에 걸러 찌꺼기를 제거한다.
⑤ 맑은 국물에 재첩살을 다시 넣고 한소끔 끓인 뒤 소금으로 간한다.
⑥ 칼칼한 맛을 원하면 청양고추를 더하면 된다.
※ 재첩은 해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오래 끓이면 살이 질겨질 수 있어 짧게 끓이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