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한 시청에서 근무하는 김모(42)씨는 최근 자신을 반복적으로 고소해 온 민원인을 상대로 역고소에 나섰다. 해당 민원인은 "하수관이 막혀 가게가 침수됐다"며 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1·2·3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그러나 판결에 불복한 그는 김씨 개인을 겨냥해 위증, 허위공문서작성, 위조공문서행사 등 혐의로 6년간 26차례 고소를 이어갔다. 결국 이 사건들도 모두 '혐의 없음' 처분으로 종결됐다.

김씨는 "같은 증거를 두고 혐의만 바꿔 반복 고소가 들어와 업무에 심각한 지장이 생긴다"며 "부서를 옮긴 뒤에도 연락처를 알아내 전화를 거는 등 괴롭힘이 계속돼 가족 피해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살기 위해' 고소를 결심했다"고 했다.

민원인들의 소송 폭탄에 맞소송에 나선 공무원들. /챗GPT 제작

◇공무원, 민원인 대상 고소·고발 2배 늘어

최근 같은 사안에 대해 소송을 반복하는 이른바 '민원인 폭탄 소송'이 이어지면서 공무원들이 역고소로 대응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다만 소송을 통한 괴롭힘 혐의를 입증하기 어려워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21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공무원이 민원인을 상대로 제기한 고소·고발 건수는 1283건이다. 2020년 627건 대비 2배 넘게 늘었다. 민원인을 상대로 한 고소·고발이 최근 몇 년 사이 급증했다는 뜻이다.

서울시의 한 공공기관에서 근무했던 이모(56)씨는 최근 한 민원인을 모욕·협박·공무집행방해죄로 고소했다. 해당 민원인이 돈을 요구하며 이씨를 500여 차례 폭언과 폭행하고 10여 차례 고소를 제기했고 이후 암 진단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민원인은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정부 부처가 직접 고발에 나선 사례도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2일 소속 공무원 23명을 상대로 1600건의 고소를 제기한 민원인에 대해 법적 대응에 착수했다. 이 민원인은 자신이 보유한 피부 관리 특허권을 인정해 주면 형사고소를 취하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복지부는 악성 민원으로 인한 공무원들의 정신적 스트레스와 행정 공백이 심각해 기관 차원의 고발을 검토하게 됐다고 밝혔다.

경산시 악성 민원 근절 모의훈련 모습 ./경북 경산시 제공

◇악성 민원인, 조직 차원의 대응 필요

다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역고소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속 기관의 대응이 소극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024년 개정된 민원처리법은 행정기관이 민원인과 담당자 간 고소·고발이나 손해배상 청구가 발생할 경우 전담 부서를 지정하고 변호사 선임비와 소송 비용 등을 예산 범위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럼에도 체감 변화는 크지 않다는 목소리가 많다. 공무원 이모(29)씨는 "소송 지원 제도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어 개인 차원의 맞대응보다 부서 이동을 기다리며 버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기초자치단체 공무원 박모(35)씨도 "악성 민원에 소송으로 대응하기보단 '잘 설득하라'는 반응이 많아 참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실제 처벌로 이어지는 비율도 낮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민원인 고소 사례가 늘고 있지만 실제 처벌로 이어진 비율은 지난해 기준 10%에 그친다"고 했다.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하려면 직무 수행을 불가능하게 할 정도의 직접적인 폭행이나 협박이 있어야 한다. 반복 고발만으로는 형사처벌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악성 민원인을 상대로 고소를 진행해도 '고의성' 입증이 매우 어렵다"며 "폭행·폭언을 넘어 상습 고소 등 신종 민원 형태는 더욱 입증이 까다롭다. 공무원 개인이 아니라 기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국시군구공무원노동조합에서 실시한 '지자체 공무원의 고용 실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4.4%가 민원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이 가운데 43%는 악성 민원 때문에 공직 사회를 떠나고 싶다고 답했다.

이기행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수석부위원장은 "악성 민원 등에 대한 단호한 대응이 필요하다"면서 "공직 사회에서 묵묵히 봉사하는 공무원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