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보이그룹 팬인 A(28)씨는 새해 열리는 콘서트 티켓 예매에 실패한 뒤 엑스(X·옛 트위터)에서 '좋은 좌석을 확보했다'는 글을 발견했다. 판매자는 정가(13만원)보다 약 20% 웃돈을 얹어 송금하라고 했다. A씨가 돈을 보내자 "입금자명에 '본인'을 붙이지 않았다"는 황당한 이유로 재입금을 요구했다.
이후에도 "이름 사이에 큰따옴표(")를 넣지 않았다", "기한이 지났다" 등 갖가지 이유로 추가 송금을 반복 요구했다. A씨는 결국 네 차례에 걸쳐 총 166만원을 보냈지만, 티켓은 끝내 받지 못했다. 그는 경찰에 신고하며 "돌이켜보면 사기 수법이었지만, 콘서트에 가고 싶은 마음이 앞서 의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연말연시 인기 콘서트가 몰리면서 암표 거래와 티켓을 대신 구해주는 '대리 티켓팅'이 급증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팬심을 노린 사기 범죄도 함께 늘어나는 추세다. 매크로(예매 사이트에 반복 접속·자동 클릭해 티켓을 빠르게 예매하는 프로그램)를 활용한 업자들이 예매 시작과 동시에 좌석을 대거 선점하면서, 일반 팬들이 웃돈을 주고 암표나 대리 티켓팅에 의존하는 구조가 고착화됐기 탓이다.
8일 경찰 등에 따르면 최근 접수되는 대리 티켓팅 사기 상당수는 '아이디 옮기기(아옮)' 방식이다. 업자가 매크로로 공연 예매에 성공한 뒤 접속자가 적은 시간대에 티켓을 취소함과 동시에 양수인의 계정으로 취소표를 재예매하는 수법이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공연 예매 사이트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요구한 뒤 "보안 문제로 이전 수수료가 필요하다" "인증 오류가 발생했다"는 등의 명목으로 송금을 반복 요구한 뒤 잠적하는 사례가 잦다.
암표와 대리 티켓팅을 이용하지 말자는 자정 노력의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팬들 사이에서는 "현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매크로를 활용한 업자들이 이른바 '명당'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웃돈을 주고 아이돌 그룹 콘서트를 다녀온 직장인 B(34)씨는 "인기 공연은 직접 예매로 좋은 자리를 구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며 "정당하지 않은 방법인 것은 알지만, 멀리서 (아이돌이) '성냥개비'처럼 보이는 자리에 앉고 싶지는 않아서 암표를 샀다"고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구매 버튼을 수십 번 눌렀지만 남은 건 '매진' 두 글자뿐이었다"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3배 가격에 샀지만 차라리 마음 편하다" 등 대리 티켓팅과 암표 거래 후기가 적지 않다.
이 같은 현상은 콘서트에 국한되지 않는다. 스포츠 경기나 뮤지컬 예매에서도 매크로 사용이 확산되면서, 아예 개인이 매크로 프로그램을 구매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50대 직장인 C씨는 "한국시리즈 예매를 번번이 실패해 혼자 쓰려고 10만원을 주고 매크로 프로그램을 샀다"며 "프로그램 없이는 일반인이 도저히 예매에 성공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문제는 암표 거래나 대리 티켓팅 사기는 피해가 발생해도 구제 수단이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보이스피싱의 경우 경찰(112)이나 금융감독원, 금융회사 콜센터를 통해 범죄 이용 계좌에 '지급 정지' 조치를 곧바로 할 수 있다. 사기 범죄자가 돈을 계좌에서 못 꺼내는 만큼 구제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대리 티켓팅이나 암표 거래 사기는 일반 사기로 분류돼 수사 당국의 요청이 있을 때만, 지급 정지를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티켓 판매 플랫폼이 매크로 문제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비정상 거래를 방관하면서 수익을 얻는 것은 부도덕한 행위"라며 "기술적으로 충분히 차단할 수 있고, 여행사가 항공권을 판매하듯 중개인을 끼는 등 소비자 피해를 줄이는 완충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