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배우' 안성기가 5일 74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80여편의 작품에 출연한 그의 대표작은 무엇일까.
한국영상자료원은 2017년 안성기의 데뷔 6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한국영화의 페르소나, 안성기'를 열면서 안성기가 직접 꼽은 대표작 10편을 소개했다. 이를 다시 정리했다.
① 바람불어 좋은날(이장호, 1980년)
안성기는 '바람불어 좋은날'을 "광주민주화운동의 여파로 영화에 대한 검열이 엄격한 시기였음에도 고속 성장의 이면을 담아 현실을 비판적, 반성적으로 성찰한 영화"라고 설명했다.
'바람불어 좋은날'은 안성기가 대학을 졸업한 뒤 돌아온 영화계에서 아역 배우 꼬리표를 떼고 성인 배우로 인정받은 첫 작품이기도 하다. 안성기도 "개인적으로는 오랜 공백기 이후 영화배우로서 인정받은 첫 번째 작품"이라고 했다.
② 만다라(임권택, 1981년)
안성기는 한국 종교영화 중 걸작으로 평가받는 '만다라'도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았다. 천주교 신자였던 안성기는 만다라를 찍을 때 구도승에 몰입하기 위해 불교 전문 서적은 물론 불경까지 탐독했다. 삭발 머리에 승복 차림으로 다녀 스님으로 오해받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안성기는 "해외 영화인들을 만날 때면 여전히 '만다라'를 손에 꼽곤 한다"며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로 봐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
③~⑤ 고래사냥, 기쁜 우리 젊은 날, 깊고 푸른 밤(배창호, 1984~1987년)
안성기가 꼽은 '나의 영화 10편'에는 배창호 감독의 작품 3편이 이름을 올렸다. 안성기는 배창호 감독의 연출 데뷔작 '꼬방동네 사람들'을 시작으로 '흑수선'까지 19년간 13편에 출연했다.
크게 흥행한 '고래사냥'이 원동력이 됐다. 안성기는 '고래사냥'을 "개봉 당시 서울 관객만 40만명이었다고 하니 당시로선 상당히 흥행한 작품"이라며 "그만큼 남녀노소 상관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영화"라고 소개했다.
안성기는 '깊고 푸른 밤'에선 미국에 불법 체류하며 영주권을 얻으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남자를, 반대로 '기쁜 우리 젊은 날'에선 사랑하는 여자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순수한 남자를 연기했다. 배창호 감독은 안성기를 "어떤 색도 입힐 수 있는 무채색의 배우"라고 했다.
⑥ 투캅스(강우선, 1993년)
안성기는 "부패의 끝과 청렴강직의 끝을 각각 대표하는 두 형사의 '버디 코미디'"라고 '투캅스'를 소개했다. 투캅스는 서울 관객 약 63만명을 동원해 그해 한국 영화 흥행 1위에 올랐다.
안성기는 또 "그 코믹함 속에서 당시 사회를 향한 통렬한 고발을 찾아볼 수 있다"며 "한국 코미디 영화를 대표하는 만큼 촬영 현장도 굉장히 즐거웠다"고 추억했다.
⑦ 인정사정 볼것 없다(이명세, 1999년)
'인정사정 볼것 없다'는 안성기가 처음으로 조연으로 출연한 영화다. 이명세 감독은 미궁에 빠진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집념 어린 한 형사의 이야기라는 아이디어를 듣고 안성기가 시나리오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제안한 역할이 그 반대편의 범인이라는 사실에 실망했다고 회고했다.
제작 발표회 직전까지도 작품을 고사하던 안성기는 결국 출연을 결정했다. 그는 '인정사정 볼것 없다'를 "비중과 상관없이 극적 존재감을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보게 된 영화"라고 했다.
⑧ 하얀전쟁(정지영, 1992년)
안성기는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에서 빨치산 이태 역에 이어 '하얀전쟁'에서 한기주 역을 맡았다. 베트남 전쟁 참전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받으며 궁핍하게 살아가는 소설가를 연기했다.
안성기는 '하얀전쟁'을 "전쟁의 참혹함을 정면에서 바라본 작품"이라며 "원작 소설을 접하고 '제작한다면 언제든 출연하겠다'고 정지영 감독에게 추천했다"고 했다.
40년 넘게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 친선 대사로 활동한 안성기는 '하얀전쟁' 이후 후원자들에게 영양실조와 질병에 시달리는 베트남 아이들을 도와달라고 편지를 쓰기도 했다고 한다.
⑨ 무사(김성수, 2000년)
안성기는 '무사'로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생애 첫 조연상이었다. 안성기는 "영화 '무사' 속 캐릭터 진립은 주변을 보듬고 다 같이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을 만드는 인물"이라며 "배우로서 내 역할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홀로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모두를 보듬는 것 등 많은 생각이 들게 한 작품"이라고 했다.
⑩ 라디오스타(이준익, 2006년)
안성기가 후배 배우 박중훈과 '칠수와 만수' '투캅스' '인정사정 볼것 없다'에 이어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춘 작품이다. 이준익 감독은 2017년 안성기 특별전을 앞두고 "우리 시대 최고의 명콤비와 이 장면을 찍던 순간이 11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안성기도 '라디오스타'를 "영화의 마지막, 철 지난 유명 가수 최곤과 언제나 곁에 머물던 매니저 박민수는 잠깐의 이별을 끝내고 다시 서로를 마주한다"며 "말이 필요 없는 두 사람, 그 따뜻함이 너무나 좋은 영화"라고 전했다.
안성기는 데뷔 60주년 이후에도 '사자' '종이꽃' '아들의 이름으로' 등에 출연했다. 안성기가 평소 "내 최고 작품은 다음 출연작"이라고 말했던 점을 고려하면 그의 대표작은 떠나는 날까지 더 늘었을지 모른다.
안성기의 유작은 '카시오페아' '한산: 용의출현' '탄생' '노량: 죽음의 바다(특별출연)'이다. 4편 모두 암 투병 중 촬영해 2022~2023년 개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