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뀐 게 하나도 없어. 여기 봐봐 그대로 있잖아."
지난 14일 오전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월곡캠퍼스. 인근에서 거주한다는 한 60대 남성은 캠퍼스 시설물에 스프레이 페인트(래커)로 칠해진 '공학 반대'라는 글자를 손으로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강의동 중 하나인 '예지관'의 계단과 기둥, 벽에 적힌 낙서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걸음을 옮겼다.
동덕여대의 남녀공학 전환 논의로 이른바 '래커 시위'가 벌어지고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복구 작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학교와 학생 모두 빠른 조처를 바라면서도 비용을 누가 부담 할 지를 두고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동덕여대 월곡캠퍼스 정문을 지나 도로에 검정색 래커로 '민주 동덕' '수업 거부' '남자 아웃' 등의 글이 적혀 있었다. 건물 외벽이나 시설물 대부분에도 래커로 남긴 문구와 낙서들이 그대로였다. 한 청소 노동자는 "비나 눈이 오면서 조금 지워지긴 했지만, 그대로"라며 "1년 간 래커를 지우는 사람을 한 명도 못 봤다"고 했다.
동덕여대 학생들은 학교 측이 충분한 논의 없이 남녀 공학 전환을 준비한다며 지난해 11월 10일부터 본관 등 캠퍼스 내 일부 건물을 점거했다. 본관 점거 농성은 24일간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캠퍼스 곳곳에 래커로 쓴 문구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동덕여대 학교 측과 학생들은 최근까지도 래커 제거 등을 위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학교와 학생 대표 4명씩이 위원으로 참석하는 시설 복구 위원회를 운영 중이다.
양측 다 시설 복구를 빠르게 진행하길 바라는 점에선 이견이 없다. 교육 환경 측면에서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신입생 선발을 앞두고 하루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당장 동덕여대의 2026학년도 수시모집 경쟁률은 9.92대1로 전년 대비 반 토막 났다.
하지만 비용을 누가 얼마나 부담할 지를 두고 학교와 학생 측은 여전히 접점을 모색하고 있다.
학생들은 교비(학교 예산)를 사용해 복구하는 것을 바란다. 동덕여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가 공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 학생 725명 가운데 53.1%가 시설 복구 비용을 '교비와 학생 모금'으로 조달하는 방안에 동의했다. 42.1%는 '교비'로만 복구해야 한다고 했다. 교비 없이 '학생 모금'으로 충당해야 한다는 응답은 4.8%에 그쳤다. (☞ [단독] '최대 50억' 드는 동덕여대 래커칠 복구비… 학생 42.1% "학교 돈으로만")
다만 교비로만 시설을 복구하기엔 학교도 부담이 크다. 앞서 동덕여대 의뢰로 보수 업체가 추산한 '건물 보수 및 청소' 비용은 20억~50억원이다. 동덕여대의 한 해 등록금 수입(530억원)의 3.7%에서 9.4%에 달하는 금액이다.
학교법인 동덕학원은 지난달 23일 이사회를 열고 동덕여대가 보고한 '래커 오염 긴급 복구 계획'을 승인했다. 전반적인 복구 계획과 함께 래커 제거 작업을 하려면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시설복구위원회에서 학교와 학생 간 최종 결론이 나야 복구 작업도 시작할 수 있는 상황이다. 동덕여대 관계자는 "(학교의) 긴급 복구 계획에는 전반적인 내용이 담겼고, 시설 복구 위원회에서 구체적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