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립 초등학교 교사 사이에서 근무하기 싫은 학교를 가려내기 위한 지표, 이른바 '배구지수'가 자체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공립학교 교사들은 보통 한 학교에 5년쯤 근무하고 다른 학교로 전보 가는데, 이왕이면 업무 외적인 스트레스가 적은 학교를 미리 알아보기 위해서다.
이 지표는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만들어진다. 전체 초등학교 평교사의 7% 정도가 참여해, 전국 초등학교의 절반 정도가 평가된다. 교사들이 직접 제작하는 '기피 학교 빅데이터'인 셈이다. 이름이 배구지수인 것은, 구기 종목 배구가 기피 학교인지 판단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배구지수는 초등학교 교사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인디스쿨'에 올라온다.
◇"어느 학교가 근무하기 좋나" 알음알음 알아보다 배구지수 탄생
초등학교 교사는 기존 학교에서 담임을 맡은 학년과 업무 등에 따라 쌓은 점수를 기준으로 전보를 갈 새 학교를 선택한다. 업무가 많은 6학년 담임 교사를 맡으면 가산점을 받는 식이어서 교사마다 쌓은 점수가 다르다. 점수가 높은 교사에 학교 우선 선택권이 주어진다.
'지난 5년간 고생이 많았다'고 생각하는 점수가 높은 교사들은 다음 5년간은 상대적으로 근무 여건이 좋은 학교에 가기를 바란다. 그래서 전보 갈 학교를 선택하기 전 미리 분위기와 조직 문화를 알음알음 알아봤다. 그러다 탄생한 게 배구지수다.
2023년 전보를 앞두고 있던 초등학교 교사 A씨는 학교 분위기가 어떤지 알기 어려워 직접 구글의 설문조사 기능을 이용해 전국의 교사들에게서 정보 수집에 나섰다. 교사들이 익명으로 근무 중인 학교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배구지수 설문에는 초등학교 교사 약 1만명이 참여해 3316개 학교 정보가 취합됐다. 전국 평교사(14만9808명)의 약 7%가 설문에 참여한 것으로, 전국 초등학교(6192개)의 53%에 달하는 학교 정보가 입력됐다.
◇작년 배구지수 설문 참여 초교 교사 1만명… 전체의 7%
처음에는 '배구를 강제로 시키는 학교인가'를 묻는 간단한 설문이었다. 초등학교 교사들은 친목을 다진다며 배구를 자주 한다. 어떤 학교는 '반강제적'으로 배구를 한다고 한다. 초등학교 교사들만 참여하는 배구 대회도 있다. 성병창 부산교육대 교수와 김달효 동아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이 배구 대회는 초등학교의 전통이지만, 대회 준비 과정이 교사에게 부담을 준다는 지적도 있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배구를 자주 하는 학교일수록 권위적이고 보수적'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반대로 배구를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는 학교는 교사 관계가 수평적이고 자율성이 보장되는 분위기라고 한다.
기자가 작년에 실시한 설문 결과를 확인한 결과, 전국 150여 초등학교에서 배구나 스포츠 활동 참여가 '강제적'이라는 응답이 나왔다.
경북에서 근무 중인 교사 이모(30)씨는 "배구지수를 통해 희망하던 학교가 정기적으로 배구를 한다는 걸 알고 다른 학교를 우선순위로 적었다"고 말했다.
◇'2급 정교사 비율' '조퇴 시 관리자 대면 보고' 중요한 지표
설문 항목은 빠르게 늘었다. 올해 설문 문항은 '교사가 직접 다과비를 부담하는지' '한 달 평균 공문량' 등 50개에 달한다.
교사들이 배구 다음으로 중요하게 참고하는 지표는 '2급 정교사 비율'이다. 교대를 졸업하고 임용시험에 합격하면 2급 정교사가 된다. 1급으로 승진하려면 경력 3~4년은 쌓아야 한다.
2급 정교사 비율이 높으면 경력이 오래된 교사들이 '업무량이 많다'거나 '근무 여건이 나쁘다'는 이유로 근무를 꺼린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경기 평택시에서 근무했던 교사 B씨는 "새로 개교한 학교나 업무가 많은 곳은 고연차 교사가 거의 없다. 절반 이상이 2급 정교사일 때도 있다"고 말했다.
'조퇴 시 관리자 대면 보고 여부'는 조직 문화의 경직도를 보여주는 지표다. 교사들은 전자 결재를 올려 조퇴할 수 있는데, 어떤 학교는 교장·교감에게 직접 보고하도록 하는 관행이 있다. 작년 기준으로 대면 보고가 의무인 학교는 147곳이었고, 이 중 33곳은 배구 활동 참여도 강제였다.
◇배구지수 작성자 "일부 이용자 신고로 게시물 삭제되기도"
배구지수가 교사들의 관심을 끌자 논란도 일고 있다. 배구지수를 만드는 교사 A씨는 올해 9월에 올린 설문 안내문에서 "지난해 일부 (이용자의) 신고로 게시물이 삭제되거나 계정이 정지된 사례가 있었다"며 "올해도 계정이 정지될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평교사들은 일부 학교의 교장·교감 등 관리자가 부정적인 평가를 이유로 삭제를 요청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배구지수가 올라오는 '인디스쿨'은 신고 건수가 일정 횟수를 넘으면 게시글이 자동으로 삭제되는 구조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