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 전 헌법재판소 공보관이 작년 12월 23일 브리핑으로 하고 있다. 일부 네티즌들은 이 전 공보관의 발음이 이상하다며 '중국 출생'이라고 주장했다. /조선DB

헌법재판소는 19일 언론 브리핑에서 "헌법연구관의 국적과 관련한 가짜 뉴스, 악성 댓글, 원색적 비난에 대해 경찰에 수사 의뢰할 지를 논의하고 있다"면서 "관련 증거와 자료를 수집 중"이라고 밝혔다. 헌법연구관은 탄핵 심판 등에서 사실 관계 정리, 쟁점 검토 보고서 작성, 결정문 초안 준비 등을 담당하는 공무원이다.

이날 헌재가 수사 의뢰까지 언급한 배경에는 지난 17일부터 탄핵에 반대하는 네티즌들이 주로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헌법연구관 3명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이들이 화교라고 주장하는 글이 유포된 일이 있다. 헌재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 '질문과 답변' 게시판에도 이들이 한국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글이 수백 건 올라왔다. 이 가운데에는 "이름만 봐도 중국인이네. 왜 남의 나라 헌재에서 간첩 짓거리를 하고 있느냐"는 내용도 있었다.

◇"이름만 봐도 중국인"이라며 '화교 몰이'… 헌재 "연구관 3명 모두 한국인"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중국인이나 화교로 지목된 헌법연구관 3명은 모두 한국 사법시험에 합격한 법조인이다. A 연구관은 강원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전해졌다. B 연구관도 서울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인물 정보 사이트에서 확인된 내용이다. 다만 C 연구관의 인적 사항은 인물 정보 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이와 관련, 조선비즈가 "세 사람의 국적이 한국이 맞느냐"고 묻자, 헌재 관계자는 "예"라고 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세 사람의) 국적을 헌재가 밝힐 의무는 없다"고 했다. 헌법연구관 지원 자격에도 국적을 제한하는 규정은 따로 없다. 이에 조선비즈가 "외국인이 헌법연구관이 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헌재 관계자는 "안될 것 같다"고 했다.

헌법연구관 3명의 국적에 대한 논란은 정치권으로도 번지고 있다. 지난 18일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헌법재판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헌법 기관과 국가 기밀 취급 기관에 외국인 공무원 임용을 제한하는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다고 밝혔다. 또 이미 임용된 외국인이나 복수 국적 공무원에 대한 보안 심사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 발의도 예고했다.

31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중앙우체국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중국 정부 규탄' 집회를 열고 있다. /최정석 기자

◇드라마 '중증외상센터' 작가인 의사도 "화교" 지목 당해

네티즌들이 뚜렷한 근거 없이 특정인을 화교라고 지목하는 일이 최근 잇따라 일어난 바 있다.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중증외상센터: 골든 아워'의 원작 웹소설을 쓴 작가이자 의사인 이낙준(필명 한산이가·40)씨는 지난 14일 유튜브 채널 '닥터프렌즈'에서 "이런 걸 해명해야 되나 싶긴 하다"면서 "저희 화교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제 친할아버지, 외할아버지 모두 한국전쟁 참전 용사"라고도 했다.

해당 유튜브 채널은 이씨와 내과 전문의 우창윤씨, 정신과 전문의 오진승씨가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세 명 중 둘이 화교다' 등의 댓글이 달리자 반박한 것이다. 최근 온라인에서는 '화교 대입 특례로 의대에 쉽게 진학할 수 있다'는 글이 확산하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인기 드라마 '중증외상센터' 작가이자 의사인 이낙준씨가 네티즌들이 화교설을 제기하자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유튜브 캡처

비슷한 현상은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를 하고 있는 지지자 사이에서 넓게 퍼지고 있다. 지난 달 19일 새벽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하기에 앞서 인근에 배치된 경찰들이 중국 공안이거나 중국인이라는 가짜뉴스가 유포된 바 있다.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미국 영화 마블 시리즈에 등장하는 '캡틴 아메리카' 복장으로 자주 참여하는 40대 남성 안모씨는 지난 14일 서울 중구 명동 중국대사관 정문 앞을 지키는 경찰들에게 "말이 어눌하다, 한국 분 아닌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뒤 대사관 문이 약간 열리자 뛰어들려다 제압당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단체인 '대통령 국민변호인단' 홈페이지에 중국대사관 인근에서 개최되는 반중 성격의 집회 일정이 공지되어 있다. /국민변호인단 홈페이지 캡처

또 지난 달 31일에는 서울 중구 명동 중국대사관 인근에서 '중국 정부 규탄' 집회가 처음 열렸다. 당시 시위대는 '윤 대통령 탄핵 반대' '노 차이나(NO CHINA)' 손팻말을 함께 들었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모인 '대통령 국민변호인단' 홈페이지에는 오는 21일 오후 6시에도 중국대사관 인근에서 '멸공페스티벌' 집회가 개최된다고 공지되어 있다. 이 단체 단장은 윤 대통령 대리인단에 속한 석동현 변호사다.

이에 대해 직장인 류모(38)씨는 "부정선거에 중국인들이 개입했다는 의혹 제기가 있는데 비슷한 맥락에서 반중 시위나 국적 논란이 일어나는 것 같다"면서 "명확한 근거를 가진 주장이라면 동의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