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북촌한옥마을에서 1일 오전 한복을 입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홍다영 기자

“쉿! 보이스 다운(목소리 낮추세요).”

서울 종로구 북촌한옥마을 북촌로11길에서 1일 오전 10시 30분쯤 만난 안내원 이모(69)씨는 손가락을 입에 대며 외국인 관광객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는 노란색 조끼를 입고 ‘조용히 해주세요’라는 팻말을 들고 있었다. 한 백인 남성은 알아 들었다는 눈짓과 함께 “쉿, 오케이”라며 지인과 나누던 대화를 멈췄다.

이날 오전 11시부터 11시10분까지 10분간 북촌한옥마을 골목을 지나는 관광객만 150여 명이었다. 종로구에 따르면 지난해 북촌 인구는 6000여 명, 북촌을 찾은 연간 방문객은 664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북촌 주민의 1100배가 넘는 인원이 이곳을 찾은 것이다.

북촌에는 관광객이 몰려들어 주민들의 일상이 방해받는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 종로구는 북촌에 관광객 통행 제한 조치를 내리기로 했다고 이날 밝혔다. 올해 10월부터 계도 기간에 들어가 내년 3월부터 본격 시행할 방침이다.

◇주민들 “소음, 쓰레기 무단 투기, 사생활 침해까지…”

북촌한옥마을 곳곳에는 ‘주민 거주지입니다. 소곤소곤 대화해주세요’ ‘금연해주세요’ ‘쓰레기를 갖고 돌아가주세요’ ‘문 틈새로 몰래 촬영하지 말아주세요’ ‘함부로 문을 열거나 집안에 들어가지 말아주세요’ 등의 안내 문구가 붙어 있었다. 한 한옥 계단에는 ‘올라오지 말아주세요’라는 팻말이 놓여 있었다.

이곳에서 45년간 거주한 송모(75)씨는 “주민들이 생활하는 공간인데 관광객이 몰리면서 새벽까지 시끄럽고 담배꽁초나 쓰레기도 많이 버린다”며 “차량이 제대로 다니기도 힘든 수준”이라고 했다.

밀려드는 관광객에 살던 곳을 등지고 떠나는 북촌 주민들도 있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북촌 인구는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27.6%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안내원 이씨는 “북촌한옥마을 인근에서 태어나서 평생 살았는데, 어릴 때만 해도 이곳은 조용한 동네였다”면서 “2000년대부터 관광객이 몰리면서 대화 소리, 캐리어 끄는 소리로 시끄러워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북촌은 관광지이기 전에 사람들이 사는 동네이고 장사하는 상인들도 있기 때문에 관광객을 배척해서는 안될 것”이라며 “한국의 아름다운 문화를 알리면서도 주민 삶을 지킬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서울 종로구 북촌한옥마을 특별관리구역. /종로구청

◇종로구, 전국 최초 ‘특별 관리 지역’으로 북촌 지정

종로구청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촌한옥마을을 전국 최초 ‘특별 관리 구역’으로 지정했다. 관광진흥법에 따라 과도한 관광객 방문으로 자연 환경이나 주민 생활이 침해당할 우려가 있는 지역은 특별 관리 지역으로 지정하고, 방문객 방문 시간과 차량·관광객 통행을 제한할 수 있다.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한다.

특별 관리 지역은 크게 레드존(북촌로11길), 오렌지존(북촌로5가길·계동길 일대), 옐로우존(북촌로12길), 전세버스 통행 제한 구역(안국역사거리~삼청공원 입구)으로 나뉜다. 관광객이 가장 많은 레드존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방문이 가능하다. 오는 10월부터 계도 기간을 갖고 오는 2025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주거와 상권이 같이 있는 오렌지존은 방문 시간을 제한하지는 않지만 관광객을 대상으로 계도 활동을 진행한다. 옐로우존에서는 집중 모니터링을 통해 방문객 실태를 파악하고 기초 질서 준수를 위한 안내판 등을 설치한다. 전세버스 통행 제한 구역에서는 전세버스 불법 주정차를 규제하고 교통 안전 시설을 설치한다. 전세버스 통행 제한은 오는 2025년 7월부터 계도 기간을 거쳐 2026년 1월부터 본격 시행한다.

정문한 종로구청장은 “과잉 관광으로 북촌 주민 반발과 인구 감소가 심한 상황”이라며 “주민 정주권을 보호하며 지역 경제와 상생하는 ‘지속 가능한 관광’이 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지난 5월 21일 일본 야마나시현 후지카와구치코 마을의 후지산이 배경에 보이는 편의점 앞에 인부가 검은 가림막을 설치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외도 오버투어리즘 몸살, 차단막 설치하고 도시 입장료

해외 유명 관광지들도 오버투어리즘에 칼을 빼들고 있다. 일본 야마나시현은 최근 후지산을 배경으로 인증 사진을 촬영하려 몰려드는 관광객을 막기 위해 인근 편의점에 차단막을 설치했다. 마이니치신문 등에 따르면 이날부터는 후지산 등산 통행료를 1000엔에서 3000엔으로 인상하고, 등산객도 하루 최대 4000명으로 인원을 제한한다. 기존에는 등산객들이 자율적으로 보전 협력금 1000엔을 냈는데, 1인당 2000엔을 추가 징수하기로 했다.

콘서트와 음악 축제가 많아 ‘세계 최대 클럽’으로 불리는 스페인 이비사는 정부가 관광객들의 폭음(暴飮)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CNN 등에 따르면 스페인 이비사섬은 지난 2020년부터 5년간 한시적으로 ‘관광객 폭음 방지법’을 시행하고 있다. 해당 지역 식당과 술집은 오후 9시 30분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 술을 팔 수 없고, 이를 어기면 최대 60만유로의 벌금과 3년 영업 정지에 처한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지난해 4월부터 세계 최초로 도시 입장료 5유로를 받고 있다. 코로나 봉쇄가 끝나고 관광객이 밀려들자 이 같은 대책을 시행했다. 그러나 도시 입장료 부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이탈리아에는 사상 최대의 관광객이 몰렸다. 이탈리아 관광부와 통계청(ISTAT) 등에 따르면 지난해 호텔 등 숙박 시설을 이용한 관광객은 1억3400만명으로 전년보다 13.4%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