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챗GPT 달리3

행정안전부 A 주무관은 매주 두 차례 관계 기관과 회의하고 결과를 정리한다. 출장이나 급한 일이 있을 땐 시간이 부족해 퇴근 후 정리했다. 그런데 최근 그의 일상이 변했다. 인공지능(AI)이 대신 회의 결과를 정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회의 영상, 음성을 올리면 AI가 글자를 추출해 내용을 파악하고 회의록을 만들어준다. 1시간짜리 회의는 5분이면 정리한다. A 주무관은 회의를 정리하는 시간이 줄어든 만큼 다른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AI 공무원’이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문서 작성, 민원 상담, 돌봄 서비스 등으로 업무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AI 자동 회의록 예시. /행정안전부 제공

◇AI 공무원, 1시간 걸리던 문서 작성 3분 만에 뚝딱

행안부는 중앙 부처, 지자체 공무원을 대상으로 ‘AI 자동 회의록’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공무원들은 회의를 하고 정책 기초 자료를 만든다. 그런데 정부와 지자체에서 매년 열리는 영상 회의만 10만건이다. 공무원들이 회의 결과 정리에 시간을 뺏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행안부는 AI가 대신 회의록을 만들도록 했다.

행안부는 A4용지 100장짜리 PDF 파일을 40초 만에 글자로 변환해주는 ‘AI 문서 인식’도 시범 운영 중이다. 이미지 파일을 올리면 이미지에 있는 글자를 문서로 만들어준다. 공무원들은 인쇄물을 일일이 타이핑해 자료를 만들었는데, 이런 업무 부담에서 벗어나게 됐다. 행안부는 AI 자동 회의록, 문서 인식 서비스를 오는 9월까지 시범 운영하고 의견 수렴을 거쳐 보완한다. 10월부터는 공공기관도 AI 자동 회의록과 문서 인식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꼭 필요한 일에 행정 역량을 집중하도록 돕는다”고 했다.

경북도에서는 생성형 AI가 보도자료, 사업 건의 조서를 만들어준다. 행사, 사업 계획을 AI에 입력하면 초안이 나온다. 자료 작성 시간은 1시간에서 3분으로 줄었다. 경북도는 앞으로 예산처럼 전문적인 문서 작성에도 AI를 활용할 계획이다. 이정우 경북도 메타버스과학국장은 “단순 업무는 AI가 하고 직원들은 창의적인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고 했다.

부산시는 AI 챗봇 ‘자립 꿀단지’가 24시간 민원을 상담하고 있다. 여러 부처에 흩어진 자립 정책을 한눈에 정리해 맞춤형으로 추천한다. 자립 꿀단지는 지난해 5월부터 1년간 8만2000여 건 상담했다. 오프라인 상담보다 하루 평균 50배 많다. 배병철 부산시 사회복지국장은 “AI가 정부 업무에 접목돼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브테크(GovTech·정부를 뜻하는 거번먼트와 기술을 뜻하는 테크놀로지의 합성어) 시대가 다가왔다”고 했다.

서울시는 오는 2026년까지 2064억원을 투입해 AI 행정을 추진한다. AI로 정보 검색, 민원 상담을 한다. 시민들이 119에 신고하면 AI가 신고 내용, 위험도를 분석해 즉각 대응하는 ‘AI 기반 119 종합 상황 관리 체계’도 구축한다. 서울시는 올해 공무원 1300명에게 AI 업무 교육을 진행한다.

일러스트=챗GPT

◇고독사 예방, 장애인 콜택시 상담도

대전시는 AI 돌봄 로봇으로 고독사를 예방한다. AI 돌봄 로봇은 센서로 인근 5m 이내 사람 움직임, 호흡, 체온을 감지해 이상 여부를 확인한다. 대덕구에선 지난 1월 26일 오후 4시쯤 70대 여성 B씨가 가정집에서 두통을 호소하다 AI 돌봄 로봇에게 구조 요청을 했다. AI 돌봄 로봇 운영 업체는 119에 신고했고, 현장에 도착한 소방대원은 B씨를 병원으로 옮겼다. 대전시는 올해까지 AI 돌봄 로봇 1000대를 보급할 계획이다.

경기도와 경기교통공사는 장애인 콜택시에 AI 상담원을 다음 달부터 도입한다. 바쁜 출퇴근 시간에 장애인 콜택시 연결이 지연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AI 상담원은 이용자의 이동 지역을 분석해 콜택시를 빠르게 배차한다. 오후석 경기도 행정2부지사는 “교통 약자의 이동 편의를 증진하겠다”고 했다.

◇테크 흐름 올라탔지만 정보 보안 우려도

AI를 공공 부문에 활용하는 ‘거브테크’는 빠른 의사 결정과 비용 절감을 돕는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오는 2026년까지 세계 정부 기관의 70%가 행정 의사 결정을 개선하기 위해 AI를 사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 디지털 플랫폼 정부 위원회는 올해 AI 도입, 데이터 공유·활용 등을 위해 전년보다 123% 증가한 9386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공공 부문 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서울디지털재단은 ‘서울시 생성형 AI 윤리 가이드라인’(2023)에서 “챗GPT 등장 이후 공공 분야에서 생성형 AI 서비스가 확산할 것”이라며 “AI는 환각, (데이터) 오용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용자는 해킹으로 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유념하고 운영자, 개발자는 보안 사고 발생 시 명확한 책임 주체를 설정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