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CRRC가 제작한 전기 버스가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상명대 인근 언덕길에서 미끄러지는 사고가 발생해 38명이 다쳤다. /종로소방서 제공

지난 5일 오전 10시 45분쯤 서울 종로구 상명대 인근 언덕길을 올라가던 마을버스가 미끄러져 인근 주택 계단을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승객 2명이 중상을 입었고, 다른 승객 35명과 버스 기사는 경상을 입었다. 버스 안에 서 있는 승객이 많았던 상황이어서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 지역에서는 비슷한 사고가 작년부터 올해까지 3건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사고 차량은 모두 중국중처(CRRC)가 생산한 전기 버스였다. 생산 연도가 2023년이나 2024년인 새 차들인데 잇따라 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중처 전기 버스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소영철 의원이 14일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과 서울시에서 제출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7년부터 2021년까지는 상명대 인근인 종로구 홍지문길, 홍지문2길을 운행하는 시내버스 7016번과 마을버스 서대문08번, 종로13번에서 언덕길 미끄러짐 사고는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반면 2022년부터 올해까지는 상명대 인근에서 시내버스, 마을버스가 언덕길에서 미끄러지는 사고가 5건 발생했다. 이 가운데 3건은 A 버스회사가 운행하는 종로13번 마을버스가 일으킨 사고였다.

A 버스회사는 국내 에디슨모터스(현 KGM커머셜)가 제작한 전기 버스 4대와 중국 하이거(HIGER)가 만든 전기 버스 2대, 중국중처의 전기 버스 3대, 현대차가 제작한 경유 버스 1대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A 버스회사의 언덕길 미끄러짐 사고는 중국중처가 만든 그린웨이720(GREENWAY720) 버스에서만 발생했다. A 버스회사는 이 버스를 작년에 2대, 올해 1대 도입했는데, 새 차를 구입한지 1년도 되지 않아 언덕길에서 미끄러지는 사고가 3건이 잇따라 터진 것이다. 사고 3건으로 총 57명이 다쳤다.

중국중처가 만든 그린웨이720 버스는 다른 지역에서도 문제가 됐다. 올해 1월 서대문12번 마을버스, 올해 4월 성북22번 마을버스가 언덕길에서 미끄러지는 사고를 일으켰다.

그래픽=정서희

중국중처는 중국의 국영 철도 차량 제조사로 고속철도도 제작한다. 한국의 철도 차량 업체 우진산전처럼 전기 버스도 만든다. 미국 펜실베니아주 남동부 교통당국은 지난 4월 중국중처와 체결한 1억8500만달러(약 2550억원) 규모 2층 전동차 45량 도입 계약을 취소했다. 계약은 2017년에 체결됐는데, 그동안 초도 물량조차 보내지 못할 정도로 납기가 지연됐고 차량 내부 패널 등 품질 면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중국중처는 위례선 트램(노면 전차)에 주요 부품을 납품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작년 서울시 행정사무감사에서 문제점이 지적됐고, 서울시는 4년 뒤 위례선 트램 부품을 교체할 때 국산으로 바꾸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국방부는 중국중처가 사실상 중국 인민해방군이 소유한 기업으로 판단하고 제재 리스트에 올려놓고 있다.

소 의원은 “최근 이 짧은 언덕길에서 버스 사고로 다친 시민만 70여 명에 달하는 등 중대시민재해로 이어지지 않은 게 기적인 상황”이라면서 “가파른 경사 탓만 할 게 아니라 중국산 전기버스의 품질, 노후 CNG 버스의 안전성 문제 등 정확한 사고 원인을 파악해 안전대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언덕길 미끄러짐 사고를 국내 업체가 생산한 버스가 일으킨 사례도 있다. 올해 5월에는 B 버스회사가 운행하는 7016번 시내버스가 상명대 인근 언덕길에서 미끄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버스는 현대차가 만든 뉴슈퍼에어로시티로, 연료는 압축천연가스(CNG)를 사용한다. 이 사고는 2015년에 도입한 차량에서 발생했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따르면 노선버스 차량 내구연한은 9년으로, 도로교통공단 검사에 합격한 차량은 2년 더 운행할 수 있다. 구입한지 9년이 지난 노후 버스의 기능 저하로 사고가 났을 수 있다는 게 소 의원 측 설명이다. 2022년 8월에는 현대차 카운티 마을버스 차량이 중앙선을 침범해 현대차 뉴슈퍼에어로시티 시내버스와 부딪혀 사고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