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6일 오후 민노총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이 서울 종로구 대한문 앞에서 총파업 대회를 열었다. 조합원들이 정당한 임금과 휴일보장을 촉구하는 문구를 쓴 조끼를 입고 있다. /조선DB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서비스연맹) 산하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백화점면세점노조) 소속 조합원들이 백화점, 면세점이 ‘사용자’라고 주장하며 단체교섭을 요구했지만 중앙노동위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백화점·면세점은 입점업체에 소속되어 있는 직원들의 사용자가 아니어서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가 없다고 중노위가 판정한 것이다.

12일 중노위에 따르면 백화점면세점노조는 작년 1월부터 8월까지 수 차례에 걸쳐 제주 공항과 항만에 영업장을 두고 있는 JDC면세점에 단체 교섭을 요구했다. JDC면세점 측이 요구에 응하지 않자, 백화점면세점노조는 교섭을 거부하는 부당노동행위를 했다며 작년 9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백화점면세점노조는 전국 백화점, 면세점, 대형 쇼핑몰 등 유통 매장에서 일하는 근로자가 조직원으로 가입해 있다. 조합원은 약 3000명이다. JDC면세점이 부당노동행위를 했다며 진정을 낸 조합원들은 면세점에 입점해 화장품과 향수 등을 판매하는 4개 회사에 소속돼 있다.

백화점면세점노조는 노동 환경, 고객 응대, 휴일 휴가 등의 안건을 교섭하는 데에 JDC면세점이 실질적으로 권한이 있다면서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JDC면세점은 4개 기업에 하청을 준 원청 기업이라면서 “원청이 책임자”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에 대해 JDC면세점은 노조원들과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아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가 없다고 맞섰다. 노조원들은 JDC면세점에 입점한 4개 회사의 직원이라는 것이다.

쟁점은 면세점 입주업체 근로자가 요구하는 일부 교섭 안건에 대해 영향력이 있는 면세점이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에 해당해 단체교섭 당사자에 해당하는 지였다. 중노위는 JDC면세점에 입점한 4개 회사가 JDC면세점과 원청-하청 관계에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중노위에 따르면 4개 회사는 해외 브랜드 상품의 유통·판매를 독자적으로 맡은 독립된 기업이며, 글로벌 공급사를 통해 JDC면세점 뿐만 아니라 전국 백화점과 면세점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중노위는 이를 근거로 4개 회사가 JDC면세점에 종속된 관계가 아니라고 봤다.

또 4개 입점업체는 JDC면세점에서 일할 근로자를 각자 다른 노동 조건으로 채용했고, 업체별로 임금 구성 항목과 수준도 달랐다. 또 점장이 소속 직원들의 근무 스케줄을 작성해 관리하는 등 노조원들의 근로시간과 휴일, 휴가 사용을 JDC면세점이 결정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4개 입점업체는 다른 백화점·면세점과도 거래하고 있으므로, 진정을 제기한 노조원들이 JDC면세점에 전속되어 근무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중노위는 지난 3월 JDC면세점이 단체교섭을 거부하는 부당노동행위를 하고 있다는 백화점면세점노조의 진정을 기각했다. 5월에는 롯데백화점, 현대백화점은 백화점면세점노조 조합원의 사용자가 아니라고 동일하게 판정했다.

중노위는 이번 판정은 제3자인 원청 사용자의 단체교섭 의무에 대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원청 기업이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의 사용자로 인정을 받으려면 하청업체 근로자가 원청 기업에 전속되어 일하고, 근로 조건을 원청 기업이 주로 결정하며, 주 수입도 원청 기업에 의존해야 한다. 근로자의 노무 제공은 원청 기업을 통해서만 이뤄져야 하며, 원청 기업이 지휘감독을 어느 정도로 하는지도 따져야 사용자로 인정될 수 있다.

김태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최근 하청업체 근로자가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상황이 제조업에서 물류업, 유통업까지 확대되며 노동분쟁 양상이 다양해지고 있다”며 “노동위원회가 제시한 기준이 노동관계 안정과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 사용자 범위를 확대해 하청업에 소속 근로자들이 원청 기업에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을 강행 처리했으나,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양대노총은 22대 국회에서 노조법 개정안이 가장 우선적으로 처리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