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의대 학생들이 해부학 수업을 진행 중이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병원에 기증된 시신이 의학 연구가 아닌 헬스 트레이너, 필라테스 강사 등을 대상으로 하는 유료 해부학 수업에 사용되는 사례가 있는 것으로 11일 전해졌다. 의대 해부학 실습에 필요한 시신도 부족한데 고인과 유족의 희망과 달리 시신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논란이 일자 주최 측은 예정돼 있던 수업을 취소했다.

11일 조선비즈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기업 힐리언스 코어 센터는 이달 23일 예정돼 있었던 ‘핸즈온 카데바 클래스’를 취소했다. 회사 관계자는 “이미 수강 신청을 하신 분들께 깊은 사과 말씀드린다”고 했다. 카데바(Cadaver)는 의대에서 해부학 실습 등에 활용하는 시신을 의미한다.

문제가 된 수업은 지난해 7월 시작해 지금까지 2번 진행됐다. 임종을 앞둔 당사자 혹은 가족 희망으로 기증되는 시신은 대학 병원 등 의료기관 소유가 되어 각종 의학 교육과 연구에 쓰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핸즈온 카데바 클래스는 통상적인 의학 교육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왔다. 수업 내용이 소개된 자료에는 “운동 지도자에게 꼭 필요한 카데바 경험”, “오직 운동지도자만을 위한 인체 해부 교육”과 같은 문구들이 들어가 있다.

또 핸즈온 카데바 클래스는 수업 대상이 의료인이 아닌 운동 강사인 데다 60만원씩 수업료를 받은 점이 문제가 됐다. 회사 측은 수업에 쓰이는 시신이 방부 처리를 하지 않은 ‘프레시(Fresh) 카데바’라는 점도 강조했다. 시신을 기증받으면 용이한 보관을 위해 포르말린과 같은 약품으로 방부처리를 해 근육, 장기들을 굳히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해당 수업은 운동 강사들에게 근육 움직임 등을 보여주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시신에 방부 처리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홍보했던 것이다.

핸즈온 카데바 클래스 소개 페이지. /웹 캡처

회사 측은 수강생들이 수업에서 근육과 뼈, 신경, 인대의 작용과 모양, 결 등을 직접 확인하고 만져볼 수 있다고도 설명했다. 지난해 수강생 후기에는 “이렇게 상태 좋은 카데바는 처음”, “라이브로 실제 인체를 근육 하나씩 걷어가며 볼 수 있다”, “트레이너라면 필수”와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첫 수업부터 협력해 온 가톨릭대 중앙의료원 관계자는 “외부에서 이런 연수회 신청이 들어오면 운영위원회에서 실습 형태, 교육 목적, 의학 발전 가능성 등을 심의한 뒤 개최 여부를 확정한다”며 “해당 카데바 수업은 가톨릭대 중앙의료원 측에서 수업 장소, 해부학 박사, 수업용 시신 등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가톨릭대 측은 기증받은 시신을 돈벌이 수단으로 쓴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우리는 장소 대관료, 수업을 진행하는 박사 혹은 교수님께 드릴 인건비 정도만 떼간다”며 “수업을 기획한 것도 우리가 아니고, 돈을 벌려는 목적으로 개최를 승인한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누리꾼들 사이에서 “이런 수업에 쓰일 줄 알았다면 누가 시신을 기증하겠나”와 같은 반응이 나오고 있다.

‘공정한 사회를 바라는 의사들의 모임’(공의모)은 지난 10일 수업을 기획·주최한 힐리언스 코어 센터 측을 시체해부법 위반 혐의로 서울 서초경찰서에 고발했다. 공의모 측은 “수강생들이 시신을 직접 만지고 심지어 메스로 아킬레스건을 절개하는 등 활동을 한 것은 명백한 불법”이라며 “또 시체를 취급할 때 시신과 유족에 대한 정중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시체해부법 17조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현행 시체해부법에 따르면 시체 해부를 참관하는 건 자격 요건이 없어 일반인도 가능하다. 그러나 시체를 직접 해부하는 당사자에 대해선 ‘상당한 지식과 경험이 있는 의사가 해부하는 경우’ 또는 ‘의과대학의 해부학·병리학·법의학 교수가 직접 해부하거나 의학을 전공하는 학생에게 자신의 지도하에 해부하게 하는 경우’ 등으로 정하고 있다.

한편 대학 병원에 카데바가 충분한 것도 아니다. 지난달 대한의학회에서 발표한 ‘우리나라 해부학 교육의 과거와 현재, 의사 정원 증원에 따른 미래’ 논문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국내 의대 실습에서 카데바 1구를 학생 7.4명이 활용하고 있었다. 반면 미국은 카데바 1구당 학생 5.1명이 활용하고 있었다. 국내 의대 해부학 실습 여건이 열악하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방 의대생은 “해부학 수업에 쓸 시신이 모자라서 실습을 하면 시신 하나에 10명 남짓한 학생이 붙어야 하는 상황”이라며 “우리 쓸 것도 없는 마당에 웬 헬스 트레이너, 필라테스 강사에게 카데바를 내주는 건 황당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