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정다운

“지금까지 진행한 거 다 안 하고 싶다는 거에요 그러면? 지금까지 재판한 거 뭐에요?”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5단독 김지영 판사는 피고인석에 앉은 이모 아도인터내셔널 대표에게 이같이 말했다. 재판부가 이씨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자 이 대표와 그의 변호인들은 고개를 숙인 채 입을 다물었다.

앞서 이씨는 8400여회에 걸쳐 투자금 360억원을 편취하고, 14만여회에 걸쳐 4400억원에 달하는 유사수신 범행을 주도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유사수신은 법령에 따른 인허가나 등록·신고 없이 원금 보전을 약속하면서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사업을 하는 행위다. 돌려줄 가능성이 없는 데도 돈을 받은 것이 입증되면 사기 혐의가 적용된다.

이 모 아도인터내셔널 대표가 투자설명회를 진행 중이다. /독자 제공

이날 재판은 지난해 9월 처음 열렸다. 그간 이씨는 검찰 측 공소사실을 대부분 인정했다. 그럼에도 피해 규모가 워낙 크고 사건에 가담한 인물도 많은 탓에 재판이 길어졌다. 그런데 첫 재판 이후 8개월 만에 열린 공판결심에서 구형을 앞둔 이씨 측이 돌연 공소사실 중 일부를 부인했다.

이씨는 이날 “(유사수신) 사업을 처음부터 조직한 건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라며 “그런데 공소장에는 내가 모든 것을 주도한 것처럼 돼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처음 이 사업에 대해 이야기해준 사람들이 있고, (사건 진행 과정에서) 나에게 각종 지시를 내린 사람들이 따로 있다”라며 “사건의 공모관계가 분명히 밝혀지길 원한다”라고 말했다. 이씨 변호사는 “피고인이 사기를 당한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재판부는 “지금까지(공소사실을) 다 인정한다고 했다가 이제 와서 부인하는 거냐”라며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도 중요하지만 이런 태도는 고의로 재판을 지연시키는 목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씨 혐의가) 유죄로 인정될 경우에는 지금 태도를 모두 고려해 양형에 반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이날 예정됐던 이씨 구형은 2달 뒤인 6월 이후로 밀리게 됐다. 이씨가 공소사실 일부를 부인하면서 변호사를 추가 선임했기 때문이다. 이씨 측은 사건 관계자 5명에 대한 추가 증인심문도 요청했다.

김주연 한국사기예방국민회 대표가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법원 앞에서 아도인터내셔널 사건에 대한 기자회견을 진행 중이다. /최정석 기자

이씨 구형을 기대하고 있던 피해자들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김주연 한국사기예방국민회 대표는 재판이 끝난 뒤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가 투자한 피같은 돈으로 이OO(이씨 본명)가 변호사를 추가 선임하는 바람에 지난 8개월간 기다린 결심공판은 물거품이 됐다”라며 “너무나 억울하고 비통하고 참담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인 유광훈 법무법인 시우 변호사는 이날 이씨가 돌연 공소사실 일부를 부인한 걸 두고 “최종 목적이 결국은 양형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자신이 범죄에 가담한 정도를 줄여 구형을 가볍게 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유 변호사는 “방어권은 헌법상 권리이기 때문에 판사가 함부로 제한할 수는 없다”라면서도 “재판부가 지적했듯, 고의로 재판을 지연하려 했다는 게 인정되면 오히려 양형에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씨는 지난해 2월부터 아도인터내셔널을 ‘반품된 명품을 싼 값에 사서 비싸게 팔아 고수익을 내는 사업체’라 소개하며 투자자를 모았다. 투자자 대부분이 60대 이상 노인이었다. 그렇게 돈을 모은 이씨는 지난해 6월 전산 해킹을 핑계로 투자자들에게 배당금 지급을 멈춘 뒤 잠적했다. 그로부터 2달 뒤인 8월 이씨는 부산에서 체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