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중·고교생 사교육비가 27조원을 넘어서며 3년 연속으로 역대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 정부는 지난해 사교육비 증가율을 소비자 물가 상승률 이내로 억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지난해 사교육비 증가율(4.5%)은 물가 상승률(3.5%)보다 여전히 높았다. 그러나 교육부는 “증가세가 현격히 둔화됐다”면서 성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사교육비 증가는 고등학생이 주도했다. 교육부는 지난해 고등학교에 진학한 2007년 출생자가 다른 해보다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의대 열풍과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킬러 문항’을 배제하라는 지시로 교육 현장에서 혼란이 발생해 고3 수험생들이 학원으로 달려간 영향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14일 서울 양천구 목동 학원가 앞으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뉴스1

◇교육부 “올해 증가 추이 보면 내년은 반드시 감소시킬 수 있을 것”

교육부와 통계청은 전국 초·중·고 약 3000개교 학생 7만4000명을 대상으로 ‘2023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를 실시한 결과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이 27조1000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1년 전보다 4.5%(1조2000억원) 증가한 수치다. 사교육비 증가율은 2022년(10.8%)의 절반 수준이지만, 총액은 2021년(23조40000억원), 2022년(26조원)에 이어 3년 연속으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초·중·고 학생 수는 1년 사이 528만명에서 521만명으로 7만명(1.3%) 줄었지만 사교육비 총액은 늘었다. 이에 따라 1인당 월 평균 사교육비는 지난해 43만4000원으로 1년 전보다 5.8% 증가했다. 1인당 월 평균 사교육비는 2021년 36만7000원(증가율 21.5%), 2022년 41만원(11.8%)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9월 국회에 제출한 ‘2024년도 성과계획서’에서 2023년 초중고 사교육비 목표를 24조2천억원으로 전년 대비 6.9% 줄이겠다고 했다. 지난해 3월에는 사교육비가 가파르게 증가하며 2년 연속 최대를 기록하자 “사교육비 증가율을 소비자물가 상승률 이내로 억제하겠다는 것이 내부적인 목표”라고 했다. 사교육비 증가율 4.5%, 1인당 사교육비 증가율 5.8%는 모두 지난해 물가상승률 3.5%보다 높다.

그러나 이영찬 교육부 디지털교육기획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에서 “사교육비 증가율이 2021년 21%, 2022년 10.8%인 것과 비교해 증가세가 현격히 둔화됐다”고 평가했다. 배동인 정책기획관은 “올해 증가 추이를 보면 내년은 반드시 감소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반드시 경감시키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사교육 참여율은 78.5%로 전년보다 0.2%포인트 높아졌다. 이 수치도 증가세가 둔화됐다는 게 교육부 설명이다. 2021년 사교육 참여율은 75.5%로 전년보다 8.4%포인트 높아졌고, 2022년에는 78.3%로 2.8%포인트 상승했다.

교육부는 사교육비 증가에는 저출산 영향도 있다고 설명했다. 배동인 정책기획관은 브리핑에서 1인당 사교육비가 전년보다 5.8% 증가한 데 대해 “저출산이 고착화되면서 부모님들이 아이 하나 하나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2023년 9월 6일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가 치러졌다. 서울 송파구 방산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조선DB

◇킬러문항 배제 혼란·의대 열풍 이어지며 고등학생 사교육비 증가

사교육비 증가는 고등학생이 주도했다. 고등학교 사교육비 총액은 7조5000억원으로 전년보다 8.2% 늘었다. 증가율은 2016년(8.7%) 이후 7년 만에 가장 높다.

정부는 지난해 6월 모의평가가 끝난 후 이른바 ‘킬러 문항’을 사교육비 증가의 원인으로 꼽으며 수능에서 출제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후 교육부는 킬러문항을 없애려 출제 과정을 보완했고, 메가스터디와 시대인재 등 대형 학원을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수능 출제 기조가 갑자기 바뀔 수 있다는 불안감에 학원으로 달려간 고등학생이 더 많았던 셈이다. 의대 열풍이 계속된 점도 고등학교 사교육비가 늘어난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배 기획관은 “불안감이 사교육 증가 요인인 것은 맞는다”면서도 “킬러문항 배제, 공정 수능은 가야 할 방향이고, 안착이 되면 사교육 경감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대 열풍에 대해서는 “공교육 내에서 수험생들이 충분히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 시간이 지나며 안정화될 것”이라고 했다.

이 기획관은 “고등학교 1학년 학생 수가 (2007년) 출산율이 증가한 영향으로 늘어서 사교육비 총액이 증가한 것으로 나온다”며 “1인당 월 평균 사교육비는 초등학교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했다. 고등학생의 1인당 월 평균 사교육비는 49만1000원으로 전년보다 6.9% 늘었고, 초등학교(39만8000원)는 6.8% 증가했다.

EBS 중학 프리미엄이 지난해 7월 무료화되면서 중학생 사교육비 참여율이 줄었다. /EBS

◇연 71만원 상당 EBS 중학 프리미엄 무료화해 중학생 사교육 참여율 줄어

중학교 과정에서는 정부의 사교육 경감 대책이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다. 초등학교 사교육비는 전년보다 4.3% 증가한 12조4000억원으로 집계됐지만, 중학교 사교육비는 7조2000억원으로 전년보다 1.0% 늘어나는 데 그쳤다. 물가상승률보다 증가율이 낮다.

초등학교 사교육 참여율이 0.8%포인트 상승한 86.0%로 가장 높았다. 고등학교 사교육 참여율도 66.4%로, 0.5%포인트 높아졌다. 중학교 사교육 참여율은 75.4%로 0.8%포인트 하락했다. 중학교 사교육 참여율이 하락한 것은 코로나19로 사교육 시장이 위축됐던 2020년(4.1%포인트 하락) 이후 3년 만이다.

정부는 사교육비 경감 대책으로 작년 7월 EBS 중학 프리미엄을 무료화했다. 희망하는 학생 누구나 연간 71만원 상당의 ‘EBS 중학 프리미엄 프리패스’를 무료로 이용해 교과서와 시중 유명 학습참고서에 기반한 강좌 약 3만면을 수강할 수 있게 됐다.

배 기획관은 “지난해 6월 발표한 사교육대책 과제들이 효과를 발휘하는 부분이 있다”며 “EBS 중학교 프리미엄 수강생은 1만4000명에서 31만명으로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12일 충북 진천상신초등학교를 방문해 어린이들과 늘봄학교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있다. /교육부 제공

◇초등 늘봄학교 2026년까지 전면 확대해 ‘학원 뺑뺑이’ 없앤다

정부는 사교육 경감 대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입학과 동시에 돌봄 부담이 늘어나 어쩔 수 없이 ‘학원 뺑뺑이’를 선택하게 되면서 사교육비가 늘어나는 문제가 있다. 또 체육·문화·예술 활동 수요도 높아 사교육비가 증가한다. 교육부는 희망하는 초등학생은 누구나 늘봄학교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 돌봄과 사교육비 부담 해소를 추진한다.

올해 2학기부터 모든 초등학교 1학년이 늘봄학교를 이용할 수 있고, 내년에는 1~2학년, 2026년에는 모든 초등학생으로 확대한다. 현재 초등학교 1학년에게만 맞춤형 프로그램을 매일 2시간 무료로 제공하고 있고, 내년에는 1~2학년으로 확대한다.

EBS 학습 강좌를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인공지능(AI) 기반 문제은행·학습관리 시스템 기능을 고도화한다. 교원과 대학생을 활용한 소규모 화상 튜터링도 지원한다. 사교육비 증가율이 높은 국어는 공교육을 강화한다. 초등학교 3학년·중학교 1학년은 책임 교육학년으로 지정해 문해력·수리력 맞춤형 학습을 지원한다.

사교육비 통계에서 빠져 있는 유아 사교육비는 올해 실태를 파악한다. 교육부는 통계청과 협의해 올해 하반기에 이른바 ‘영어 유치원이라고 불리는 유아 영어학원 사교육비를 시험 조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