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씨가옥 입구. /서울시

서울시는 1919년 지어져 오랜 기간 방치되며 훼손됐던 ‘옥인동 윤씨가옥’(종로구 필운대로9가길 7-9)이 리모델링되어 내년 상반기 시민에게 공개된다고 21일 밝혔다.

옥인동 윤씨가옥은 대지 면적 537.5㎡(162평), 건축면적 254.55㎡(77평) 규모로 지어진 한옥이다. 옥인동 역사문화형 주거환경개선사업 구역에 속해 있다.

옥인동 윤씨가옥은 과거 친일파 윤덕영의 조카이자 순종황제의 계비였던 순정효황후 윤씨 생가로 알려져 있었다. 정부는 구전에 근거해 이 집을 순정효황후 윤씨 생가로 추정하고, 1977년 민속문화재 제23호로 지정했다. 그런데 2009년 사료를 조사한 결과 윤덕영이 소실 거주용으로 1919년 지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문화재에서 해제됐고, 빈집으로 방치돼 왔다.

현재 윤씨가옥 모습. /서울시

윤덕영은 이완용·민병석·박제순 등 1910년 8월 경술국치 당시 일제에 협조한 8명의 친일파 중 한 명이다. 시종원경으로 ‘합병조약’을 체결하는 어전회의에 참석해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당시 한국 통감(초대 조선 총독)의 협박·회유에 동의해 조약 조인에 적극 나섰다. 같은 해 10월 일본 정부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았고, 일본제국의회 귀족원 칙선 의원, 중추원 부의장 등에 올랐다.

윤덕영은 국권 피탈에 앞장선 대가로 일제로부터 은사금을 받았다. 1932년에 100만원 이상을 소유하고 있었을 정도로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다. 그는 김수항과 민규호, 민태호 형제 등의 별장 터였던 ‘송석원’을 1910년 매입한 후 주변 토지를 계속 사들여 석조건물 1동과 목조건물 약 17동, 연와조와즙 1동 등으로 구성된 ‘벽수산장’을 지었다. ‘한양의 아방궁’이라고 불릴 정도로 호화로웠는데, 옥인동 윤씨가옥도 이 과정에서 지어졌다. 벽수산장은 해방 후 병원, 유엔군 지부 등으로 활용되다가 1966년 발생환 화재로 파손됐고, 1973년 철거됐다.

서울시는 2022년 빈집 화용사업의 일환으로 윤씨가옥을 매입했다. 지난해 11월부터는 건축가 김찬중, 재단법인 아름지기와 함께 ‘부정적 문화유산’인 윤씨가옥을 열린 공간으로 만드는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가옥의 건축·역사·문화적 맥락을 고려해 원형 파악·가치 평가를 위한 조사를 하고, ‘서울한옥 4.0 재창조 추진계획’과 연계해 현대적 활용을 위한 한옥 건축양식으로 정비·활용한다는 게 서울시의 계획이다. 현재 설계용역 중으로 내년 상반기 공사 준공이 목표다.

불에 타 없어진 벽수산장. /서울시
1930년대 경성 사진 속 벽수산장. 좌측 하단은 한국은행, 우측 상단은 구 조선총독부 건물이다. /서울시

서울시는 윤씨가옥 리모델링 추진 과정 등을 담은 ‘다시 여는 윤씨가옥’ 영상 4편을 제작해 순차적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그중 1편인 ‘벽수산장과 윤씨가옥 이야기’는 이날 공개한다. 이경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와 건축가 김원천·김찬중씨가 프랑스풍으로 지은 윤덕영의 별장 벽수산장과 윤씨가옥의 관계 등을 설명한다.

이경아 교수는 당시 세력가들이 과시하는 저택과 주거 한옥을 지어 이중 생활을 한 경향이 있었다면서, 윤씨가옥이 소실댁으로 지은 한옥을 넘어 벽수산장과 짝을 이룬 건축물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김원천 소참우리건축 한옥연구소장은 윤씨가옥이 1948년 헌종이 후궁 처소로 지은 창덕궁 석복헌과 공간 구성, 규모, 배치 면에서 매우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다시 여는 윤씨가옥 시리즈는 서울한옥포털(hanok.seoul.go.kr)과 라이브서울(tv.seoul.go.kr), 오픈하우스서울 유튜브 채널(youtube.com/OPENHOUSESEOUL)에서 시청할 수 있다. 2~3편은 올해 6월과 10월, 내년 2월에 공개될 예정이다.

한병용 서울시 주택정책실장은 “시는 서울한옥 4.0 정책의 일환으로 일상 속 한옥·새로운 한옥·글로벌 한옥 실현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오랜 기간 폐가로 방치돼 왔던 부정적 문화유산이 시민에게 열린 공간으로 새롭게 변화하는 과정을 많이 기대해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