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대학교 캠퍼스 모습. /뉴스1

올해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2025학년도 대입에서 각 대학들이 정원의 25%를 전공 없이 선발하도록 한다는 목표를 교육부가 유지하기로 했다. 대학 반발에 목표를 달성하지 않은 대학에도 인센티브(성과급)를 지원하지만, 대학이 무전공 선발을 확대할수록 가산점을 줘서 인센티브 금액에 수십억원 차이가 나도록 했다.

무전공(전공자율선택제)은 학생이 전공을 정하지 않고 입학한 후, 대학의 체계적인 지원을 받으며 진로를 찾아 전공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제도다. 교육부는 학과 간 벽이 전혀 없어 모든 전공 가운데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유형1′과 계열 또는 단과대 단위로 모집하는 ‘유형2′를 제시했다. 기존의 자유전공이나 계열별 모집과 달리 학점에 따라 학과 인원 제한을 두지 않아 학생이 원하는 전공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정부가 정원을 관리하는 의대나 약대 등 보건·의료·사범계열은 전공 선택 범위에서 제외된다. 예체능·종교계열은 대학이 자율적으로 전공 선택 범위에서 제외·포함할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희소·특수·첨단·계약학과도 대학이 자율적으로 전체 모집 정원의 10% 한도에서 전공 선택 범위를 제외할 수 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4년 교육부 주요 정책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무전공 25%’ 속도 조절, 인센티브 사립대 38억·국립대 93억

교육부는 30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24년 대학혁신지원사업 및 국립대학 육성사업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대학혁신 지원사업은 사립대와 서울대·인천대 등 국립대 법인 117개에, 국립대학 육성사업은 국립대 37개에 지원금을 주는 사업이다.

올해 대학혁신 지원사업 예산은 8852억원으로, 이 가운데 인센티브로 배분되는 예산은 4410억원이다. 올해 국립대학 육성사업 예산은 5772억원 중 3426억원이 인센티브로 배정됐다. 대학교 한곳에서 인센티브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은 대학혁신 지원사업 38억원, 국립대학 육성사업 93억원이다.

앞서 교육부는 2025학년도 대입에서 모집 정원의 5~25% 이상을 무전공으로 선발하는 대학에만 인센티브를 지급한다고 밝혔다. 대학들은 유형1이나 유형1·2 혼합으로 선발 방식을 개편해야 한다. 유형1은 국립대, 수도권대 구분 없이 2025학년도에 정원 내 모집 인원의 5% 이상을 선발해야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었다. 유형1·2 혼합은 수도권대는 2025학년도에 정원 내 모집 인원의 20% 이상, 국립대는 2025학년도에 25% 이상을 무전공으로 선발해야 한다. 정원이 4000명이라면 1000명을 무전공으로 뽑아야 하는 셈이다.

그러자 대학들은 인기 전공 쏠림 현상이 심해지고 기초 학문이 고사한다고 반발했다. 교육부는 대학 의견을 수렴해 한발 물러선 대신, 가산점과 인센티브로 속도 조절에 나섰다. 교육부가 이날 발표한 계획에 따르면 수도권 사립대, 거점 국립대, 국가 중심대에서 정원의 25% 이상을 무전공으로 선발한다는 목표는 바뀌지 않았다. 대신 무전공 선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대학에도 인센티브를 주면서 무전공 선발 비율에 따라 가산점에 차등을 둬서 인센티브 금액이 달라지도록 했다.

전공자율선택제. /교육부

◇학생들 전공 선택 자유 보장할수록 가산점 높아져

교육부는 우선 학생 전공 선택권 확대, 유연한 학사 구조 개편 등 대학의 시도와 성과를 100점 만점으로 정성 평가를 한다. 여기에 무전공 선발 비율에 따라 최대 10점(국립대학 육성사업은 최대 8점)의 가산점을 준다. 가산점은 무전공 선발 비율이 같아도 선발 방식에 따라 차이가 난다. 학생들의 전공 선택이 자유로운 유형1 선발 비율이 높을수록 가산점이 높다.

예를 들어 대학혁신 지원사업에서 가산점 10점을 받으려면 무전공으로 학생을 25% 선발하고 그 중 10% 이상을 유형1로 뽑아야 한다. 무전공으로 25% 이상 선발해도 유형1 비율이 5~10%이면 가산점은 9점을, 유형1 비율이 0~5%면 가산점은 8점을 받는다.

대학은 S등급(95점 이상), A등급(90점 이상~95점 미만), B등급(80점 이상∼90점 미만), C등급(80점 미만) 등 평가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는다. 최고 가산점 10점을 받으면 등급이 1~2개 올라 인센티브를 더 받을 수 있다. 인센티브는 등급별로 가중치가 달라 수십억원씩 차이가 난다. 사립대의 평균 인센티브 금액 38억원을 기준으로 S등급은 가중치 1.6을 반영해 60억8000만원을 받는다. C등급은 가중치가 0.7이라 26억6000만원을 받게 된다.

비수도권 사립대, 특수목적대, 교원양성대는 지역과 대학별 여건을 고려해 학생 지원 체계 구축, 교육 과정 개편 등 혁신 성과를 평가한 뒤 인센티브를 지원한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학과·전공 간 벽을 허물고 학생들의 다양한 전공 선택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며 “산업·사회의 수요에 맞는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혁신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국국공립대학교 인문대학장협의회와 전국사립대학교 인문대학장협의회가 지난 24일 교육부의 무전공 입학생 확대 방침이 기초학문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며 추진 중단을 촉구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대학 절반 이미 자유전공·무전공 도입…17개교는 시행 계획 없어

전국 4년제 일반대의 절반가량은 이미 자유·무전공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있다. 자유·무전공을 시행하지 않는 대학도 대부분 도입할 예정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지난 10~22일 회원 대학 190개교 총장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 대학(135개교)의 45.2%(61개교)가 이미 자유·무전공을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공 구분 없이 무전공으로 선발하는 학교가 20.7%(27개교), 계열이나 단과대 단위로 자유전공을 선발하는 학교가 24.5%(33개교)였다.

자유·무전공을 시행하지 않는 대학은 54.8%(74개교)였다. 여기서 77%(57개교)는 앞으로 도입할 계획이고 23%(17개교)는 시행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자유·무전공 도입을 우려하는 이유로는 ‘학문 편중 및 전공 쏠림 현상’이 가장 많았다. ‘구성원 반발이나 갈등에 따른 설득과 협의’, ‘대학 및 계열 특성에 따른 일률적 적용 어려움’, 신입생 유치’, ‘모집 및 정원 확보’ 등의 문제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