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이 지난 15일 오전 대전 서구에 있는 미등록 경로당인 '17통 노인경로회관(장터노인정)'을 방문해 어르신들의 안부를 살피고 건의 사항을 들었다. /보건복지부

더불어민주당이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경로당 주5일 식사 제공’을 들고 나왔다. 경로당을 찾는 노인들이 일주일에 5일 점심식사를 할 수 있도록 정부·지자체가 예산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현재도 정부가 일부 지원하고 있는 사업이어서, 예산을 증액하면 된다. 그런데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로당이라고 불리지만 경로당이 아닌 ‘미등록 경로당’이 전국에 다수 있고, 이런 곳은 예산을 받을 수 없어서다.

21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12월 21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2동 구립 큰숲경로당을 방문해 “기본사회를 미래 비전으로 추구할 필요가 있겠다’며 “경로당 식사 문제도 비슷하다. 먹는 문제 정도는 대한민국이 충분히 국민들에게 지원해줄 수 있는 국력 수준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이 대표는 “가능하면 중앙정부 차원에서 일정 선을 보장해주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며 “최소한 주5일 정도는 원하는 사람 누구나 경로당에서 점심 문제는 해결할 수 있게, 원하지만 식사를 제공받지 못하는 경우는 없애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저희 생각”이라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12월 2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구립 큰숲경로당에서 어르신들의 점심 식사 자리에 반찬을 놓고 있다. 이 대표는 어르신들과의 식사 자리를 마친 후 주5일 점심 제공 정책 간담회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정부는 현재 전국 6만8000개 경로당에 냉·난방 에너지 비용과 함께 노인들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양곡비를 지원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경로당 냉·난방비와 양곡비 지원 예산은 800억300만원이다. 여기서 예산을 추가하면 ‘주5일 식사 지원’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이 공약을 실현하기에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경로당이라고 불리는 시설이 모두 지자체가 인정하는 경로당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로당은 ‘노인복지법’과 ‘대한노인회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해 운영되며, 법에서 정한 시설 기준을 충족해야 지자체에 등록할 수 있다.

경로당이 지자체에 등록할 수 있으려면 이용 인원이 20명 이상이어야 하고, 섬 또는 읍·면 지역은 10명 이상이어야 한다. 남녀 분리된 화장실과 거실 또는 휴게실, 전기 시설을 갖춰야 하며 면적은 20㎡(약 6평) 이상이어야 한다. 바꿔 말하면 이런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시설은 사실상 경로당의 역할을 하고 있더라고 지자체에 등록할 수 없고, 정부·지자체의 냉·난방비, 양곡비 지원을 받지 못한다.

이런 경로당은 전국에 상당수 존재한다. 김근한 구미시의원에 따르면 구미시에는 2023년 기준 등록 경로당이 419개, 미등록 경로당은 43개다. 전체 경로당 중 9.3%가 등록을 받지 못했다. 냉난방비 지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여름·겨울에는 사실상 이용하기 어렵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7일 난방비 지원 대책 이행 실태를 점검하기 위해 경기 고양시 덕양구 삼송1동 4,5통 경로당을 찾아 단열 공사와 창호 교체 현황을 살펴보고 있다. 미등록 경로당은 난방비를 지원받지 못한다. /산업부 제공

미등록 경로당은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를 수리해 사용하거나, 컨테이너를 이용하는 곳도 있다. 고령화와 인구 유출로 경로당을 유지할 이용자 기준인 ‘20명’을 채우지 못해 미등록 경로당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경기 안성시, 강원 정선군, 경남 진주시 등 지자체들은 조례를 제정해 자체 예산으로 미등록 경로당에 냉난방비와 양곡비를 지원하고 있다.

정부는 미등록 경로당을 ‘복지 사각지대’로 보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복지부는 실질적으로 경로당 역할과 기능을 하고 있는 미등록 경로당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다음달부터 ‘경로당 현대화 연구’ 용역을 진행한다. 미등록 경로당을 양성화시키는 ‘준경로당’ 제도 도입 등 지원 방안을 찾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