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수소로 버스를 한번 충전하면 450~500㎞까지 달릴 수 있습니다. 버스 한대를 충전하는 데 드는 시간은 25분 정도입니다. 전기차보다 주행 거리가 길어요. 매연을 내뿜지 않고 물만 뚝뚝 흘리면서 달리기 때문에 친환경적이죠."
제주도 조천읍 함덕리에 있는 그린수소 충전소에서 지난달 22일 오후 만난 제주에너지공사 관계자가 한 말이다.
이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수소가 여러 종류로 나눠진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수소는 생산 방식에 따라 그레이·블루·그린으로 나뉜다. 그레이수소는 석유화학, 정유, 제철 공정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부생수소나 천연가스로 만든다. 현재 생산되는 수소의 96% 이상이 이 그레이수소다. 수소 1㎏를 생산하는데 이산화탄소 10㎏를 배출한다. 블루수소는 그레이수소와 같은 방법으로 만들지만, 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CCUS)로 수소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대기로 방출하지 않고 따로 저장한다. 이 방법으로 수소 1㎏을 생산하는 데 이산화탄소가 3~4㎏ 배출된다.
그린수소는 물(H₂O)을 전기분해해 수소(H₂)를 얻는 방법을 이용한다.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를 이용해 수소를 만들면 그린수소라고 부른다.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전혀 배출되지 않는다. 생산 단가가 높다는 단점이 있다.
제주도는 그린수소 등 생태계를 구축해 2030년까지 탄소 배출 없는 섬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제주도 312번 버스는 전국 최초로 그린수소를 충전해 함덕리~한라수목원까지 29㎞ 구간을 달린다.
◇'탄소 배출량 0′ 그린수소 충전한 버스 달린다
수소버스가 연료로 사용하는 그린수소는 제주도 구좌읍 행원리에서 만들어진다. 제주도는 행원리에 222억원을 들여 전력변환장치(PCS), 에너지저장장치(ESS), 알칼라인 수전해 시스템 등을 갖춘 그린수소 생산 단지를 구축했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그린수소는 튜브 트레일러 차량에 실려 충전소로 옮겨진다.
충전소에서는 그린수소를 200~900bar로 압축해 저장한다. 'bar'는 압력의 단위로, 200bar라면 대기압의 200배를 의미한다. 수소는 부피가 크기 때문에 연료로 사용하려면 고압으로 부피를 줄여야 한다.
충전소에는 그린수소 디스펜서(충전기)가 2대 있다. 이곳에서 그린수소를 1시간에 최대 100㎏ 충전할 수 있다. 수소버스 4대, 일반 수소차 20대를 채울 수 있는 수준이다.
충전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 장치도 갖췄다. 그린수소는 저온에서 충전되기 때문에 충전기 노즐이 수분에 얼어붙을 수 있는데, 디스펜서에서 질소가 나와 노즐이 얼지 않도록 한다. 충전소 천장에는 가스·불꽃(화염)·초음파 감지기가 설치됐다. 수소는 매우 가볍기 때문에 누설되면 금방 천장으로 올라가고, 이 경우 화염과 초음파를 감지해 곧바로 설비 작동이 멈춘다. 제주에너지공사 관계자는 "그린수소는 순도가 낮으면 차량 결함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3개월에 한 번씩 순도 검사를 진행하며 99.99% 고순도를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제주도 312번 버스 9대 중 1대는 이곳에서 그린수소를 충전해 지난해 10월부터 함덕리~한라수목원 29㎞ 노선을 달리고 있다. 수소가 연료이기 때문에 매연이 없고, 순수한 물만 배출된다. 제주도는 앞으로 그린수소로 운행할 버스 8대를 추가 도입할 예정이다.
◇신재생에너지 과잉 생산되면 정전 위험…잉여 전력으로 그린수소 생산
제주도가 전국 최초로 그린수소 버스를 투입한 것은 섬이라는 지리적 환경과 관련이 있다. 제주도는 발전과 송배전, 판매 등 육지와 별도의 완전한 전력계통 체계를 갖추고 있다. 부족한 전력은 일부 공급받는다.
제주도는 2012년부터 풍력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제주 지역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은 지난해 19.2%에 달한다. 그런데 풍력발전소는 바람이 불어야 가동되고, 태양광발전도 날이 맑은 낮 시간대에만 전력이 생산된다.
바람이 잘 부는 등 여건이 갖춰지면 전력이 과잉 생산되고, 이 경우 송배전망에 과부하가 걸려 광역 정전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강제로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중단시키는 출력제어를 실시한다. 이 때문에 올해 1~5월에는 이틀에 한번 꼴로 풍력발전기가 멈췄다.
제주에서 전력이 과잉 생산되면 육지로 보내고 있지만, 출력제어를 해소하기에는 부족한 상황이다. 대안으로 떠오른 게 그린수소다. 잉여 전력을 물을 분해해 수소를 만드는 데 쓰고, 수소를 운송수단에 활용하면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제주도는 그린수소 생태계 구축에 나섰다. 일상 생활과 산업 현장에서 그린수소가 쓰이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행원리 그린수소(3MW) 생산 시설 외에도 조천읍 북촌리에 그린수소(12.5MW) 생산 시설을 조성할 계획이다. 애월읍에는 올해 그린수소 2호 충전소를 만들 예정이다. 버스 300대, 청소차 200대, 트럭, 선박 등 공공과 민간 영역에서 그린수소를 점차 활용하며 수소 기업 20개를 유치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게 제주도의 목표다.
그린수소 활용은 전 세계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딜로이트는 그린수소를 포함한 세계 청정수소 경제 규모가 2030년 6420억달러(830조원)에서 2050년 1조4000억달러(1810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2050년에는 그린수소가 전체 수소의 85%를 차지할 것이라는 게 딜로이트 예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