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늘어난 평균 수명은 우리에게 축복인 동시에 커다란 부담이기도 하다. 은퇴 후 살아야 할 기간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길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 2막을 두려워만 할 필요는 없다.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면 인생 전반부만큼, 혹은 그보다 더 풍요로운 후반부를 누릴 수도 있다. 조선비즈는 인생 후반부를 대비해 새로운 도전에 나선 중장년층,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던 20대 때와 같은 포부로 인생 2막을 설계한 40대들의 사례를 소개해 본다.[편집자 주]

서울 강동구 서울시 강동50플러스센터에서 지난 6일 디지털 평판 관리사 박진옥(54)씨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유명인 OOO와 △△△가 이혼한 사유는…” 인터넷이 발달하며 연예인, 운동선수, 기업인, 정치인 뿐만 아니라 개인에 대한 지라시(사설 정보지)까지 악의적인 게시글과 허위 사실이 무분별하게 유포되고 있다. 누가 올렸는지 찾기도 어렵고 카카오톡,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SNS)에 삽시간에 퍼져 삭제하기도 힘들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고 싶은데 잊혀지지 않아 끔찍하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잊혀지길 원하는 이들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사람이 있다. ‘디지털 청소부’ 박진옥(54)씨 이야기다. 서울 성동구 마장동 축산물시장에서 청소를 도와주는 것을 시작으로 환경 기업을 운영하던 중 디지털 평판 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해 인생 두 번째 도전에 나섰다. 박씨는 어떻게 남들에게 악몽 같은 게시글을 지워주게 됐을까. 조선비즈는 지난 6일 서울시 강동구 강동50플러스센터에서 그를 인터뷰했다.

―원래 환경 관련 사업을 했다. 디지털 평판 관리에 뛰어든 계기는.

“가정 주부로 봉사 활동을 하면서 살다가 2019년 11월 50대 초반의 나이에 환경을 디자인하는 기업 펀펀마주아리를 창업했다. 마장동 축산물시장을 보면 우지(牛脂) 등 고기에서 나오는 기름과 부산물이 많아 청결하지 않다. 시장에서 진열장을 관리하고 바닥을 습식 청소하는 것 등을 시작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오프라인 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환경을 깨끗하게 관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디지털 평판 관리사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디지털 평판 관리사는 어떤 일을 하나.

“개인이나 기업 등 고객 의뢰를 받고 인터넷에 올라온 악의적인 댓글과 게시글, 사진, 동영상 등이 삭제되도록 돕는 것이다.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등 타인의 권리가 침해된 경우 피해자가 통신 서비스 제공자에게 알리고 해당 정보의 삭제를 요청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시민들은 온라인에 자신에 대한 잘못된 정보나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올라와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그럴 때 저희가 돕는 것이다. 무조건 삭제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고 일단 어떤 의도로 게시글이 올라왔는지,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하는지 등 사실 관계를 확인한 뒤 절차를 진행한다. 게시글 삭제 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 좋은 평판이 형성되도록 한다. 개인이 명예를 높이면 사회 생활에 도움이 된다. 기업이 온라인에서 평판이 좋으면 신뢰도가 높아지고 브랜드 가치가 상승해 매출로 이어질 수 있다.”

일러스트=정다운

―기억에 남는 평판 관리 사례가 있나.

“유명인 A씨가 SNS에 자신의 사진을 올렸다. 그런데 그 사진으로 ‘낚시’를 하더라. A씨의 사진이 마치 선정적인 것처럼 게시글을 올린 뒤 사진을 클릭하면 유해 사이트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유해 사이트 주인은 트래픽이 유입돼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 당사자 입장에선 사진이 악용되는데 하나하나 찾기 어렵고 어떻게 지울지 모르겠으니 의뢰한 것이었다. 일단 육하원칙에 따라 자료를 수집했다. 링크를 찾거나 동영상 사이트에서 제목을 검색하는 등 여러 방식으로 자료를 모았다. 해당 사이트에 명예훼손 혐의 등이 적용될 수 있으니 삭제해달라고 고객센터 메일 등으로 요청했다. 단순히 삭제해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법적으로 이런 문제 소지가 있다고 언급하는 게 중요하다. 디지털 평판 관리사라고 하니까 유해 사이트에서 웬만하면 삭제를 해주더라.

악성 게시글이 삭제되는 기간은 그때그때 다르다. 국내 포털 사이트는 금방 처리된다. 중국 등 해외 사이트가 문제다. 해외 사이트는 고객센터 이메일 주소 등이 가짜일 수 있고 관련 담당자가 없는 경우도 있다. 계속 연락을 해보고 해결이 안 되면 방송통신위원회에 자료를 공유하는 방법이 있다. 유해 사이트에 악의적인 게시글이 올라왔는데 답이 없으니 처리해달라고 하는 것이다.”

―온라인이 발달하며 딥페이크(가짜 영상·이미지) 등도 문제가 되고 있다.

“도박, 마약처럼 유해한 콘텐츠도 중독이 된다. 어릴 때부터 좋은 인터넷 문화 습관을 가진다면 지금처럼 우리 사회가 유해한 콘텐츠에 노출되고, 사람들의 정신이 피폐해지진 않았을 것이다. 건강한 인터넷 환경이 조성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걸 새삼 느낀다. 오프라인에서 말 한마디 하는 것은 지나가면 그만이다. 그런데 온라인에서는 악의적인 기록이 끝까지 남는다. 거짓이지만 사람들은 사실이라고 믿는다. 이런 게 남의 일처럼 느껴질 수 있다. 타인의 고통이고 나와 상관 없다고 생각하며 무심코 악의적인 게시글을 읽고 낄낄거리며 지나갈 수 있다. 근데 이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타인이 고통을 받으면 그 고통은 나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이런 고통을 해소할 수 있어서 보람을 느낀다.”

―온라인에 올라온 악성 게시글을 지우려면 금액은 얼마 정도 필요한가.

“지금은 사회 공헌 활동 차원에서 커피값 정도만 받고 거의 무료로 활동하고 있다. 주변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보면 금액은 몇 만원부터 몇 백만원까지 천차만별이다. 일반인과 연예인이 다르고 개인과 기업이 다르다. 부정적인 게시글, 사진, 동영상, 개인 신상 정보 등 지우는 것에 따라 차이가 난다. 하다못해 청소를 할 때도 일반 청소는 30만원이고 프리미엄 청소는 200만원이다. 기존 사업과 연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디지털 평판 관리사가 삭제를 도운 악성 게시글. /박진옥씨 제공

―사업을 하면서 디지털 평판 관리사가 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나는 이미 늦은 나이에 회사를 차린 경험이 있는데 뭔들 못하겠나. 평일 새벽 5시에 출근해서 밤 10시까지 야근할 때도 있지만 지하철을 오갈 때 등 짬짬이 시간을 내서 공부했다. 50시간 교육을 받고 시험도 보고 60점 과락을 넘겨야 한다. 떨어질까봐 조마조마했는데 붙었다.

서울시 출자 출연 기관인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중장년층을 위한 ‘서울런4050′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 중 ‘디지털 평판 관리사로 창업하기’ 수업을 올해 7~9월 두 달간 들었다. 수강료는 5만원이었고, 자격증 응시료·발급비는 10만원이다.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인지, 사이버 폭력은 무엇인지, 검색 삭제 요청은 어떻게 하는지 등에 대해 배웠다. 디지털 윤리와 관련 법, 프로그램 검색, 크롤링, 정부 기관을 활용해 삭제하는 방법 등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컴퓨터를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도 아니고 용어들이 익숙하지 않아서 힘들었다. 초보자도 자신감을 갖고 천천히 따라갈 수 있도록 수업이 진행됐다. 당시 같이 수업을 들었던 사람들과 디지털 평판 관리를 하고 있는데 2주에 10개 정도 지우고 있다.”

―디지털 평판 관리를 배우기 전후 달라진 점은.

“디지털 평판 관리사가 된다고 했을 때도 사람들이 다들 못할 거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반응이 달라졌다. ‘진짜 잘했어’라고 격려를 해준다. 스스로도 바뀌었다. 예전에는 온라인에 악성 게시글이 올라와도 안쓰럽다는 생각만 하고 넘어갔다. 지금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좋다. 타인에게 힘이 되어준다는 것.”

―현재 인생을 고민하는 중장년층에게 조언 한마디 해준다면.

“50대에 일을 시작했다. 인생을 이모작하고 싶으면 그냥 문을 두드리면 된다. 젊을 때는 모르니까 그냥 한다. 나이가 들면 아니까 두려운 거다. 젊을 때 실패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 나이를 먹으면 어려우니까… 그런데 스스로를 인정하면 된다. 못해도 웃으면서 까짓 거 한번 더 해보면 된다. 바닥에서 하나씩 준비하고 알아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