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에 있는 사찰 칠장사에서 발생한 화재로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자승 스님이 29일 입적했다. 세수 69세. 법랍 44년.

화재 진압 당시 현장에서 스님으로 추정되는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신이 1구 발견됐는데, 이후 자승 스님의 법구로 확인됐다.

지난 3월 23일 조계사에서 열린 상월결사 인도순례 회향식에서 합장하는 자승 스님. /연합뉴스

이날 밤 11시쯤 조계종은 이날 화재로 자승 스님이 입적했다고 공식 확인했다. 화재 당시 자승 스님이 타인과 함께 있었다는 일각의 보도와 관련해서도 폐쇄회로(CC)TV 확인 결과 혼자 입적했다고 밝혔다. 자승 스님의 장례는 조계종 종단장으로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소방 당국 등에 따르면 화재는 이날 오후 6시 50분쯤 발생했다. 소방대원들은 사찰 요사채(승려들이 거처하는 장소)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인원 60여명, 펌프차 등 장비 18대를 동원에 한 시간 만에 큰 불길을 잡았다.

화재 진압 과정에서 불에 탄 시신이 발견됐고, 경찰과 소방당국은 화재 장소를 고려할 때 사망자가 스님일 것으로 추정했다. 당시 경찰은 “시신이 불에 타 신원 확인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앞서 자승 스님이 이날 칠장사를 방문해 요사채에 머물던 중 연락 두절이 된 상태로 알려졌는데, 이후 조계종이 해당 시신이 자승 스님의 법구라고 밝히면서 입적 사실을 확인했다.

화재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현장에서는 자승 스님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메모가 2장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 메모에는 “검시할 필요 없다. 제가 스스로 인연을 달리할 뿐이다. CCTV에 다 녹화돼 있으니 번거롭게 하지 마시길 부탁한다”고 적혔고, 다른 하나는 칠장사 주지스님에 대한 미안함을 전하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경찰은 수사 절차상 정확한 신원 확인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시신을 보내 스님이 기존에 사용했던 물건과 DNA를 대조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주변 CCTV 감정으로 정확한 화재 원인 등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칠장사 화재현장. /뉴스1

강원 춘천 태생인 자승 스님은 1972년 해인사에서 지관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74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았다. 은사는 제30대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월암 정대 스님이다.

자승 스님은 1986년 총무원 교무국장으로 종단 일에 발을 들여 규정국장, 재무부장, 총무부장 등을 거쳐 1992년 10대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을 맡았다. 이후 11·12·13·14대 중앙종회 의원을 지낸 뒤 2006년부터 2년간 중앙종회 의장을 역임했다.

2009년 제33대 총무원장으로 선출된 이후 2013년 재선에 성공하며 8년 동안 총무원장으로 조계종을 이끌었다. 1994년 종단 개혁 이후 연임에 성공한 총무원장은 자승 스님이 처음이다. 자승 스님은 재임 기간 템플스테이와 사찰 음식으로 한국 불교를 국내외에 알리는 데 힘썼으며, 사찰 재정을 공개하는 등 불교계 재정 투명화를 위해 노력했다.

자승 스님이 입적한 칠장사는 1983년 9월 경기도문화재 24호로 지정된 사찰이다. 궁예가 어린 시절 살았던 곳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며, 어사 박문수가 나한전에 유과를 바치고 꿈에 부처가 나타나 과거의 시제를 알려주어 합격했다는 이야기도 있어 시험을 앞두고 기도처로 찾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번 화재로 인한 문화재 훼손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