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 애플리케이션에 올라 온 젖병소독기. /당근

내년 2월 딸 출산을 앞둔 ‘예비 아빠’ 30대 직장인 허범석씨는 요즘 퇴근 후 아내로부터 전달받은 주소지로 향한다. 아내가 중고거래 애플리케이션에서 점찍어 둔 유아용품을 가지러 가기 위해서다. 그는 “신생아 때 잠깐 쓰는 물건을 새로 사려니 날마다 제품 가격이 오른다”며 “사용에 지장이 없는 좋은 중고 물품이 많다”고 했다. 그렇게 중고거래 앱을 통해 젖병소독기, 유모차, 카시트, 스탠딩 욕조까지 구매한 상태다.

출산을 앞둔 신혼부부들이 유아용품 가격 부담에 중고거래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아기용품은 무조건 ‘새것’이라는 말도 치솟은 물가로 옛말이 된 지 오래다. 특히 신생아 용품은 사용 기간과 비교하면 가격이 비싸 중고거래가 더 활발하다. 중고거래 앱을 활용해 손품만 잘 팔면 새 제품 10분의 1 가격으로 쓸만한 제품을 살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13일 중고거래 앱 당근마켓에 서울시 노원구와 성동구로 위치를 설정한 뒤 U사 젖병소독기를 검색하면 50개 이상 제품이 매물로 올라와있다. 거래완료 제품까지 더할 경우 100개 이상이다.

베이비페어를 찾은 시민들이 유아용품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노원구와 성동구는 지난해 기준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출산율 1위 지자체다. 합계 출산율은 0.72명으로, 서울 평균 출산율(0.59명)을 웃돈다.

해당 제품의 신제품은 온라인에서 30만원대로 판매 중이다. 중고 거래시 가격은 제품 생산 연도와 사용감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최저 3만원대부터 10만원 안팎의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최근 젖병소독기를 구매한 30대 여성 김모씨는 “10만원대로 샀지만, 내년 출산 이후 잠깐 쓰고 잘 관리해서 되팔 계획”이라고 했다.

출산 초기에 쓰이는 다른 제품들 상황도 마찬가지다. 분유포트, 분유제조기부터 유아용 침대, 유모차까지 먹는 것부터 자고, 이동에 필요한 대부분 제품의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유아용품 중고거래가 활성화한 배경은 치솟은 제품 가격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까지 영유아 가구가 주로 소비하는 11개 상품·서비스 중 절반 이상인 6개 품목의 물가 상승률이 전체 평균(3.7%)을 웃돈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유아동복 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1% 올라 상승 폭이 가장 컸다. 관련 통계가 집계된 1985년 이후 최대 상승률이기도 하다.

베이비페어를 찾은 시민들이 유모차 등 다양한 유아용품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상황이 이렇게 되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중고 유아용품 구매 시 유의해야 할 점을 담은 글들이 여럿 올라온다. 일부 중고 거래를 망설이는 이들이 올린 게시글에는 이미 중고거래로 잘 사용했다는 독려 글이 이어지기도 한다. 3세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30대 이씨는 “유아용품만큼 중고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게 없다”며 “유아용품을 중고로 산다는 인식보다 유아용품이라 중고로 구매한다”고 했다.

유아용품 중고거래는 사실상 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유명인들 역시 유아용품 구매 시 당근을 주로 활용한다고 밝힌다. 배우 한가인씨는 한 방송에서 “아기용품이나 아기책은 사용 기간이 짧다”며 “당근마켓을 이용하면 정가 10%면 살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준영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소비자주거학과 교수는 “물가가 고물가 시대이기도 하고, 수요층들이 선택과 집중으로 가성비 있는 제품들을 선택하는 것”이라며 “한편으로는 고가 제품과 같은 프리미엄 제품 수요도 증가해 양극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