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에 거주 중인 학부모 A(39)씨는 최근 초등학생 아이가 다니는 학교로부터 가정통신문 한 장을 받았다. 가정통신문에는 "최근 국내 일부 공동시설에서 빈대가 출현하는 사례가 있어 빈대 확산 방지 및 방제 방법을 안내해 드리오니 가정에서 예방 활동에 참고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서울과 수도권은 물론 전국에서 빈대가 기승을 부리자 학교에서도 이를 주의하라 경고한 것이다.
이달 초 가족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앞두고 있던 A씨는 고민에 빠졌다. 이런 시기에 여행을 다녀왔다가 집과 학교, 아이가 다니는 학원 등에 빈대가 퍼지기라도 하면 어쩌냐는 걱정 때문이다. 곧바로 비행기 표, 호텔 숙박비 환불이 가능한지 알아봤으나 여행 일정이 너무 코앞이라 돈을 거의 돌려받을 수 없었다. 결국 A씨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살충제를 잔뜩 사들고 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
서울 각지에서 빈대 관련 신고가 속출하는 가운데 학교에까지 빈대가 퍼질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커지고 있다. 이에 학부모들에게 빈대를 주의하라는 내용의 가정통신문을 보내는 학교들 또한 늘고 있다. 아예 시·도 교육청 차원에서 빈대 합동 대책반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학부모 이 모(45)씨는 지난주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보낸 빈대 관련 가정통신문을 받고 이달 중순 예정돼있던 제주도 여행을 취소했다. 이씨는 "비행기 좌석, 호텔 침대 등을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일정을 취소했다"며 "100% 환불을 받지는 못했지만 괜히 이런 상황에 여행 다녀왔다가 빈대가 퍼져 가구 버리고 도배까지 새로 하면, 거기서 오는 손해가 더 클 거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에 거주 중인 학부모 김 모(41)씨 또한 같은 이유로 다음달 가는 걸로 돼있던 베트남 여행을 취소했다. 김씨는 "사실 그 전까지는 괜한 호들갑이라 생각했는데 가정통신문을 받아들고나서야 예삿일이 아니라고 절감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집 주변 마트와 인터넷 쇼핑몰에서 살충제 5종을 두 통씩 사서 집에 구비해둔 상태다.
이처럼 '빈대 사태'에 다급해진 시민들이 살충제를 찾는 움직임은 통계로 확인된다. G마켓은 올해 10월 31일부터 11월 6일까지 일주일간 빈대 퇴치제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813% 뛰었다고 전했다. 이 기간 동안 침대 청소기는 610%, 고열 스팀기는 25%, 약을 뿌릴 때 쓰는 자동 분무기는 17%씩 매출이 늘었다.
같은 기간 11번가에서는 방충 용품 거래액이 109% 늘어났다. 한 국내 대형 온라인몰 관계자 또한 "빈대 살충제를 비롯한 관련 제품 검색량이 지난해 비슷한 기간과 대비해 큰 폭으로 급증했다"고 말했다.
상황이 점점 악화되자 정부는 물론 전국 지자체에서까지 빈대 확산 대응에 나서고 있다. 대구시는 지역 9개 구·군 보건소 등과 대책 회의를 갖고 합동대책반을 구성해 운영하기로 했다. 지난 9월 대구 계명대 기숙사에서 빈대가 지속적으로 출몰한다는 학생들 신고가 잇따르며 큰 문제가 불거졌다.
인천시도 산하 교육청을 비롯한 관계 기관들이 빈대 종합대책본부를 구성한 상태다. 본부는 지역 내 숙박시설, 목욕탕 등 757개 업소를 대상으로 다음 달 8일까지 합동 점검에 들어간다. 앞서 지난달 인천에 있는 한 찜질방에서 빈대가 나왔다는 신고가 들어왔고, 이후 서울과 경기에서까지 빈대 신고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한편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빈대 예방·대응 정보집'에 따르면 빈대가 나왔을 때는 단순히 살충제만 쓰는 게 아니라 고열스팀기로 물리적 방제까지 해주는 게 효과적이다. 빈대에게 물렸다면 상처 부위를 물과 비누로 씻고 증상에 따른 치료법과 의약품 처방을 의사, 약사와 상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