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과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범죄를 줄이겠다며 약 20년 전부터 ‘셉테드’(CPTED·범죄예방환경설계)를 도입했지만 정작 효과는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오히려 일부 지역에서는 셉테드를 조성하고도 범죄 발생률이 일시적으로 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보여주기식 행정으론 범죄를 막을 수 없다며 천편일률적인 조치가 아니라 지역 특색을 고려한 면밀한 분석 및 방범 활동과 범죄 동기 제거를 위한 각 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셉테드란 도시 계획이나 건축 설계에서 범죄를 일으킬 수 있는 요소들을 줄여 치안 수준을 높이는 디자인 과정을 일컫는다. 후미진 길에 가로등·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거나 오래된 골목에 벽화를 그리고 전봇대에 전광판을 다는 등의 방법이 있다. 지난 17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등산로 인근에서 대낮에 성폭행 사건이 벌어지자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8일 “범행 욕구 자체를 사전에 자제시킬 수 있도록 둘레길·산책길에 강화된 셉테드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 전국 최초 셉테드 도입지인 부천시도 방범 효과 못 누려

그래픽=손민균

21일 조선비즈가 검찰청 ‘범죄분석통계’를 토대로 셉테드가 도입된 지역 중 6곳을 골라 5대 범죄(살인·성폭력·폭행·절도·강도) 발생 통계를 분석한 결과, 셉테드 도입 직후 범죄 발생률(인구 10만명당 범죄 발생 건수)이 줄어든 지역은 2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4곳은 셉테드 조성 이후에도 범죄 발생률이 전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늘어났다.

전국 최초로 셉테드가 시범도입된 경기 부천시 역시 범죄 발생률이 늘어난 경우다. 부천시는 지난 2005년 셉테드를 도입했다. 전년(2004년)에 부천시의 5대 범죄 발생률은 291.1건이었지만 2005년 905.4건으로 급격히 뛰더니 다음해(2006년) 1050.3건을 기록했다. 가장 최신 연도인 2021년에도 746.7건을 기록하며 여전히 셉테드 도입 이전보다 높은 범죄 발생률을 보였다.

2021년 기준 5대 범죄 발생률이 가장 높은 대구 중구 역시 셉테드의 효과가 비껴간 지역이다. 대구시와 대구경찰청은 지난 2017년부터 대구 일대에 셉테드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2017년 중구의 범죄 발생률은 2238.4건으로 전년(2016년·2343.4건)보다 감소하나 싶었지만 다시 2018년 2709건, 2019년 3297.6건으로 뛰더니 2021년엔 2684.8건을 기록했다.

이외에도 서울에서 가장 먼저 셉테드를 도입했다고 알려진 서울 마포구와 최근 무차별 흉기난동이 일어난 경기 성남시도 셉테드를 들여온 것이 무색하게 범죄 발생률이 줄지 않았다. 성남시는 2013년쯤부터 시 차원에서 셉테드를 도입했으나 이후 2016년까지 범죄 발생률이 2013년 수치를 웃돌았다. 지난 2012년 셉테드를 조성한 마포구는 2013년 범죄 발생률이 일시적으로 떨어졌으나 이듬해(2014년)부터 2019년까지 범죄 발생률이 2012년 수치를 상회했다.

다만 셉테드 조성 주요 사례로 꼽히는 부산 사상구와 최근 연이어 강력범죄가 터진 서울 관악구는 셉테드를 도입한 이후 범죄 발생률이 줄어들었다. 부산시는 지난 2013년부터 부산지검·부산경찰청 등과 힘을 합쳐 사상구 등 범죄취약지역에 셉테드 사업을 실시했다. 이후 사상구의 범죄 발생률은 1157.2건(2013년)에서 1년 후 1135.2건(2014년)으로 소폭 줄기 시작해 2021년엔 800.8건을 기록했다. 관악구도 2013년쯤부터 셉테드가 적용되기 시작해 범죄 발생률이 해마다 10~130여건씩 줄었다.

◇ 셉테드 방범 보완책일 뿐, 만능키 아니야

지난 17일 성폭행 사건이 일어난 서울 관악구 신림동 소재 야산 현장 모습. /조선DB

전문가들은 셉테드만으론 100% 방범 효과를 낼 수 없다고 분석했다. 또한 전문가들은 셉테드는 범죄 예방을 위한 보완책이지, ‘방범 만능키’로 여겨져서는 안 되다고 입을 모았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셉테드의 방범 효과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분분하다”며 “풍선효과처럼 셉테드로 특정 지역의 범죄 억지력을 높여도 다른 지역으로 범죄 발생이 전이된다는 의견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몇 년 사이 여러 지자체에서 셉테드를 도입한 이유는 ‘방범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행정편의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물리적 설계만을 기획한 셉테드는 장기적인 범죄 예방이 힘들다”며 대표적인 사례로 서울의 첫 셉테드인 마포구 염리동을 꼽았다. 이윤호 교수는 “셉테드가 효과를 보기 위해선 물리적인 환경도 개선하지만 인구이동이 활발해지도록 유도하고 행인들이 상호감시해 범죄 기회를 없애도록 하는 환경과 사람의 상호작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논의되거나 진행 중인 셉테드와 경찰의 위력순찰 모두 강력범죄의 뿌리를 뽑을 방법은 아니라고 진단했다. 이웅혁 교수는 “현재 당국이 내놓는 대책들은 사건의 겉모습만을 쫓아가기 급급하다”며 “근본적인 범죄 분위기를 없애고 지역의 특색을 고려한 방범 환경을 짜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윤호 교수 역시 “범행 동기를 없애는 게 중요하다”며 “정신질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는다면 보건 당국이, 사회에 누적된 불만이 원인이라면 범정부적으로 사회 구조 개선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