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김 모(36) 씨는 자신의 오피스텔 문 앞에 시키지도 않은 팥빙수가 배달된 것을 봤다. 배달의민족(배민) 영수증이 붙어있어 고객센터에 전화해 회수해달라고 하자 “중개 플랫폼이라 오배송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섣불리 손을 댔다가 변상 요구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내버려 뒀더니 빙수는 다음날까지 그대로였고 내용물이 녹아 벌레가 꼬였다.

최근 배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삭제한 김 씨는 잘못 주문한 사람에게 음식을 가져가라고 요구하기 위해 주문자 정보라도 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배민 측은 “회원 정보를 알려줄 수는 없으며, 대신 해당 가게에 회수 요청을 해보겠다”고 했다. 김 씨는 “정작 음식을 잘못 주문한 사람도, 오배송 건을 중개한 배민도 책임을 지지 않고 엉뚱하게 나와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보게 돼 황당했다”라고 지적했다.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배민은 직접 배달 라이더와 계약해 배달하는 배민1 서비스의 경우 배달 거리가 4㎞ 미만인 경우에 한해 오배송 건을 회수하지만, 가게와 소비자를 중개해 주기만 하는 ‘일반 배민 서비스’의 경우 오배송을 책임지지 않는다. 배달 라이더가 주소를 잘못 보고 다른 곳에 배달한 경우엔 라이더에게 배달료를 지급하지 않고 있지만, 별도로 회수 의무를 부과하지는 않고 있다. 아울러 주문자가 주소를 잘못 적은 경우에도 배민 측에서 회수를 하지 않는다. 이에 잘못 배달된 음식을 받은 사람들 사이에선 “내가 음식물 쓰레기 처리반이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가에 배달의민족 라이더들이 이동하고 있다./뉴스1

본인 물건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도 잘못 배송된 음식을 수령하고 반환하지 않을 경우 형법상 ‘점유 이탈물 횡령죄’에 해당할 수 있다. 점유 이탈물 횡령죄는 1년 이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 벌금 또는 과태료 처분이 내려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음식을 오배송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배민 고객센터를 통해 회수를 요청하지만 배민은 접수, 조리, 배달, 취소 등의 문제는 오롯이 가게 권한으로 고객센터에서 임의처리가 어렵고, 주소 오기재의 경우 배민의 귀책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답변을 내놓고 있다.

배민 운영사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일반 배민 서비스 배달은 식당에서 고용한 라이더나 배달대행사 등을 통해 자체적으로 진행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주소 오기입 등으로 인한 오배송이 발생한다면 고객에게 가게로 직접 문의하도록 안내하고, 이후 가게에서 처리 가능한 방법으로 조치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배민 측의 이런 조치를 두고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주문자의 주소 오기재로 발생한 오배송인데도 입점 상인들에게 문제 해결 책임을 전가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천광역시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 모(45) 씨는 “오배송 문제가 발생했을 때 소비자 입장에서는 결국 리뷰를 남길 수 있는 가게 측에 리뷰 테러 등의 방식으로 항의를 할 수 있는데 배민은 우리를 보호해 주지 않으니 라이더나 주문자 잘못이어도 가게에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배민과 같은 플랫폼 기업에 사회적·법적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공정거래법 전문인 이주한 변호사는 “배민은 자영업자와 소비자 사이의 계약이고 단순히 중개만 하니 주체가 아니어서 책임이 없다는 논리”라면서 “하지만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플랫폼에 법적으로 책임을 부과할 수 있도록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