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올해 안에 필리핀 출신 등 외국인 가사도우미(가사관리사)가 서울에 있는 맞벌이 가정에서 가사·육아 일을 맡게 되지만, 시범 사업이 시작도 하기 전부터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부가 이들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기로 하면서, 언어가 통하지 않는 외국인에게 종일 아이를 맡기는데 중국 동포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금액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 사업을 처음 제안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언급한 싱가포르에서 일하는 동남아 국가 출신 가사관리사 급여는 100만원에 미치지 못한다. 한국과 달리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 저임금을 주는 국가(지역)들은 최저임금제도가 없거나, 있더라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아니어서 국제 사회의 시선에서 자유로워 이 같은 일이 가능하다.

권혜원 동덕여대 교수가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중구 로얄호텔에서 고용노동부 주최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 사업 관련 공청회' 토론 후 참석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스1

◇말 잘 안 통하는 동남아 출신 가사관리사, 중국동포와 임금 큰 차이 없어

6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부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계획을 확정하고 이르면 연내에 사업을 실시할 계획이다. 정부는 지난달 31일 공청회에서 구체적인 외국인 가사관리사 근무 조건을 제시했다. 이들은 내국인이나 다른 외국인 근로자와 마찬가지로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받아야 한다. 내년 최저임금은 시급 9860원으로, 월급으로는 206만740원(월 209시간 기준)이다.

외국인 가사근로자를 전일제로 고용하는 가정은 한 달에 200만원이 넘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또 정부는 외국인 가사근로자는 가정에 입주해 함께 생활하면서 가사·육아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게 했다. 이들은 계약을 맺은 기관이 마련한 숙소에서 출퇴근해야 하고, 숙소 비용은 근로자가 부담한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는 외국인에게 어린 자녀 돌봄을 맡기지만 비용은 말이 통하는 중국 동포와 큰 차이가 없고, 외국인 가사도우미 퇴근에 맞춰 맞벌이 부부가 귀가해야 하는 장벽이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문제점은 오세훈 서울시장도 지적했다. 오 시장은 지난 1일 페이스북에서 “문화도 다르고 말도 서툰 외국인에게 아이를 맡기며 200만원 이상을 주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비용 문제를 지적했다. 다만 “이제 시작이니 정부와 함께 정책의 실효성을 높여나갈 수 있게 준비하겠다”고 했다.

한국의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는 일본과 비슷한 점이 많다. 일본은 비교적 최근인 2017년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 대도시와 인근 지역에서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를 도입했다. 이들은 내국인과 동일하게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를 받고, 노동관계법 적용도 받는다. 노동 인권에 대한 글로벌 기준을 반영한 결정이다.

홍콩의 외국인 가사관리사(foreign domestic helper)가 휴일에 모여 교류하고 있다. /홍콩 노동청 홈페이지 캡처

◇최저임금 없거나 국제 사회의 ‘노동 인권’ 신경 덜 써도 되는 국가는 저임금 적용

싱가포르에서 외국인 가사관리사는 한 달에 평균 600싱가포르달러(약 60만원) 정도의 급여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싱가포르에는 최저임금제도 자체가 없기 때문에, 내국인과 외국인을 차별한다는 논란도 없다. 출신국과 경력에 따라서 시장에서 형성되는 적정 수준의 임금이 있다. 다만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싱가포르 고용주는 외국인 가사관리사가 6개월마다 건강검진을 받게 하고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귀국 항공료와 수수료도 고용주가 낸다.

홍콩의 입주형 외국인 가사관리사 최저임금은 월 4730홍콩달러(약 80만원)다. 홍콩의 외국인 가사관리사는 별도의 최저임금 적용을 받는다. 고용주가 식사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따로 식비로 1196홍콩달러(약 20만원)를 더 줘야 하다. 이밖에 외국인 가사관리사가 본국을 갔다 올 때 발생하는 항공료, 취업할 때와 계약 만료 후 본국으로 돌아갈 때 발생하는 항공료 등도 고용주가 부담해야 한다.

대만의 외국인 가사관리사의 급여는 월 2만대만달러(약 80만원)다. 최저임금보다 낮다. 다만 대만도 고용주가 가사관리사 고용안정비와 상해보험료 등을 부담해야 한다. 대만은 6세 이하 자녀가 3명 이상이거나 12세 이하 자녀가 4명 이상이면서 이 중 2명이 6세 이하인 경우 등에 한정해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고용할 수 있다.

홍콩과 대만은 OECD 가입국이 아니어서 외국인에게 내국인과 다른 최저임금을 적용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김원모 전문위원은 “외국인 근로자에게 최저임금법 적용을 제외하는 것은 국적을 이유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하도록 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과 상충될 우려가 있다”며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된 OECD 국가 중 외국인에게 적용을 배제하는 사례가 없다”고 했다.

미국의 오페어 관련 업체 홍보 이미지. /오페어어메리카 홈페이지 캡처

미국은 유럽의 ‘오페어(Au Pair)’ 제도를 활용해 가정의 가사·육아 부담을 줄이고 있다. 오페어는 문화 교류와 가사 서비스를 연계한 제도로, 외국 가정에서 일정 시간 아이를 돌봐주고 숙식과 소정의 급여를 받는다. 자유시간에는 어학 등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운다. 청년들이 외국에서 최장 1년간 체류하면서 관광과 취업 등을 병행하는 워킹홀리데이의 일종이다. 미국 국무부는 육아 수요가 급증하자 1986년 이 제도를 도입했다.

유럽 국가들은 통상 오페어에게 주당 최대 30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하지만, 미국은 주당 45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오페어가 받는 임금 최저선은 주당 195.75달러(약 25만원)다. 연방최저임금인 시급 7.25달러로 45시간 일한 금액에서 방세와 식사 비용으로 45%를 차감해 정해진 액수다. 미국에서 베이비시터 시급은 20달러를 넘지만 오페어 시급은 4달러 수준인 셈이다. 다만 주(州)마다 오페어 임금은 다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