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모(18) 양은 지난 5월 졸업식 사진을 찍기 위해 이른바 ‘로맨스 판타지(로판) 드레스’를 빌렸다. 로맨스 판타지란 로맨스와 판타지가 결합된 웹소설이나 웹툰 장르를 말한다. 가상 세계에서 이뤄지는 사랑 이야기를 다루는데 여주인공들이 중세 시대 영화에서 나오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는다. 최 양은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촬영 컨셉을 ‘딸기밭 공주님들’로 정하고 머리 스타일과 메이크업까지 맞췄다. 마음에 드는 드레스를 사려면 10만원이 훌쩍 넘어 최 양은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3만5000원에 드레스를 대여했다.

최 양은 “반 졸업사진 콘셉트가 ‘공주’였는데 중세 시대 드레스와 디즈니 공주 드레스가 인기였다”며 “7교시에 졸업사진 촬영이 있었는데 반납까지 시간이 아까워서 3교시부터 갈아입고 사진을 찍고 놀았다”고 말했다.

‘로판’ 장르의 웹소설과 웹툰이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중세 시대 드레스를 입고 졸업사진을 찍는 것이 덩달아 유행이다. 5일 국내 패션 중고 거래 앱 번개장터에 따르면 졸업사진 촬영 기간인 지난 5월 2주간(5월1일~5월 14일) ▲졸업사진 중세 ▲졸업사진 디즈니 ▲졸업사진 개화기 키워드의 검색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각각 462%, 385%, 223%씩 급증했다. 같은 기간 테마·의류 카테고리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50% 늘었다. 로판 웹툰이나 소설에서 공주 드레스를 입은 주인공의 영향으로 일명 ‘로판 드레스’ 입고 졸업사진을 찍으려는 10대 청소년들이 늘어난 영향이다.

네이버쇼핑에서 판매되는 졸업사진 촬영용 로판 드레스(좌)와 번개장터에서 대여로 판매 중인 로판 드레스(우)/ 온라인 사이트 캡처

로판 장르 콘텐츠는 최근 웹소설과 웹툰 플랫폼에서 인기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3일 카카오웹툰의 실시간 인기 순위 10위권 내 작품 중 1·3·6·7위가 로판 장르다. 네이버웹소설에선 통합랭킹 상위 15개 중 6개(2·3·4·6·14·15위)가 로판 장르다. 특정 국가나 시대에 얽매이지 않는 독창적인 세계관과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갈 길을 걸어가는 등장인물, 빠른 전개 등이 인기 비결로 꼽힌다. 웹툰 업계 관계자는 “요즘 웹툰계 트렌드는 ‘회빙환(회귀·빙의·환생)’인데 이는 판타지 장르의 특성”이라며 “여기에 로맨스가 결합하면서 근래 ‘로판’이라고 흔하게 불리며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로판 주인공들은 대개 가상 중세 시대 국가의 귀족이나 왕족 태생의 10~20대 여성이다. 이들을 부르는 호칭은 주로 ‘영애(윗사람의 딸을 높여 이르는 말)’다. 신분이 높은 만큼 화려한 드레스와 치장을 즐겨 한다. 로판 웹툰이나 소설을 즐기는 10대들이 드레스를 빌려 입는 것은 졸업사진 촬영과 같은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로판 웹소설부터 웹툰까지 즐겨보고 있다는 고등학생 한모(18) 양은 “로판 소설은 주인공 이름이 ‘딜런 산 블레이드’, ‘블레이크 라 르시 제라실리’처럼 길고 복잡한 경우가 많다”며 “지난달 졸업사진 촬영에서 드레스를 입은 친구들은 ‘OO아이델리아’, ‘OO렐라’처럼 컨셉을 정해서 빌려 입고 찍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드레스 금액이 일부 학생들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구매하려면 한 벌당 최소 5만원에서 최대 수십만원대로 가격대가 높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드레스를 하루 빌려주는 대여업도 성황 중이다. 고등학생 진모(18) 양은 “공주 컨셉의 졸업 사진을 많이 찍는데 저렴한 건 살 수 있어도 질이 별로고 그 이상은 한 번 입고 말기엔 비싼 편”이라며 “10월에 졸업사진 촬영이 있는데 주위 친구들은 다 사서 입는다고 해서 빌려 입을지, 부모님께 사고 싶다고 말씀을 드릴지 고민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