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한 달간 혼인 건수는 1만4475건으로,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같은 달 기준)를 기록했다. 터무니없이 높은 결혼 비용은 젊은이들이 결혼을 부담으로 여기게 만든 요인 중 하나다. 허례허식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국 특유의 결혼 문화에 프러포즈부터 결혼식에 이르는 각 단계마다 통과의례처럼 치러야 하는 각종 이벤트가 젊은 층의 트렌드가 되면서 결혼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업계의 상술과 소셜미디어에 결혼 사진을 올리며 과시하는 사회 분위기도 예비 부부들에게 지갑을 열라고 부추긴다. 조선비즈는 기형적인 결혼 비용이 나오게 된 이유를 결혼 준비 과정을 따라가며 하나씩 소개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저흰 옥상에서 결혼했어요”

서울 마포구에 사는 김정민(가명·30)씨는 지난 3월 자기 집 옥상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하객은 가까운 친구 20여명과 반려견이 전부. 결혼식 당일, 김씨는 평소대로 직접 화장을 하고 머리를 한 갈래로 낮게 묶었다. 100만원을 호가하는 웨딩슈즈(결혼식용 신발) 대신 평소 즐겨 신던 단화를 신었다. 치장에 들인 돈은 드레스 대여비 45만원이 끝이다.

웨딩 사진도 부부는 직접 찍은 여행 사진으로 대체했다. 강원도 양떼 목장, 제주도 안돌오름 등 전국 곳곳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인화해 액자에 넣어 옥상 한편에 비치했다. 옥상 한가운데에 깔린 버진로드(행진 길)와 꽃장식, 청첩장까지 부부는 손수 만들었다. 동대문 원단 시장과 양재동 꽃시장을 돌며 자재를 고르고 부부의 취향껏 소박하게 제작했다.

결혼식장 선정부터 청첩장까지 모든 과정을 부부만의 방식으로 진행한 김씨 부부의 결혼 비용은 총 248만원. 세부 항목은 △결혼반지 100만원 △드레스 대여비 40만원 △결혼식 케이터링(출장 음식) 40만원 △식장 꽃장식 및 버진로드 제작 50만원 △셀프 청첩장 제작 15만원 △신랑 헤어스타일링 3만원이다.

초대하는 사람 수만 적을 뿐 스몰 웨딩 전문 예식장에서 식을 올려 최소 수천만원이 드는 ‘무늬만 작은 결혼식’이 아니라 발품을 팔아 결혼식에 이르는 모든 단계를 직접 선택하는 ‘진짜 작은 결혼식’을 하는 연인들이 하나둘 생기고 있다. 웨딩 컨설팅 업체나 웨딩플래너 없이 결혼을 준비하는 이들이 늘면서 ‘워크인(walk in·예약이 안 된, 사전에 컨설팅 업체를 통해 소개받지 않는 것)’에 주력하는 업체도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작은 결혼식이 웨딩업체에 휘둘리지 않고 소비자 권리를 찾는 선택지라고 바라봤다.

2019년 당시 서울의 한 웨딩박람회를 방문한 예비 부부가 드레스 등 결혼 관련 상품을 둘러보고 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뉴스1

◇ “웨딩박람회 참가비로 상품 개발”… 워크인 공략하는 웨딩업계

서울 강남구에서 맞춤 예복을 판매하는 업체 르셀루는 고객의 95%가량이 워크인 손님이다. 워크인 손님이란 웨딩 플래너의 추천이나 권유 없이, 직접 기혼자들의 후기를 읽고 업체를 선택한 사람들을 말한다. 대다수 결혼식용 예복 업체들이 웨딩 컨설팅 업체나 웨딩 플래너의 소개를 받고 찾아오는 소비자에게만 상담과 사전 착용을 하게 해준다. 그렇게 서로 계약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르셀루에 워크인 손님이 증가한 건 2021년 5월부터. 업체는 이 무렵 “직접 선택하세요”라는 문구를 내걸고 맞춤 예복 대여 서비스를 시작했다. 20만~30만원 선인 대여 예복도 소매 기장이나 바지 기장 등을 몸에 맞출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워크인 손님들을 공략했다.

르셀루 관계자는 컨설팅업체에서 주관하는 웨딩박람회에 참가한 게 되레 워크인 고객으로 타깃을 바꾼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웨딩박람회에 하루 참가하는 데 참여비, 인건비, 부스 인테리어, 고객 사은품 등 1000만원 가까운 돈이 든다”며 “이 돈을 상품 개발이나 CS(고객서비스)에 투자하는 게 브랜드 발전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업체는 이후로 웨딩박람회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지난 25일 오전 11시 서울시 강남구에 위치한 맞춤 예복 업체 르셀루의 모습. /김민소 기자

지난 25일 르셀루 매장을 찾은 A씨도 최근 웨딩컨설팅업체와의 계약을 파기하고 워크인으로 진행 방식을 바꿨다. A씨는 “수수료만 30만원 가까이 지급했는데 가봉 때랑 전혀 다른 예복이 나와서 위약금을 물고 계약을 파기했다”며 “플래너에 맞춰 짧은 시간에 급하게 정하기보다는 오래 걸리더라도 직접 업체를 선택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이곳을 찾은 이유를 설명했다.

웨딩업 종사자들은 워크인 시장 규모도 커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부케 제작업체 헤르비폴즈 관계자는 “예전엔 소비자들이 꽃 이름을 잘 모르셨는데, 요즘엔 오픈 채팅방이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꽃 정보 공유가 활발해지면서 꽃에 대해 빠삭한 고객들이 많아졌다”며 “고객들이 똑똑해지면서 요구사항도 다양해진 만큼 직접 업체를 선택하는 워크인 고객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3년 전에는 플래너 고객 대 워크인 고객이 8대2 정도였다면 현재는 5대5 정도 된다”며 “업체들도 굳이 수수료를 낼 필요가 없고 기업 간 광고를 할 필요도 없으니 워크인 고객 유치에 주력하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 “정보 공유 활발한 시대… 작은 결혼식·워크인 트렌드 확산”

전문가들은 결혼 절차를 간소화하고 웨딩 업체를 직접 선택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웨딩 커뮤니티나 카페, 오픈 채팅방 등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어 결혼 관련 정보 습득이 쉬워졌다”며 “적은 비용으로 충분한 정보량을 얻을 수 있다 보니, 주체적으로 결혼 준비를 하는 부부들이 많아지면서 워크인 고객도 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교수는 “워크인 웨딩이 수월한 환경이 마련되면서 ‘작은 결혼식’을 올리는 부부들도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는 신혼집 마련을 위해 결혼 비용을 줄이려 해도 그 과정이 막막하고 ‘플래너를 껴야 한다’는 기존 관념 때문에 포기했었다면, 이제는 정보량 증가로 워크인도 하나의 방식으로 자리 잡으면서 필요한 업체만 계약해 구매 효율을 높이는 ‘작은 결혼식’도 인기를 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워크인 웨딩이나 작은 결혼식 같은 트렌드가 웨딩 업계에서 소비자가 권리를 되찾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예전에는 소비자들이 당연히 플래너를 통해야 한다는 생각에 중간에서 플래너가 선택권을 제한하거나 폭리를 취해도 그 판단에 따랐다면, 요즘엔 소비자들의 정보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웨딩업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졌다”며 “덕분에 워크인 웨딩이나 작은 결혼식 같은 방식으로 자기 취향에 맞게 소비자 권리를 찾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