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출산율이 갈수록 떨어지면서 지난 3월 정부는 저출산 대책을 중요한 국가 어젠다로 삼겠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나온 대책은 대체로 보조비 지급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젊은 세대가 아기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비단 경제적 부담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기 힘들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 문화심리적 요인도 출산을 포기하게 만드는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조선비즈는 이제껏 다뤄지지 않은 저출산의 숨은 이유들을 집중적으로 다뤄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한국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8명을 기록했다. 여성 1명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가 0.78명이라는 뜻이다.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낮다. 상황은 계속 심각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5월 태어난 아이는 1만8988명으로 1년 전보다 1069명(5.3%) 감소했다. 2015년 12월부터 7년 6개월 연속으로 감소하고 있다. 정부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경제적 혜택을 주겠다며 지난 16년간 280조원을 쏟아 부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다. 그들은 왜, 출생을 기피할까.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는 "완벽한 부모가 될 수 없다는 걱정이 저출생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좌절을 경험한다. 좌절을 극복하며 회복 탄력성을 키운다. 그런데 학업, 취업, 집값 등 개인이 겪는 좌절이 너무 거대해졌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극복하기도 어렵다. 심리적인 자원이 소진된 청년들은 출생을 기피하고, 좋은 부모가 될 수 없다고 염려한다. 이것이 허 교수가 진단한 저출생의 원인이다.

허 교수는 저출생 극복을 위해선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완벽한 부모가 될 필요는 없고, '그럭저럭 좋은 부모'면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대한민국이 출산율 꼴찌 오명을 벗으려면 우선 아이를 낳지 않는 20~30대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진짜 속마음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한다.

허 교수는 임상심리학과 뇌과학을 연구한다. 저서로 '아이가 사라지는 세상'이 있다. 조선비즈는 지난 18일 고려대에서 허 교수를 만나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가 18일 오후 서울 고려대 구법학관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갖고 저출생의 원인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심리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저출생의 원인은 무엇인가.

"전 세계 청년 3~4명 중 1명은 정신 건강이 좋지 않다는 연구가 있다. 청년들은 자신의 정신 건강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양육하기 충분하지 않다고 느낀다. 조금이라도 불편한 상황이 예상되고 '굳이 저렇게까지 힘든 상황을 겪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 때, 그냥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다.

청년들은 동시에 완벽에 대한 기준이 높다. '내가 좋은 사람인가?' '가족을 이룰만한 사람인가?'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세상이 이렇게 힘든데 아이를 낳아도 될까?' 이런 것들이 저출생에 영향을 미친다. 스스로 아이를 낳고 키우기에 부족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사실 이런 건 완벽주의가 만들어낸 허상에 가깝다.

그렇다고 출생을 기피하는 청년을 탓하면 안 된다. 청년들은 오히려 다른 세대보다 이타적이다. 나의 아이를 위해 출생하지 않는 것이니까. 흔히 MZ세대가 자기 중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다른 세대보다 자기 중심적이지 않다는 연구가 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헤아리고, 민폐를 끼치지 않을까 우려하는 세대다. 시민의식, 인권 감수성, 공감능력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라서 그렇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미리 신경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타적인 마음이 있기 때문에 타인에게 가족을 꾸리고 같이 아이를 낳고 키우자고 접근하는 게 조심스러운 것이다."

─청년들이 학업, 취업, 높은 집값 등으로 좌절을 겪으며 출생을 기피하는 경우도 있다.

"어린 시절부터 소소한 좌절을 극복해야 회복 탄력성을 키울 수 있다. 좌절을 극복하고 이전의 마음과 기능을 회복한 뒤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사람들이 겪는 좌절이 너무 거대해졌다. 학교 폭력, 입시·취업 경쟁, 집값 폭등,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등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극복하기 어렵다. 좌절을 극복하는 경험 자체가 줄어들면서 사람들이 절망하고 냉소적으로 변한다.

이것은 심리학적으로 '소진'이라는 개념과 관련이 있다. 세상이 너무 불공정하다고 느끼면서, 에너지를 잃고 새로운 도전을 하지 못하는 상태다. 최적의 좌절을 극복하는 경험이 없고 회복 탄력성도 학습하지 못하고 정서적으로 소진된 상황에서 가정을 꾸리거나 아이를 낳으려는 새로운 시도를 못하는 것이다."

─반대로 청년들이 소진을 극복하고 에너지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가.

"냉소주의와 정서적 소진은 사람들과 연대할 때 회복된다. 꼭 소울메이트, 단짝을 찾을 필요는 없다. 같은 생각을 공유하며 사회적인 지지가 있다고 느낄 때 마음의 에너지가 회복된다. '남들도 힘들어' '너만 유별나게 왜 그래'라고 말하는 것보다 '너만 겪는 고통이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게 좋다. 그러면 다른 사람도 같은 길을 걷고 있고, 그럭저럭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개인의 의사 결정의 폭이 커지고 행동 반경이 넓어지며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고통의 일반화'다. 저출생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아이를 낳고 싶어하지 않는 감정을 이해하고 인정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기성 세대가 인정해야 다음 단계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보인다. 청년이 출생을 기피하는 마음을 부인하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서울 시내 한 병원 산부인과 신생아실의 빈 카트에 덮개가 씌워져 있는 모습. /조선DB

─개인의 심리적 불안정도 저출생의 원인 중 하나다.

"불안정 유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타인에게 거부당할까봐 불안한 불안-불안정 애착, 대인관계 자체를 회피하는 회피-불안정 애착, 불안한 상황에서 무관심하고 사소한 상황에서 파국으로 치닫는 양가적-불안정 애착이다. 흔히 불안정 유형은 심리적인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인관계가 어렵고 아이도 양육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안정은 인간이면 누구나 있을 수 있다. 육아 전문가처럼 완벽하게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압박감이 출생에 대한 염려를 높이고 있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불안정과 아이를 키울 때 필요한 역량은 별개의 것이다. 개인이 불안정해도 배우자, 아이와 애착을 형성할 수 있다. 불안정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이에게 더 노력해야 한다는 수준 높은 통찰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럴 때는 'and(그리고)'로 생각해야 한다. 개인이 잠시 불안정할 수 있지만, 출생과 양육을 위한 준비를 했고, 스스로 삶을 즐길 줄 알기 때문에 아이에게 여러가지 것들을 해줄 수 있다는 마음을 키우면 된다.

많은 사람이 아이에게 미안해서 출생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실 그런 정도의 통찰을 하는 사람은 절대로 아이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부모의 역할과 별개로 아이는 본인이 갖고 태어난 재료로 잘 살아간다. 부모의 역할을 과도하게 인지하지 않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아이와 눈을 마주쳤을 때 온 힘을 다해 웃어주고,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훈육하는 정도의 노력이면 된다."

─완벽한 부모가 돼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나.

"완벽하게 좋은 부모라는 것은 사실 세상에 없다. '그럭저럭 좋은 부모'면 충분하다. 부모가 개인의 결함으로 좌절하고, 그래도 삶을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된다. 아이는 부모가 힘든 역경이 있어도 다음날 자신을 보며 웃어준다는 것을 학습할 수 있다. 부모가 아이 앞에 놓인 장애물을 제거하고 욕구를 즉시 충족시켜주는 것이 오히려 아이가 스트레스에 취약해지는 결과를 유발한다. 아이가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 본인에게 가장 잘 맞는 무기가 뭔지 깨닫고, 심리적 유연성이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 같은 것을 발달시키도록 해야 한다."

─법적으로 묶인 부부가 아닌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등장하고 있다.

"전통적인 가족 구조는 붕괴된 지 오래다. 서로 다른 지역, 국가에서 공부하거나 일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아플 때 멀리 있는 가족보다 옆집에 있는 이웃이나 직장 동료에게 도움을 받기도 한다. 1인 가구, 비혼 커플, 공동 거주, 사별 후 재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노인 커플 등 가족의 유형이 다양해지며 심리적, 물질적 지원을 아낌없이 베푸는 형태의 공동체가 나타나고 있다.

탐욕스러운 결혼(greedy marriage)이라는 사회학 용어가 있다. 결혼하면 원(原)가족, 부모나 형제 자매보다 자신의 배우자와 자녀에게 심리적, 물질적 지원을 투입하게 된다. 반대로 배우자와 자녀가 없어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거나 타인에게 헌신하는 경우도 있다. 출생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기적으로 혼자 재미 있게 살려고 저런 선택을 한다고 여기지 않으면 좋겠다."

─저출생에 대비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 한 가지만 고르라면.

"지자체가 주거 공간이나 양육비를 준다고 갑자기 저출생 심화 속도가 둔화하지 않는다는 현실 인식이 필요하다. 청년들이 자기만 알아서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인식이 저출생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청년들이 이런 마음으로 그런 결정을 하는구나, 눈높이를 맞춰가는 정도에서 다음 정책 단계를 밟아가는 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