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가 입시학원은 물론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이른바 '영어유치원' 편법 및 불법 행위에도 칼을 빼들었다. 자녀를 무조건 의대로 진학시키려는 '의대 광풍'이 사교육 시장의 종착점이라면, 4세 전후로 시작하는 영어 유치원은 사교육의 출발지로 볼 수 있다. 조선비즈는 사교육의 시작점인 영어유치원의 운영 현황과 문제점에 대해 집중 조명한다.[편집자 주]

"일부 영어유치원은 아이들보다 돈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교육 기관이라기보다 마치 영리를 추구하는 사업체에 가깝습니다. 학원 경영진과 강사 대부분이 유아 교육에 대한 배경 지식이 부족합니다." 이른바 '영어유치원'으로 불리는 유아 영어학원에서 근무한 적 있는 미국 출신의 전직 원어민 강사 출신 A씨는 한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시기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전국에 유아 영어학원이 800곳이 넘을 정도로 성업 중이지만, 정작 교실에서 아이들을 매일 마주하며 가르치는 원어민 강사가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반 유치원과 달리 유아 영어학원에서는 단지 '4년제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원어민 강사로 채용해 5~7세의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게 한다. 학부모들이 원어민 강사의 경력과 범죄 이력, 마약 투약 여부를 확인하기도 쉽지 않다.

일러스트=이은현

◇원어민 강사 "스카이프로 면접 보고 채용하더라…자격증도 요구 않아"

유아 영어학원과 일반 유치원의 차이점 중 하나는 교사의 자격증 유무다. 일반 유치원에서 교사로 일하려면 전문대 이상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정교사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국공립 유치원 교사는 임용고시도 통과해야 한다. 지난해 서울 국공립 유치원 교사 임용 경쟁률은 68대 1이었다.

반면 유아 영어학원에서 원어민 강사로 일하기는 쉬운 편이다. A씨는 "유아 영어학원에서 일하려면 4년제 대학 학위만 있으면 됐다"며 "면접도 화상 전화 앱인 스카이프(Skype)로 간단하게 진행했고 자격증도 요구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외국인 강사에 대한 규제가 엄격하지 않은 편"이라며 "유아 영어학원은 한국 내 공립학교보다 규제가 덜한 편"이라고 했다.

A씨는 전국에 50개가 넘는 지점을 가진 유명 영어학원에서 근무했다. 그러나 유아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동료들의 자질은 괜찮은 편이 아니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공립 고등학교 영어 교사로 일했던 A씨는 "저는 학원에서 영어 학위를 가진 유일한 사람이었다"며 "외국인 교사 중 상당수는 영어나 유아 교육에 대한 배경 지식이 거의 없다"고 했다.

유아 영어학원의 교육 과정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A씨는 "유아 영어학원은 커리큘럼(교육 과정)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다"며 "강사들은 아이들에게 질문에 대한 답을 주입할 뿐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다"고 했다. 이어 "한국의 유아 영어학원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일부 학부모들도 수업의 질에 의문을 표한다. 4세 자녀를 유아 영어학원에 보낸 학부모 B씨는 "프랑스인이 원어민 담임 교사였는데 발음이 이상하고 영어를 잘하는 것 같지 않았다"고 했다. 다른 학부모 C씨는 "학원 원장이 PPT(프레젠테이션)로 잠깐 (강사 약력을) 보여줄 뿐 어떤 사람이 일하는지 구체적인 정보가 전혀 없고 온라인 홈페이지에도 공개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미래를 위한 청년 변호사 모임(새변)'이 자녀 영어 교육에 관심이 있는 학부모 60여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76%는 유아 영어학원에 불만족한다고 답했다. 가장 큰 이유는 외국인 강사의 범죄 경력, 학력, 영어 회화 지도 활동이 가능한지 여부, 마약 투약 여부 등 검증이 엄격하게 이뤄지지 않는다'(70%, 중복 응답 가능)는 것이었다. 학원법상 외국인 강사를 채용할 때 범죄 경력과 건강 진단서, 학력 증명서를 검증해야 하지만 제대로 지켜지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2월 6일 이주호 부총리겸 교육부 장관이 유보통합 추진을 앞두고 현장을 방문해 목소리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서울 송파구 송파위례유치원을 찾은 모습. /조선DB

◇전문가 "영어유치원 자체가 존재할 수 없는 개념…학원일 뿐"

부실한 원어민 강사가 유아 영어학원에서 일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아동의 몫이 된다. 교육부가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전국 유아 영어학원 847개를 전수 조사한 결과 성범죄 등 범죄 경력을 조회하지 않고 강사를 채용한 경우가 26건 적발됐다. 학부모가 자녀 교육을 범죄자에게 맡긴 셈이다.

아동 학대 우려도 나온다. 학부모 D씨는 "유아 영어학원 강사가 아이들을 과도하게 훈육하는 경우가 있다" 했다. 다른 학부모 E씨는 "(원어민 강사의) 분노 조절 장애 여부를 확인하고 채용하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스트레스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면 (아동) 학대를 사전에 방지할 관리 감독 기관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유아 영어학원에서 아이 돌봄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원어민 강사가 영어를 할 줄 아는 것과 아이들을 돌보고 교육하는 것은 별개"라며 "아동의 심리를 이해하고 학습 동기를 어떻게 부여할지, 사회성을 어떻게 발달시킬지 등에 대한 배경 지식이 강사에게 필요하다"고 했다.

손혜숙 경인여대 유아교육학과 교수는 "영어유치원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며 "학습하는 기능이 있는 학원일 뿐인데 (아이들을 돌보는) 유치원처럼 포장하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 새변 관계자는 "유아 영어학원이 강사 자격 요건이나 교육 내용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