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은혜’는 옛말이 된지 오래다. 요즘 공교육 현장에 선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폭행당하거나 성희롱을 당해도 제지할 방법이 없다. 학과 수업은 사교육에 넘겨주고, 아이들이 잘못해도 바로잡을 수조차 없는 학교 교사들은 자신들이 “허수아비가 됐다”고 입을 모은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고, 대책은 무엇인지 짚어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그만 좀 해!”

1년 넘게 참다 참다 내지른 그 한마디가 악몽의 시작이었다. 지난 3월 경기도 수원의 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정은주(41·가명) 씨는 교실에서 학생에게 소리를 지르는 아동 학대 행위를 했다며 학생 부모로부터 경찰에 신고당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이 학생은 작년부터 정 씨를 힘들게 했다. 화장실에서 대변을 처리한 휴지를 가지고 와서 던졌고 아이들 앞에서 두 손으로 정 씨 가슴과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학교에 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를 열어달라고 7차례나 요청했으나 묵살당했다. 학교에선 일이 확대되길 원치 않는 눈치였다.

정 씨가 느끼는 무력감이 점점 심해지는 사이 아이의 수업 방해 행위는 계속됐다. “그만하라”는 한마디에 아이 부모가 경찰에 신고해 조사가 이뤄진 두 달간 정 씨는 아이를 매일 봐야 했다. 현장학습도 갔다. 현장학습에 따라온 경찰은 하루 종일 아이를 지켜본 뒤 정 씨에게 말했다. “누가 누굴 학대하는지 모르겠네요.”

항암 치료 중인 정 씨는 병가를 내고 변호사를 선임해 재판을 진행 중이다. 무혐의를 받기까지 최소 6개월에서 2년이 걸릴 것이라고 변호사는 말했다. 끝내 무혐의를 받게 된다고 해도 무엇이 남을지는 확실치 않다. ‘없었던 사실을 없었다고 인정받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도 아동 학대 교사라는 누명을 벗기 위해 정 씨는 싸우는 길을 택했다.

한 학교 교실의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하다. / 뉴스1

19일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작년 3월 임용돼 1학년 담임을 맡았던 신입 교사가 학교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자 교직 사회가 비통함에 휩싸였다. 20일 하루 동안 이 초등학교에 추모를 위해 다녀간 교사들이 2000명이 넘는다. 경찰이 극단적 선택의 원인을 조사하고 있으나 교사들은 자신이 현장에서 겪고 있는 교권 침해 현실을 떠올리며 그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라고 교육 당국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교사들은 지난 10여 년간 교권이 지속적으로 추락해 이제 학교는 이른바 금쪽이들이 난장판을 부려도 막을 방법이 없는 사실상의 무정부 지대라고 말했다. 이토록 교권이 추락한 두 가지 큰 계기로 2012년 학교폭력예방법(학폭법) 개정으로 교단이 법정화된 것과 2015년 아동복지법 개정으로 ‘정신적 고통을 가해선 안 된다’는 조항이 추가되며 학부모의 고소 고발이 급증한 것이 지목되고 있다.

◇ 교사들, “학부모 민원에 시달리는 게 일상”

“소리 지르는 아이를 진정시키려고 양팔을 잡다 성희롱 신고를 당할 뻔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아이 몇 시 몇분에 밥 먹었냐고 카카오톡을 받는 것도 일상이에요.” (서울 서대문구의 한 30대 초등학교 교사)

“학생끼리 ‘누구랑 놀지 마’라고 얘기해도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가 열리고 선생님이 죄인이 됩니다. (죽음을) 개인사로 치부하고 선생님을 정신이상자로 만드는 걸 가만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경기 용인시의 20대 초등학교 교사)

30도가 넘는 뙤약볕이 절정에 이른 20일 오후 2시 50분.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앞에 검은색 옷을 입은 교사들이 수백명 모였다. 이들은 차례로 정문 앞에 국화꽃을 놓고 추모 글귀를 쓴 포스트잇을 붙였다.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너무 억울하다”, “어떡하면 좋냐”는 울음 섞인 말들이 오고 갔다. 이날 추모객들은 교내 추모 공간 마련을 요구했으나 학교에서 거부하면서 양측 간 마찰이 빚어졌다.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앞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교사를 추모하는 메시지가 적힌 포스트잇이 가득 붙어 있다. / 김민소 기자

이 학교 교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원인에 대해 여러 추측이 난무하면서 경찰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이 교사가 학교 폭력과 관련한 학부모 민원에 시달렸다는 글이 올라왔다. 학교 측은 입장문에서 “지난 3월 이후 고인의 담당 학급 담임이 교체된 사실이 없고 고인의 담당 업무는 학교 폭력 업무가 아니라 나이스(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권한 관리 업무였다”며 “이 학급에선 올해 학교 폭력 신고 사안이 없었다”고 밝혔다.

동료 교사들은 “사망에 이른 원인이 명백하게 밝혀져야 한다”면서도 임용된 지 1년이 갓 넘은 신입 교사가 업무 난이도가 높은 1학년 담임을 맡으면서 겪었을 어려움과 최근 교육 현장에서 급증하는 교권 침해가 업무상 스트레스를 초래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서울 양천구의 26년 차 초등학교 교사 김 모 씨는 “학부모의 폭언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며 “교사들 셋 중 하나는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말했다.

사망한 교사의 외삼촌은 20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교사노동조합연맹 기자회견에 참석해 “젊은 교사가 학교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원인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며 “학부모의 갑질이든 악성 민원이든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든 이번 죽음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밝혀져야 한다”고 했다.

◇ 칭찬 안 해줬다고 ‘아동학대’ 고소하는 부모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발표한 ‘2022년도 교권 보호 및 교직 상담 활동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교총에 접수된 교권 침해 상담·처리 건수는 520건으로 2016년(572건) 이후 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전면 등교가 재개되면서 교권 침해가 다시 심각해진 것이다. 학부모에 의한 교권 침해가 241건으로 가장 많다. 4건 중 1건이 교원의 자녀 지도를 문제 삼아 아동학대로 신고한다고 협박하거나 소송을 당한 사례다.

경남의 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윤지영(52) 씨는 “내 아이의 자존감을 떨어뜨린다”며 두달 간 자신이 교실에서 한 말을 상세히 적은 일지를 들고 온 학부모에게 아동학대로 신고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의 행동을 칭찬해 주지 않고 지적해 기를 죽였다는 게 불만 사항이었다. 같은 학교에 복직하지 않는 조건으로 아동학대 신고를 막았다. 20여 년간 교단에 서며 학부모에게 XX년 소리를 들어도 버텼던 그지만 이 사건 이후로 분노와 무기력감이 심해져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

변호사는 “그 부모가 칼자루를 쥐었고 선생님은 맞아주셔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동학대의 공소시효가 해당 아동이 만 19세가 된 날부터 7년까지로 길어서다. 해당 부모가 마음만 먹으면 향후 20년 안에 윤 씨를 얼마든지 다시 고소하는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교사가 아이와 학부모의 감정 쓰레기통이 된 건 2017년 무렵부터”라며 “유능한 젊은 교사들 상당수가 40살 이전에 교단을 떠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자문 활동을 한 박상수 변호사는 “학교 폭력을 막기 위한 법률 자문 활동을 2017년부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학교가 무너지는 게 보였다”며 “아이 태블릿PC에 와이파이를 안 잡아줬다, 칭찬 스티커를 안 줬다, 일기를 봤다는 이유로 교사가 정신적 학대로 고소당하는 사례가 실제로 있었다”고 말했다.

◇ 2012년 학폭법 개정 후 교실이 법정化

지금의 교권 추락 상황에 이르게 된 계기로는 2012년 학폭법, 2015년 아동복지법 개정이 꼽힌다. 2012년 정부는 학교폭력 근절대책의 일환으로 학폭위 개최 사실과 처분 내용을 생활기록부에 적도록 학폭법을 개정했다. 입시에 영향을 주는 생기부 기록이 의무화되면서 학폭위 개최 건수가 늘었다. 동시에 기록을 지우기 위해 학폭위 처분에 불복하는 소송을 제기하는 부모들이 생겨났다. 박 변호사는 “선생님을 상대로 고소·고발을 하는 것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완전히 무너졌다”며 “이후부터 부모와 변호사들이 선생님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절차적 문제가 있었는지 따져 묻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2015년에는 아동학대 범위에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를 추가한 아동복지법 개정이 이뤄졌다. 개정 아동복지법은 ‘보호자의 책무’와 관련된 5조에 “아동의 보호자는 아동에게 신체적 고통이나 폭언 등의 정신적 고통을 가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이때부터 ‘우리 아이가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선생님의 말과 행동을 가지고 경찰에 찾아가는 부모가 늘었다. 이 경우 경찰 조사 후 무혐의로 판명이 나도 무고죄로 고소할 수 없다. 가령 ‘와이파이를 안 잡아줘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주장했다면 ‘와이파이를 안 잡아준 행위’ 자체는 있었기 때문에 무고죄 성립 요건 자체가 안 된다.